(성남=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온 겨레. 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새 세상 밝혀주는 해가 돋았네. 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매년 10월 9일 한글날이면 울려 퍼지는 한글날 노래.
사람들은 기념식장에서 이 노래를 합창하고 TV를 보면서 따라 부르지만 정작 이 노래를 작곡한
음악가 박태현(1907~1993) 선생을 아는 이는 드물다.
평양에서 태어난 박태현 선생은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향인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의 권유로
일본 도쿄음악학교(현 도쿄음대)에서 첼로를 전공한 뒤 평생을 작곡에 전념했다.
그는 87세로 작고할 때까지 '코끼리 아저씨' '산바람 강바람' '달 따러 가자', '태극기'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동요 200여곡을 작곡했다.
광복 이후 정부의 요청으로 '한글날 노래'와 '3.1절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의 둘째 형은 일제강점기 이완용 저격사건에 가담했다 체포돼 7년간 옥고를 치르고 순국한 독립운동가 박태은 선생이다.
박태은 선생의 항일 애국정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일제가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하며
우리의 말과 글을 말살하려 하자 이를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그는 우리의 아름다운 말과 글이 담긴 동시(童詩)에 곡을 붙여 어린이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했고,
이는 한글의 보존을 넘어 보급 효과까지 거뒀다.
박 선생은 1980년대 초 성남에 정착한 뒤 타계할 때까지 맑고 청렴한 인품으로 많은 문화예술인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생애 말년엔 독립운동가 고 이용상(전 성남문화원장) 선생의 노랫말에 곡을 붙인 애향곡
'나 성남에 살리라'를 마지막 유작으로 남겨 성남에 대한 진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는 음악적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KBS 동요대상 등을 받았으며
2001년에는 성남예총의 추천으로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선생이 타계한 뒤 10여년 동안 선생을 추억하며 기려오던 성남지역 음악인과 지인들은 2003년 3월
'박태현 기념사업회'를 발족, 성남시와 성남예총의 도움을 받아 추모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2007년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선생이 만든 동요, 가곡, 성가곡, 고시조 등 132곡 악보를 한데 묶어
'박태현 노래집'을 냈고 작년에는 선생의 대표곡들이 담긴 '박태현 동요집' CD를 만들어 일반에 무료로 배포했다.
타계 후 15년 동안 추모비 하나 없다가 지난해 8월 성남 율동공원 내 조각공원에 '작곡가 박태현 노래비'와 함께 선생이
어린이와 함께 배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의 조각 상징물이 세워졌다.
성남예총은 고인의 음악정신과 애향심을 기려 1998년 박태현 음악상을 제정하고 음악제와 창작동요제를 열어 왔지만,
올해는 시 예산이 지원되지 않아 음악제는 열리지 못하고 창작동요제만 열리게 됐다.
박태현 기념사업회 김성태 회장은 "작은 규모라도 지속적으로 음악제가 열려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일이 계속됐으면 한다"면서
"시 지원이 없으면 선생을 기리는 몇 사람이라도 조각공원에 모여 조촐한 음악회를 열 생각"이라고 했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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