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용계에 유일한 국악(판소리)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판소리 춘향가) 이수자로 지정된 정금란은  득음하여 판소리에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으나 ,

초교 졸업 이후부터  국악에 입문하여  향곡 김여란(정정렬판 춘향가 기능보유자) 선생이 1883년 작고하기까지 사사,

 매년 문화재관리국이 실시하는 '판소리류파발료회'에 10년이상 출연하는 등, 그가 개설한 성남무용학원에서

'안방 감상회'를 열고 판소리와 무용 감상 및 예술인과의 대화를 성남최초로 개최하여 주변의 예술인구저변확대에도 일조했다.

그는 전통음악 장단의 계율을 중시하여 한국무용의 선률에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 징소리 김성태

 

판소리 '춘향가'를 하는 정금란 

고수 이준식(작고, 성남국악협회 초대 지부장역임) 

고수 김득구(작고) 

 정금란의 공연에 격려방문한 좌 : 최희정. 김근희. 김여란 선생.  1975. 11. 국립극장

김여란 선생과 이수자 문하들이 공연에 앞서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1980년 10월 

*정금란은 무용 활동전부터 판소리에 입문, 정정렬 류파 김여란선생에게 판소리 장학전수생으로 사사.

중요무형문화재 제 5호 (판소리 춘향가) 장학전수를 마치고 이수자로 지정.-1982. 1월. 이광표 문화공보부 장관과... 

 

 

김여란(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기능보유자, 1983년 작고) 선생과 판소리 문하들. 

-좌: 김성태(정금란의 권유로 김여란 계파의 수업전수 일지 등  행정을 문화재관리국과 교량) 최희정. 정금란. 이규호 

     향곡 김여란 장례식장(서울 삼성동 문화재전수회관 뜰) 좌:최승희(향곡 문하).김소희(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정금란(향곡 문하.이수자. ). 박초선(향곡 문하. 이수저). 최희정(향곡 문하.이수자).

 

 

 

김여란 선생 타계 1주기 추모공연 정금란 안무 및 성남문하들과 출연한 '추모의 정' -1984. 9. 11. 국립극장 소극장 무대 

향곡 고 김여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기능보유자. ) 추모공연"추모의 정"출연후.

-뒷줄 좌:최희정.정명숙.김근희.박초선.김명환 (당대의 판소리고수대가).최희선.정금란 .이규호.

앞줄: *. 이미예.유미희.조성란 .황현실.김미영. *.(1984.9.11.국립극장 소극장)

 

판소리류파발표회 후 조상현(국창, 판소리보존협회 이사장) 선생 등과 - 1983. 11. 문화재전수회관에서

 

판소리 명창 성우향 선생과 - 정금란은 김여란 선생이 타계이후 성우향 문하에서 사사를 계속, 여름이면

매년 광주 곤지암, 남한산성 불당리 등에서 판소리 사사와 연마를 했다. 

 

 

 

박동진(판소리). 이준식(판소리 고수) 등...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 당데의 민요명창들과 -1986. 6. 7. 성남예총 기금마련 '국악큰잔치)  

 

제2회 경기민속경연대회 성남대표단 ' 남한산성축성놀이'를 총 연출 및 안무하여 참가 - 1988. 7. 수원종합운동장 

88 서울올림픽 성화봉송 경축 '마당놀이' 총연출 및 안무 하여 참가 -복정동사거리 

 

 

 

 

*1942년 4월 21일출생하여 1994년 6월 28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금란 무용출연 관련  중요사진.

 

 

'신인무용발표회, 공연 기념사진  (* 정금란의 의상은 엘범 사진에 형광펜이 바랜것)

-민준기, 정재만 등과 동일무대 등단

 

 

- 1973년도 동아국제사진살롱 '금상'수상작

( 동아일보에서 열린 사진전을 관람하던 중 본사진을 발견, 당시 한양대 모 교수가 사진작가라는 것을 신문사로 부터

알아 통화. 모델료로 전시작을 전시가 끝난 후 우편으로 보내왔다.- 징소리 김성태)

 

 '승무' -1973. 3월 구 명동 국립극장

 

제1회 대한민국무용제 창장무용극 ' 연화의 정' 중 중매쟁이 역 -1974. 10. 3. 국립극장 대극장.

 

 

1975. 11. 창작무용극 ' 재신의 고향' 중에서 

 

 

 

 

 

 

 

 

창작무용극  ' 이차돈' 중 '승무' 한보성(작고)과 -1976. 11. 23. 국립극장. 

 

'산조' 

'승무' -1978. 10.16.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전국무용인합동공연의 정금란과 성남문하들의 '승 무' - 1980. 12. 22. 국립극장 대극장

(* 이 작품은 개인무 전례의 승무를 단체무로 안무편성한 최초의 승무공연으로, 정중동의 극대화와 다이나믹한 무대극화를

전통무용에서 보여주었다는 격찬을 받았고, 정금란의 성남 신진무용세대 문하생들이 중앙무대공연에 출연한 최초의 춤판이었다.) 

 

 

 

* 제7회 문하생무용발표회에 관객을 위해 특별출연한 정금란과 조교 김희심의 '승무' -1981. 10. 18. 성남시민회관 대강당.(배경그림: 김한성화백) 

 

 

* 성남최초의 문화공간으로 출발한 성남시민회관 개관 (1981. 7. 1. ) 첫 무용공연이며 당시 무대조명시설이 전무하여 정금란과 김성태가 자비로 제작, 시민회관에 설치하고 모든 대관행사에 무상으로 이 조명기제를 1년간 사용했다.)   - 김성태 

  

 

 

 

 정금란안무, 출연 '승무(선열)-1981. 11. 26. 서울문예회관 

 

 

 

 

 

 

* 전주 대사습에 특별초청되어 '살풀이'를 추고 있는 정금란 - 1983. 6. 전주 실내체육관.

 

김여란 선생 타계 1주기 추모공연 정금란 안무 및 성남문하들과 출연한 '추모의 정' -1984. 9. 11. 국립극장 소극장 무대 

 

광복 40주년 기념공연 - 1985. 10. 7. 국립극장 대극장 

'전국무용인합동공연'의 '환희' 중 -1985. 10.7. 국립극장 대극장

 

'

 '살풀이 ' -1985. 성남시민회관 대강당

' 산 조' - 1987. 10. 성남시민회관 대강당. 

 

정금란 안무  및 출연 작 '고 목' -1990. 10. 성남시민회관 대강당

(* 분신의 새 잎파리를 피우기 위해 자신은 고목이 되고... 정금란은 '고목' 안무에 특별한 의미를 담았다 . 이듬해 5월14일 직장암을 수술받기위해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 3년여의 투병이 시작되었다.)  

 

 

 

위 TV촬영 사진

 

  

 * 정금란의 마지막 춤판.  -1993. 10.16. 시민회관 대강당 무대에서 공연된 제8회 성남무용제에서 ' 승무'를...

 그는 자신의 춤 인생이 끝나감을 예감했음일까! 항암치료의 고통과 무용가로서 견디기 어려운 최악의 신체조건(인공항문을 착용)에서도

춤판을 향한 열정은 더욱 강렬했다. 주위의 만류도 마다하고 가장 귀히 여긴 '승무' 로 자신의 춤 인생을 마감하려 했던 것일까! 

 장삼 자락 끝에 매달아  먼 - 창공에 빛 뿌리듯,  춤 인생도,,  사랑과 미움도, 집념과 연민도, 모두 훨~훨 춤추듯 날려 보내려 한걸까!

8개월 후(1994. 6. 28) 세상과 작별하여 희로애락의 춤 인생을 마감하니 이 춤판이 정금란의 마지막 춤판이었다.) -김성태

 

 

 

 

 

 

 

 

 

위 TV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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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시 박재혁 시장에게 제2회 성남향토개발시민상(문화상))을  수상하는 정금란-1982. 10. 8. 성남시민의 날 기념식장 

 

 

제3회 경기예술대상을 경기예총 송태옥 회장에게 수상하고 있다. -1991. 12. 23. 경기문예회관  (투병 중) 

 

 

 

* 제1회 전국무용제에서  조흥동(한국무용협회 이사장) 92, 춤의 해 조직위원장이 경기도 대표 성남무용단 정금란 아무자에게 장려상(2등)을  시상하고 있다.

 -1992. 10. 1. 부산문예회관

 

 

 

 

 

제1회 전국무용제 장려상 트로피 

 

제7회 성망에술대상을 임홍규 성남예총 고문에게 받고있다.-1994. 3. 19. 성남시민회관 소강당.

 

부군 김성태가 성남예총 회장으로 재임하여 시상을 사양했으나 성남예총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정금란의 수상을

결의, 성남향토예술발전에 열정을 다한 그의 업적을 사망 3개월여를 남겨두고 증표로 남기는 결과가 되었다. 

 

 

위 '경기도여성상'은 본인이 병세악화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수상 28일째인 1994. 6. 28일 사망하여

성남 최초의 성남예술인장으로 장례식이 엄수되었다.

 

 

 

 

성남무용협회 제3대 지부장 인준서 

 

 

 

 

성남시사 30년사에 기록된 정금란의 무용활동

*  성남 개발초기인 1972년 이전까지는 언급할 만한 무용가나 무용활동이 전무하였고 시제(市制)가 실시된

1973년 7월1일 직후인 9월 성남무용학원을 개설하고 후진양성을 시작한 정금란(鄭錦蘭)과 뒤이어 강신자

고전무용학원을 개설한 강신자(姜信子)의 이주가 성남무용의 개시이고 출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남최초의 무용공연은 1975년 10월6일<정금란문하생 무용발표회>가 수진동소재 제일극장에서 개최된

것이 효시였다. 이후 정금란은 1974년 10월3일 창작무용공연<재신의 고향>-국립극장. 1975년 10월1일<바라춤>-국립극장,

 1977년 11월12일<고 조택원추모공연, 풍속도>-국립극장. 1979년 10월1일 제1회대한민국무용제<연화의 정>-국립극장.

 1978년 10월16일 학림회무용공연<승무>-세종문화회관등에 출연하면서 중앙활동의 교두보를 넓혔고 1981년 11월26일

전국무용인합동공연의 서울문예회관 무대에<선열>을 그의 성남문하생 김희심, 정현숙, 홍옥미, 박현이, 김영찬, 이유선,

 이은주를 대동하고 출연한 것이 성남세대 최초의 중앙무대 단체출연이었다.

  1982년 정금란은 성남문화원, 성남국악협회등 창립발기인과 이사로 참여하면서 시민의 날 경축행사, 사회단체문화행사,

안방무용감상회등을 주도하면서 1982년 2월「란무회(蘭舞會)」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전문공연단 체제를 갖추었다.

  1985년 4월23일 성남무용협회(한국무용협회 성남시지부)가 창립인준(초대지부장. 정금란)되어 시승격 12년만에

공인무용단체가 출범하게 되었으며 성남무용협회는 정금란과 그의 문하인 김종해(金鍾海), 이순림(李順林),

 이혜원, 이지은, 박현이, 서명희, 서미숙, 김월순, 김선임, 이미예, 이유선, 오순자, 조성란, 이정애, 이미애. 유미희등이

 창립발기된 전국유일의단일계보로 결성되어 주목을 받았다.     

 동년 9월13일(시민회관) 창단공연에는 <승무>-정금란, 김월순, 이혜원, 유미희, 이미예. <회상>-조흥동(우정출연).

-박현이(발레). <산조>-이순림, 김월순, 유미희, 조성란, 이미예, 이미애. <철새중에서>-김근희(우정출연). <사랑가>

-김종해, 김월순. -최병희(우정출연), 김선임(현대). <산성풀이>-유미희, 김월순, 이혜원, 조성란, 이미예, 이미애이고

 한국무용협회 강선영이사장과 김각현시장등이 참석하여 격려했다.

 1986년 2월 성남무용협회는 성남예총창립발기 회원단체로 참여하고 성남예총 창립과 함께 제정된 성남종합예술제

 일환의 제1회「성남무용제」와 「학생무용경연대회」를 년례사업으로 주관하면서 성남무용의 태동기에서 전환기를 맞기에 이른다.

 1986년 12월6일<지방순회무용제> 성남공연(성남시민회관)에는 한국무용계의 원로인 한영숙을 비롯한 이현자, 민준기,

 채상묵, 이명자, 이숙향, 김세일라,국수호, 신관철, 조은미, 서정자등이 성남무용협회 회원들과 합동공연하여

성남무용협회의 대외적 위상이 돈독하여졌다.

 1992년「춤의 해」에 제정된 제1회<전국무용제>에 경기도대표로 참가한 정금란 안무, 김성태 극본의<학의 노래>가

 (동년 9월25일 부산문예회관) 전국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면서 「란무회」가 개칭된 「성남무용단」(단장. 김종해)과

 성남무용계의 위상이 크게 신장하였으며 정금란이 경기도내 시군무용협회 연합체로 구성된 경기도무용협회 초대 도지회장에

피선되어 성남무용의 입지를 강화하였다.

1993년 7월 창단된 경기도립무용단에 김종해(단무장), 조성란, 이춘희, 최미숙, 홍은주, 강혜신(이상단원)등

 성남무용협회 소속회원들이 진출하였다.

 1994년 6월28일 정금란이 지병으로 타계하여 성남최초의 성남예술인장이 엄수되었으며 임석봉시장, 이윤수국회의원,

 예술인, 무용인들이 애도했다. 정금란은 <구원, 고목, 예맥, 잉여인간, 산성풀이, 빛과 소리, 학의 노래>등 작품과

 성남무용발전과 정착에 기여한 공적으로 성남모범시민상, 향토개발시민상(문화부문), 경기예술상, 경기여성상, 성남예술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   2003년 발간된  ' 성남시사30년사' 무용편 중에서

 

                                   

                                               

 

 * 한국무용협회 "성남시지부 창립식'에서 초대지부장으로 창립사를 하고 있다 - 1985. 9. 13. 성남시민회관대강당

 

 

 

한국무협 강선영 이사장에게 성남지부 인준서를 정금란이 받고 악수를...   * 사진확대본 -클릭

 

당일 성남지부 창립 경축공연을 마치면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정금란과 출연진 -1985. 9.13. 성남시민회관 대강당

 

* 성남무용협회 창립공연(1985.9.13)- 강선영(한국무용협회 이사장.중간줄 중앙). 정금란(성남무용협회 초대 지부장.앞줄 가운데).

특별출연한 조흥동(뒷줄 갓쓴이). 김근희(중간줄 한복). 김세일라. 이명자. 김광진 등 축하객으로...

 

 

 

 성남예총 창립축하연-좌:*. ).천창봉(경기예총회장).이재범(성문학지부장).*.권기흥(소설가.)조경희(한국예총회장).임홍규(성예총 초대회장). 이상우(한국예총부회장). 권귀태(성남시부시장).조이수(성연예협지부장). 주수광(성연극지부장). 정금란(성무용협지부장) - 2006.3.20. 성남시민회관 전시실

 

 

 

한국예총 신영균 회장 성남방문(성남예총 김성태 회장외 회원단체 지부장 및 임원들과 성남출신 오세응 국회문공위원 간담회를 통해

'예총회관 건립'에 다른 국고지원금 건의를 협의) 기념- 1993.10. 24.

앞줄 좌: 정금란 경기무협회장. 오세응 국회의원. 신영균 한예총 회장. 김성태 성예총 회장. 이상우 한예총 부회장. 조이수 성남연예협지부장

뒷줄 좌: 김정진 성예총 사무국장. 간사. 방영기 성남국악지부장. 김종해 성남무용지부장. 이대교 성남미술지부장. 남기중 성남음악지부장. 이광용 성사진지부장

 임홍규 성예총 고문. 한예총 사무총장.

좌 :오세응(국회의원). 김성태(성남예총 회장. 정금란 부군). 정금란. 신영균(한국예총 회장)- 1993. 10. 24

 

성남학생무용경연대회 시상식에서 인사말을... 

 

경기예총 총회에 대의원으로 참석 -1992. 3. 14. ( 투병 중) 

좌 : 김종해. 정금란. 문일지. 김문숙.*. 조흥동. 이명자 

92, 춤의 해' 선포식에서 .경기도 무용계를 대표하여" 메세지를 낭독하는 정금란 -1992. 1. 29. 국립극장 

 

'92, 춤의 해 선포식' 후 좌 :김문숙. 문체부장관. 전황. 정금란. 강선영. 조흥동(뒤). 오세응(국회문공위원장) -투병 중에 -1992. 1. 29.

 

 

강선영 한국예총 회장과 간담 - 1992. 1. 15. 한국예총 회장실에서 

 

 

*1973년, 한국  초유의 인공도시 성남의 척박한 문화 불모지에 작은 씨앗을 뿌리고 가꾸면서 혼연의 열정과 정열로 춤 꽃을 피우려 했던 사람!

세속에는 늘 어둡고, 드러내고 자랑할 만한 학벌도 없이,  재력도 없고 사교의 능란함도 지니지 못한 우직한 천성을 지닌,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학담리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예술과는 거리가 먼 가난한 유년기를 잊지않고 살았던 사람!

예술창작과 기반이 시련과 절망과 탄식의 자기희생이 따르는 길인지도 몰랐던 사람!

그 길의 외로움을 도전과 열정으로 떨쳐버린 사람!

밤새 재봉틀을 돌리며 손수 무용 의상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춤 동작 하나에도, 장단 하나에도

 서릿발같이 엄한 규율로 문하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나태까지도 용납하지 않았던 사람!

춤판이 자신의 삶터이고 전부라며 항암 투병 중에도 무대에 방석을 깔고 누워 문하들의 공연 리허설을 지휘했던 사람!

춤 판의 열정과 토하고픈 욕망을 끝내 미완의 심연으로 남기고 짧은 예술인생을 마감한 사람!

정금란... 아들 하나 혈육으로 세상에 남기고, 정씨 가문의 조카 셋을 무용에 입문시켜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었음을 자위했을까?

성남무용사에 발자취를  남긴 그녀의 무용 정신은 이제 세월  속에 묻혀 이따금 답습적인 그녀의 이름을 호칭한 춤판의

의미처럼  잊혀져 간다.

20여 년, 생의 동반자였고, 춤의 열정을 존중했던 사람으로  그녀가 남긴 사진 몇 장을 여기에 옮기는 것이 고작인 무능과

   무심함을 자책하면서 연민의 정과 후한을 껴 안는다.

                         

                                                                                                                              -  징소리 김성태

 

 

 

 

*-1970년초-한국무용계의 주역, 조택원. 송범. 안재승. 김백봉. 임성만. 김천흥. 최현. 김문숙. 김진걸. 최희선. 송수남. 외

 이봉래. 조경희. 등과 신진 구자운. 조흥동드의 얼굴이 보인다. 0 란이 정금란

 

 * 정금란이 출연한 중요공연 기념사진

 

 

 

 

 

'공연한 선배, 동료 무용인들과 - 이명자. 정명숙. 김세일라. 김숙자 등 

 

 신무용 50주년기념공연' 후 출연한 무용동료 김근희. 한보성. 조흥동. 채상묵. 이명자. 외 -1976. 12. 20. 국립극장 

 

 

 

 

 

 

 

 

  * 정금란은 발병, 서울아산병원 1991. 5. 14. 입원,  수술 2개월여 입원수술가료후 퇴원 이후 타계한 1994. 6.까지 항암 투여를 계속하면서도

암무 및 출연, 공연현장에서 관계행사를 독려했다.

 

 

* 임석봉 성남시장 외 -1993. 8. (항암 투여의 몸이 많이 부어있다)

 

 

 * 본 무용제에서 정금란은 자신이 가장 귀중한 자산으로 여긴 '승무'를 투병 중에 직접 출연, 그의 마지막 춤판으로 마감했다.

이 사진이 그의 춤 인생에 마지막 공연기념사진이 되었다.(1년후인 1994. 6. 28. 사망) 

 

 * 투병 중 경기도무용협회장직을 수행 경기무용제, 경기학생무용경연대회를 제정하고 집행했다.

 

 정금란 안무 '학의 노래' 경기도 대표로 선정 전국무용제 참가 기념 - 1992. 9. 25. 부산문예회관 앞 (투병 중)

 

 

 

 

* 경기무용협회장으로 투병 중 집행 

 

 

* 한영숙 선생을 비롯한 이현자. 민준기. 채상묵. 이명자. 이숙향. 김세일라. 국수호. 신관철. 조은미. 서정자 등 한국무용계 중진들이

 정금란 문하의 성남무용지부 신세대 무용인들과 성남시민회관 무대에서 합동공연.-1986. 12. 6. 성남시민회관 대극장.

 

* 성남무용협회 창립공연(1985.9.13)- 강선영(한국무용협회 이사장.중간줄 중앙). 정금란(성남무용협회 초대 지부장.앞줄 가운데).

특별출연한 조흥동(뒷줄 갓쓴이). 김근희(중간줄 한복). 김세일라. 이명자. 김광진 등 축하객으로...

1981. 11. 26. 서울 문예회관 공연기념 

 좌 : 김진걸. 정금란. 최희정. 뒷줄 좌 : 정현숙. 김월순. 홍옥미. 이은주. 이유선. 박현이 김영찬. 김희심.

 

1980. 12. 22. /전국무용인합동공연' 후 국립극장 좌 : 최현. 정금란. 김진걸.(정금란 문하 '승무' 단체무 최초 중앙무대공연) 

뒷줄 좌 : 서미숙. *. 박현이. 김영찬. 김희심. 

정병호(중앙대 교수, 민속학자). 최진용(문광부, 전 국립극장장역임). 김광진(한문예원). 이명자(태평무 전수조교).

김근희(대진대 교수)  등이 성남무용공연에 큰 관심과 격려를 주었다. 

 

 * 이하 성남무용학원(정금란문하생) 발표회 중 기념사진 중에서 (매 정기발표회를 개최)

 

 

 

(  * 정금란이 1991. 5. 14일 발병으로 입원 수술후 2개월여만에 퇴원,항암치료 중)

 

* 정금란의 무용산실인 성남무용학원생의 정기발표회는 성남무용인구 저변확대와 인재 육성 배출의 원천이었다.

위 발표회는 그가 애정과 열정으로 이끌고 독려했던 학원생 춤판의 마지막 기념사진이 되었다. 이듬해 6월 28일 사망.

 

* 정금란이 타계 1주기에 열린 성남무용학원생 발표회 프로그램 표지화

 

"끝 보이지 않는그리움을

                춤 꽃으로 피울때까지...."

  님은 아실까

  나무잎지는 황량한 이 산하에

  님 체온 상체기 되어

  춤 꽃망울 이슬처럼 빛나는

  세월의 맺힘을_

 

  님은 춤판을 비상하는

  한마리 학으로 날고

  날개 짓 마다에 뿌려 지는 섬광,

  그 빛마다 성년의 나이테로

  피어나는 춤 꽃들이

  끝 보이지 않는 그리움을

  선률로 토해내는 이 외침을 _

 

  남한산성 그늘 접힌

  마을 골짝마다

  춤 꽃으로 피워 채색하는

  님 계신 피안의 춤판 향하여

  잊기위한 세월을 영겹으로 치장해대는

  우리의 기도가 있슴을...    

                            1994.11. 6. 

                                        94, 제21회성남무용학원생 춤판 출연생 일동 

 

성남무용지부 주관의 정금란무용제 팜프렛 중-  

 

 

25729

 

* 험한 세상을 함께 동반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 말과 생각처럼 쉬운 일인가

 

동반자의 길은 서로 사랑함이다.

사랑은 자기희생과 인내와 용기까지도 담보해야만 가능하다.

주기만 해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

곁에 있어도 아쉽고, 떨어져 있어도 미더운 사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이 빈 마음뿐인데도

행복해 하는 사람

 

 삶의 동반자로  곁을 지켜주는 사람 있어

내 인생은 행복하다고 할 만하다.

                                                  2009. 7. 징소리 김성태

 

 

여수 오동도 -2011. 5. 29. 

오동도 

 오동도 '신이대나무' 숲길

여수 2012세계엑스포 홍보관 -2011. 5. 29.

 

남해  상주 '한려수도 유람선 선착장'에서 -2011. 5. 28.

 

비룡폭포 -2010. 12. 1.

 

2010. 11. 22. 양수리

 

2010. 10. 29. 강원양양 낙산사 의상대에서 

 

2010. 10. 30. 강원고성군 건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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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낙산해변

2008. 강원 공현진 옵바위 해변

2001. 속초해변

 

 

 

 

 

 

 

 

 

 

 

                                                                     2006.7.15. 중국심양행 대기중 인천공항에서 

 

 2008. 12.

 

 

중국심양 고궁에서-2006. 12. 

 

 

2003.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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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행궁 옛 모습 찾는다"
경기문화재단 남한산성 행궁 하궐 상량식 개최
 
유푸른·정대연·정정희·송명용 IJ
2002년 10월부터 진행되어온 경기도의 남한산성 복원정비계획이 3차 복원사업을 맞아 하궐 복원공사를 진행, 지난 7월 8일 하궐 중건 상량식을 가졌습니다.
 
상량식이란 건물 기둥에 보를 놓고 그 위에 종도리를 놓는 의례로서  건물을 지을때 가장 중요한 전통의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일 행사장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제관으로서 전체 의식의 중심을 담당하였으며,이근무 문화재청장을 비롯해 각 도지사와 자치단체장, 국회의원들이 내빈으로 참석하였습니다.
 
식전공연인 사물놀이패의 흥겨운 가락과  경기도 도립 무용단의 엄숙한 고천무 춤사위가 상량식의 시작을 알리고,황성태 경기도 문화관광국 국장의 경과보고와 내빈들의 축사가 이어집니다.
 
곧이어 본 의례인 상량문 봉안제의가 시작됩니다. 전통적으로 상량문은 공사관련 준공내용과 복된일이 있기를 기원 하는 찬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량문의 봉독을 마치고 하궐 증궐을 담당한 무형문화재 74호 전흥수 대목장이 상량문을 전달받아  봉인하고 종도리를 얹는 상량제의를 진행합니다.
 
1626년 건설된 근기사진의 좌보인 광주 남한산성은 경술국치 이전의 경기 일대의 의병들의 거점으로 사용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에 강탈및 파괴되었고 행궁이 소실되었었습니다.
 
경기도는 남한산성행궁 하궐 및 주변시설 복원정비공사에 6억원을 투자하여 오는 2010년 2월 완공예정으로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남tv 유푸른입니다.

청석공원 ‘열광의 도가니’
12일 저녁 제6회 광주예술제 개막

 

한근영 기자 hkyoung1636@yahoo.co.kr

 

 

 

12일 저녁 제6회 광주예술제 첫날인 청석공원은 1만여명의 시민들이 참석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과 함께하며 모처럼의 예술공연을 만끽했다.

저녁 7시 30분 개막식에는 정진섭 국회의원, 조억동 광주시장, 도.시의원, 소병훈 민주당 지역위원장, 지역 기관 및사회단체장 등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 공연의 흥겨움을 더 했다.

개막식에서 양원종 광주예총 회장은 “광주예술제를 통해 우리의 소리와 전통 춤과 시를 통한 정서함양과 정화를 시켜줄 수 있는 노래와 화합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했으며 조억동 시장과 정진섭 국회의원도 축사를 통해 행사를 준비한 예총 7개 협회 회원들을 격려하며 광주의 문화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어 개그맨 황승환씨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 축하공연에서 인기가수 Vn주희의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면서 청석공원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특히 공연 중반 샤이니와 에반이 무대위에 올라서자 무대 주변을 둘러싼 청소년들의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으며, 공연장의 열기는 하늘을 찔렀다.

행사장 한켠에는 미술협회와 문인협회에서 준비한 미술전시와 시화전이 열리며, 어린들을 위한 나무장난감 만들기, 천연비누만들기 등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다.

이번 제6회 광주예술제는 13일 벨리&라틴댄스, 광주시무용제, 국악과 함께 하는 타&락의 세계 등이 선보이며, 마지막 날인 14일에는 시민가요제 본선진출자 15개 팀이 대상을 놓고 열띤 경합을 벌이게 되며, 초대가수 2팀과 SBS 웃찾사의 ‘웅이아버지’팀이 특별출연할 예정이다.

한편 1만여명이 몰린 이날 행사장에는 화장실이 1곳 밖에 없어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으며, 쓰레기통이 마련돼 있지 않고 주차장에 야시장이 설치돼 있어 차량운전자들이 큰 불편을 겪는 등 문제가 발생, 다음 행사부터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출처 : 사진여행
글쓴이 : sun 미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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