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얇아지고 소득불평득 커져"

아시아경제 | 김진우 | 입력 2010.03.16 09:13 

[아시아경제 김진우 기자]갈수록 사회의 중추를 이루는 중산층이 얇아지고, 계층 간 소득불평등 정도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2인 이상 비농가의 중산층 비중은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66.7%로 집계됐다. 이는 2003년의 70.1%와 비교했을 때 3.4%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같은 기간 빈곤층은 11.6%에서 13.1%로 1.5%포인트 상승한 반면, 상류층은 18.3%에서 20.2%로 1.9%포인트 올라 중산층 이탈층이 상류층에 더 많이 편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 중 가장 중간에 있는 사람의 소득인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50% 미만은 빈곤층, 50~150%는 중산층, 150% 이상은 상류층으로 분류된다.
이와 함께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인 이상 비농가를 기준으로 2003년 0.277에서 2009년 0.293로 상승했다.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의 값을 갖는데 1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높다.
아울러 소득하위 20% 소득 대비 상위 20% 소득의 비율인 5분위 배율은 2003년 4.44배에서 2009년 4.92배로 높아졌다. 중위소득의 50% 미만자 비율인 상대적 빈곤율도 같은 기간 11.6%에서 13.1%로 올랐다.
통계청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중산층이 얇아지고 소득불평등 지수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글로벌 경기 한파에 더해 고령화 지수가 상승하는 것이 주원인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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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기자 bongo79@asiae.co.kr

언론이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야 하는 이유





▲ 서울신문 3월16일자 30면.

곽영욱의 입을 통해 '정치검찰'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 시민사회 재야인사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어느 한 정치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시민의 편에 서서 법의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검사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정치 검사' 행태로 물의를 일으키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행위는 해프닝이 아니다. 그들의 행위는 역사로 기록해야 하고 역사가 평가해야 한다. 언론이 제대로 기록해야 하는 이유이다.

조항제 부산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서울신문 30면 < 언론이 사회 신뢰도 높이려면 > 이라는 옴부즈맨 칼럼에서 "(곽영욱씨 관련 기사는) 부산 여중생 사건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작은 크기였지만, 피의자가 이전 정부의 총리이고 눈앞에 놓인 선거에서 제1야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라는 점에서 이 역시 높은 뉴스가치를 지녔음에 이의를 달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조항제 교수는 언론이 새겨들어야 할 쓴소리도 전했다.
"의심되는 것을 마치 기정사실처럼 흘리면서 언론을 이용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법과 언론이라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제도들의 근간을 흔드는 악의적인 행위이다. 이에 대해 언론이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사실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만약 반대사실이 나온다면 적어도 처음 피의사실을 보도할 때 준 충격을 완화시킬 만큼은 주목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검찰은 언론과 여론이 이용의 대상이 아닌 존중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사회도의 신뢰도는 그런 앞뒤가 분명한 언론에 의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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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복지한국'을 향한 보폭이 심상치 않다는 게 정가의 평가다. 시작은 지난해 5월 이른바 '스탠퍼드 대학 연설'이었다. 당시 미국을 방문한 박 의원은 "개인의 이익과 사회 공동선이 합치될 때 그것이 진정한 성장이다"라며 소외계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함께 가는 '공동체 행복'을 강조했다. 얼마 뒤 박정희 전 대통령 3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서는 "아버지의 궁극적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라며 자신의 뜻을 간접 피력했다. 국회 상임위(보건복지가족위원회) 활동에서도 그의 '복지 사랑'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심지어 "저는 복지란 궁극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이 자아실현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문화 정책 역시 시혜적 측면으로만 보지 말고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2009년 10월6일 보건복지가족부 국정감사)라고 한 발언은 보편적 복지 개념으로 해석이 가능했다.

'박근혜표 복지' 구상이 어디까지 나아갈지 아직은 베일에 싸여 있다. 사회복지제도의 근간이 되는 사회보장기본법을 전면 개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사실 박 의원의 대선 공약이 감세·규제완화로 대표되는 '작은 정부'였던 점에 비춰보면 그녀가 최근 던지는 복지 레토릭은 무리한 부분이 있다. 당시 분배보다 성장이 우선이라는 그의 시각("성장이 곧 복지다")은 두드러졌고, 특히 감세를 주장하면서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건 난센스로 받아들여졌다. "감세와 규제완화로 투자가 이뤄지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일자리는 최고의 복지다"라는 그의 논지가, 경제성장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예전같지 않다는 게 주지의 사실인 지금도 반복될지 지켜볼 일이다. 한 측근은 "큰 방향은 그대로다. 다만 뉘앙스와 무게중심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당대표나 후보 시절에는 오로지 개인으로 자신의 철학과 색깔을 드러내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부담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복지국가 담론을 띄우려는 시도는 사실 참여정부 때도 있었다. 경제지출 비용을 10%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복지지출 비용을 40% 수준으로 높이는 장기국가재정계획인 '비전 2030'이 그것. 하지만 추진동력을 상실한 정권 말기, 의제화되기 전에 수장되는 신세였다. 이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신의 저서 < 대한민국개조론 > 에서 살려내기도 했지만, 그 역시 당내 경선에서 탈락해 참여정부의 복지국가 비전은 빛을 보지 못했다. '비전 2030'의 핵심은 사회투자 전략이다.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을 지낸 김용익 교수는 "참여정부가 한 일은 잔여적 복지 수준에 머물렀지만 지향한 것은 사회투자 국가였다.

신자유주의의 작은 정부와 전통적 복지국가의 한계를 극복하는 제3의 대안이라 볼 수 있다. 복지가 성장을 가로막는 비용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투자가 되도록 재구성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가령 실업자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소극적' 방식에 재취업 교육을 제공하는 적극적 노동정책을 병행하는 식이다. '친노' 인사들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회투자국가론은 최근 출판된 김용익 교수와 민주당 '복지위 3인방'(백원우·최영희·박은수 의원)의 공저 < 복지도시를 만드는 6가지 방법 > 에 잘 드러나 있다.

바야흐로 복지가 당위인 시절이 왔다. 이런 싸움이라면 진보와 보수가 좀더 치열하게 경쟁해도 좋을 것 같다. 단, 늘 그랬듯이 말로 하는 '복지 마술'은 쓰지 않았으면.

. 지방예산 40% ‘업적’ 남는 건설 집중… 복지엔 18%뿐

서울신문 | 입력 2010.03.15 03:21

 
소양강댐 건설로 1973년부터 '내륙의 섬'이 됐던 강원 인제군 관대리에 요즘 버스가 다닌다. 지난해 10월 개통된 38대교 덕분이다. 과거 관대리 주민은 인제읍에 나가려면 나룻배로 소양호를 건너거나 차량을 이용해 1시간가량 양구 쪽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리 건설에는 5년간 382억원이 들었다. 관대리 주민은 50여명이다. 만일 382억원을 주민 복지에 투입했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윤택한 동네가 됐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충남 서천군에는 '어메니티 복지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는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노인요양시설, 노인요양병원, 장애인보호 작업장, 공동농장, 노인주택이 들어서 있다. '주거-일자리-소득-소비-건강'이 선순환을 이룬다. 복지마을에는 6년간 300억원이 들어갔다. 이 돈으로 도로를 건설했다면 모든 주민이 좀 더 편리해졌을 것이라는 가정 역시 성립한다.
두 기초단체의 사례에서 보듯 예산 집행은 일종의 선택이다. 지역 주민 및 전체 국민의 세금으로 편성되는 지방정부 예산을 어디에 쓰느냐는 단체장이 결정하고, 지방의회가 의결한다. 이들의 선택을 평가하고 견제하는 것은 주민의 몫이다.

●'예산 없다'는 거짓말
전문가 사이에 회자되는 예산 관련 '3대 거짓말'이 있다. '예산이 없다.', '우리지역이 소외됐다.', '내가 특별히 (예산을) 따왔다.'는 것이다. 기초단체장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14일 "예산이 없는 게 아니라 자기가 쓰고 싶은 예산이 없는 것이고, 아무리 자체 수입이 취약한 지역이라도 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가 펴낸 '2009년도 지방자치단체 예산개요'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3.6%에 불과하다. 지방 기초단체는 대부분 10% 이하다. 재정자립도란 자치단체 예산(일반회계+특별회계) 중 지방정부 자체수입(지방세+세외수입)의 비중을 뜻한다. 자체수입에다 중앙 정부가 내려보내는 지방교부세를 더해서 산출하는 재정자주도를 따져보면 전국 평균이 78.9%로 뛴다. 지방교부세 덕택에 지방 기초단체도 살림의 절반 이상을 자주적으로 꾸릴 수 있다는 의미다. 지방교부세를 받고도 예산이 부족하면 각종 보조금이 내려간다. 지방세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자치단체가 전국에 114개(46.3%)나 되지만 파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
그렇다고 자립도와 자주도가 떨어지는 지자체를 마냥 나무랄 수는 없다. 지역에 공장이 없고, 취업인구가 적으면 자체 수입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기초생활수급자나 노령층이 많아 경상적 복지비가 많이 들어간다면 적자 재정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예산을 어떻게 쓰느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지방정부 전체 예산은 137조 5349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60조 7751억원이 자본지출이다. 자본지출의 90% 이상이 건설 관련 예산이라는 게 정부와 전문가의 지적이다. 반면 사회복지 예산은 24조 1455억원에 그쳤다.

복지사업은 티가 나지 않지만 '호화청사'는 눈앞의 업적으로 남기 때문에 단체장들은 건설에 매달린다. 권경득 선문대 행정학과 교수는 "단체장이 국가에서 내려오는 교부세와 보조금을 '공돈'으로 여기기 때문에 무조건 건설만 하려고 하고, 지역 주민도 특정 계층에 혜택이 치우치는 복지보다는 당장 생활이 편리해질 토목 사업을 원하기 때문에 지방재정의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지적했다.

자치단체장의 '경영 마인드'도 지방재정의 질을 좌우한다. 지방세 수입은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자산임대수입, 이자수입, 수수료수입 등으로 이뤄지는 세외수입은 지방정부의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끌어올릴 수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뭉칫돈을 이자 한 푼 받지 않고 금융회사에 맡기거나, 공유재산을 방치한다. 전체 예산의 3%에 이르는 59억원을 이자수익으로 올리고 있는 전남 강진군 같은 사례가 전국으로 확산되면 국민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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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명시에 사는 직장인 이모(38)씨의 지난해 총 급여는 3986만원이다. 급여에 따른 소득세 44만 6810원과 주민세(소득세의 10%) 4만 4680원을 냈다. 76㎡ 규모의 아파트 한 채에 따른 재산세는 14만 8720원이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2000㏄ 승용차를 구입했다. 이에 따른 취득세가 13만 4330원, 등록세는 33만 5820원이었다. 자동차세도 15만 9550원을 냈다. 1년 동안 낸 직접세만 126만 9910원인 셈이다.

이 가운데 지방정부가 가져간 돈은 얼마일까. 취득세와 등록세, 주민세, 자동차세, 재산세가 지방세다. 지방교부세법에 따라 내국세인 소득세의 19.24%도 지방정부로 내려간다. 이씨가 낸 세금의 71.6%인 90만 9066원을 경기도와 광명시가 나눠 쓴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일상 생활에서 소비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붙는 부가가치세(간접세)의 5%도 올해부터 지방정부의 몫이 됐다. 휘발유와 술, 담배도 지방재정에 도움을 준다. 휘발유 1ℓ당 교통세 529원, 주행세(교통세의 26%), 교육세(교통세의 15%), 부가가치세 등이 따라 붙는다. 이 가운데 주행세와 교육세가 지방재정에 귀속된다. 이씨가 3만 6000원을 주고 휘발유 20ℓ를 넣었다면 1만 8189원의 세금 가운데 지방정부(교육청 포함)가 4500원을 갖는다.

퇴근 후 술집에서 마시는 소주는 1병에 3000원이지만, 원가는 376원에 그친다. 원가의 72%에 해당하는 주세는 국세이지만, 종부세처럼 전액 지방에 지원된다.

광명시는 어떻게 살림을 꾸릴까. 2010년도 광명시 예산은 3784억원이다. 공무원 월급, 업무추진비, 직무수행경비, 의회비, 성과금, 공무원연금 부담금 등 인건비가 660억원(17.4%)을 차지한다.
시설비와 민간자본이전 등 사실상의 건설 관련 예산이 893억원(23.6%)이나 된다. 관변단체 등에 주는 민간단체 경상보조금도 482억원이다. 지역 시민단체 사업비 지원액은 13억원에 불과하다. 복지비는 997억원(26.3%)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복지시설 건설비도 여기에 포함된다.

광명시 인구는 3 1만 7130명이다. 시민 1인당 직·간접으로 119만원을 부담하고, 119만원어치의 유·무형 서비스를 골고루 받아야 제대로 된 시정(市政)이라고 할 수 있다.
이씨는 "지방정부가 내가 낸 세금을 이렇게 많이 쓸 줄 몰랐다."면서 "납세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단체장과 의회의원을 똑바로 뽑아야겠다."고 말했다.

이창구 유지혜기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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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낭비 예방 사례

 

[서울신문]광주 북구 중앙동사무소 농협 앞 횡단보도는 유독 턱이 높다. 빙판길이 되면 노인과 어린이가 자주 넘어진다. 구청은 올해 보도턱 낮추기사업을 한다. 주민 제안으로 예산 500만원을 편성한 덕분이다.

지붕이 없어 비 올 때 우산을 쓰고 버스를 기다렸던 북구 양산 택지지구의 정류장 7곳에 올해 단계적으로 지붕이 설치된다. 역시 주민 제안으로 3000만원이 배정됐다.
●세입·세출내역 모두 공개

둘 다 주민에겐 '작지만 필요한 사업'이다. 이 같은 생활밀착형 예산집행이 가능한 이유는 참여예산제의 도입으로 주민이 직접 예산 편성에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참여예산제는 주민이 직접 지역 예산의 용도를 정하고, 집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에게 세입·세출 내역을 조목조목 공개해 투명성이 확보되기 때문에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다.
광주 북구가 200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참여예산제를 도입했다. 3000억원에 이르는 본예산을 어떻게 쓸지 주민을 대표하는 시민위원회가 의견을 낸다.
구는 구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기 전에 꼭 민·관협의회를 거쳐 관련 내용을 조정한다. 2010년도 예산 편성과정에서는 시민위원회가 25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 89건을 제안했고 이 가운데 54건, 5억원이 반영됐다.
●정류소 지붕·골목길 화단 등 반영
덕분에 올해 북구에는 주민등록증 진위확인 시스템이 설치되고, 학교급식에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우선 공급된다. 쓰레기 불법투기 상습구역인 골목길에는 화단이 설치되고, 초등학교 주변 인도에 주차를 할 수 없도록 울타리도 만든다.
2009년 12월 현재 전국 246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00여곳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해 참여예산제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납세자소송제도의 도입 필요성도 지적한다. 지자체 등이 위법한 재무행위로 손해를 보면 납세자인 주민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함께하는시민행동 정창수 예산감시전문위원은 14일 "주민소송제는 절차가 까다로워 실효성이 높지 않다. 납세자소송제를 도입해 납세주권을 보장하고, 예산낭비 공무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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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道의 해양레저전시회 예산낭비 사례

서울신문 | 입력 2010.03.15 03:23 

[서울신문]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낭비성 사업은 정치적 필요나 기관장의 업적쌓기에 치우쳐 사전 검토를 제대로 거치지 않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서울신문은 14일 행정안전부 종합감사에서 주의 조치를 받은 한 광역자치단체의 해양레저산업 전시회 개최 사례를 통해 지자체의 예산 낭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이 발간한 예산 감시 실무매뉴얼과 감사원이 제시한 예산낭비 체크포인트 목록을 참고했다.

A도는 2008년 전시회 개최를 위해 투·융자 심사를 받고 예산을 13억원으로 편성했다. 이후 요트대회도 함께 열기로 계획을 변경해 소요 예산이 53억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A도는 예산을 추가편성하지 않았다. 대신 공동주최자인 관할 기초자치단체 B시에 도 예산 중 일부인 시책추진보전금을 지원했다. 이 돈은 재해 대비 등을 위해 쓰도록 용도가 정해진 예산이다. 행안부는 "행사는 공동주최가 아니라 사실상 A도가 주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사업타당성 검토 잘못' 유형)
●운영업체 수의계약… 재위탁 묵인
A도 조례상 행정권한을 위탁받은 기관은 이를 다른 기관에 이양할 수 없도록 돼 있다. 하지만 행사 위탁기관인 C사는 사업을 다시 제3의 대행사에 맡겼고, 불필요한 대행수수료 1억 1100만원이 들어갔다. 운영 대행업체 선정 과정에서도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었다.(→'계약 및 공사관리 잘못' 유형)

A도는 행사 홍보 과정에서 보조금을 지원받는 단체 3곳에 요청해 3억 4000여만원을 TV 중계방송과 축하 공개방송, 신문광고료로 썼다. 이 보조금은 수도권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환경 조성에 쓰라고 지급된 것이다.(→'국고보조금 관리 잘못' 유형)
●평가보고 없이 성과금 1억 지급
전시회 뒤에는 성과 평가 용역 보고서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담당 공무원과 관련 실·국 및 시·군에 성과시상금 1억여원을 줬다.(→'공무원의 도덕적 해이' 유형)
함께하는시민행동은 이 밖에도 예산이 낭비되기 쉬운 아킬레스건으로 업무추진비 및 홍보비, 지역축제, 관용차량 및 관사, 지방의회 해외연수, 사회단체보조금 등을 꼽았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가요계의 거목인 원로 작곡가 박춘석씨가 2010. 3. 14일 오전 6시 자택에서 향연 80세로 별세했다.

'아리랑 목동' '비 내리는 호남선' '삼팔선의 봄' ' 등 주옥같은 명곡들을 남긴 그는 특히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씨와 명콤비를 이뤄 일세를 풍미했다.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흑산도 아가씨' 등 수많은 인기곡이 그에 의해 만들어져 이미자씨의 목소리로 세상에 퍼졌다.

고인은 제1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1994년), 옥관문화훈장(1995년) 등을 수상했으며 뇌졸중으로 투병하다 타계했다.

 

 

 

 

 

2천700여 곡 남긴 박춘석의 음악세계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초우' '비내리는 호남선' '마포종점'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한국인의 애환을 노래하고 가슴을 적신 이 주옥같은 노래는 모두 한 작곡가에게서 탄생했다. 14일 별세한 박춘석씨 작품이다.

박씨는 1950년부터 40여 년간 마르지 않는 창작열로 국내가요 작곡가 중 가장 많은 곡인 2천700여 곡을 남겼고,
그중 1천152곡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됐다.  역시 최다 등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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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1992년 남인수가요제 개막식에서 좌: * . 김성태(성남예총 회장). 박춘석(작곡가). 남진(가수). 석현(한국연협 이사장). 오세응(국회문공위원장) 

 

 

 

새로운 것이 처음부터 대중에게 환영 받을 수 있는 시절은 드물었다. 인상파 화가들이 추구한 ‘실험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누구도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의 그림을 명작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인상파 전시회가 열렸을 때 상황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당시 파리는 문화적 요구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이끄는 세력은 나폴레옹 3세의 경제 부흥정책 덕택에 급격하게 부상한 중산계급이었다. 백화점 소유주들이나 상인들도 섞여 있었다. 이들은 귀족과 부르주아의 문화를 동경했고, 이른바 상류층의 문화를 자신들도 향유하고 싶어 했다. 이런 요구에 잘 부합한 예술가들이 바로 바르비종파 화가들이었다.

 

 

인상파는 배척받고 바르비종파는 환영받은 이유


물론 그림 자체만으로 놓고 본다면 바르비종파 화가들도 인상파 화가들 못지않게 혁신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르비종파 화가들이 없었다면, 인상파 화가들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인상파 화가들은 배척을 받고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환영을 받은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르비종파 화가(코로, 밀레 등)들은 부르주아의 응접실에 걸려 있었고, 인상파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에게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그리다 만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이 따위 그림들은 고급주택의 응접실보다도 선술집 벽에나 걸어놓으면 딱 맞을 것 같았다.

 

 

 

그림을 보면서 기분 전환을 기대했던 관람객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말 그대로 경악스러웠다. 세잔의 그림이 최악이었다면 드가의 그림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 우리가 보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당시 분위기에서 발레리나나 세탁부는 음탕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였다. 도시생활에서도 하층에 속하는 이들이 발레리나나 세탁부였던 것이다. 19세기에 발레리나는 우아한 직업에 속했다기보다 ‘쇼걸’에 가까운 존재였다. 대조적으로 세탁부도 고상한 이미지와 한참 거리가 먼 존재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런 그림을 응접실에 걸어놓고 손님을 맞이할 부르주아가 어디 있겠는가? 바르비종파 화가들도 귀족이나 부르주아보다도 농부와 전원풍경을 주로 그렸지만, 인상파 화가들만큼 생생하게 일상생활 자체를 그렸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바르비종파 화가들의 그림은 급격하게 진행되었던 파리의 도시화에 힘입어 잃어버린 전원풍경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드가의 [발레 수업]은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에 그림을 좀 안다는 관람객들에게 파격적인 시선을 선사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단순하게 파격적인 소재 때문에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닌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거친 마감은 말할 것도 없고 드가 특유의 구도가 편안한 균형감에 젖어 있는 관람객의 시선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드가는 다른 전시 참가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댕브라크몽의 그림을 함께 전시하도록 기획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자신의 그림으로 인해 발생할 분란을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드가는 당시 미술계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19세기 파리에서 발레리나는 ‘쇼걸’에 가까운 존재였다

관람객들은 드가를 비롯해서 인상파 화가들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하면서 조롱했다. 그림 같지도 않은 것을 그림이라고 그려놓고 전시회를 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나 지식인에 대한 대중의 혐오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이들은 화가들의 이름까지도 괴상하다고 트집을 잡았다. 모리조나 세잔 같은 이름이 우습다는 것이었다. 그림을 이해할 수 없으니, 사소한 것을 가지고 인신공격이라도 가하고 싶었던 것일까? 여기에서 한 술 더 떠서 어떤 관람객은 화를 내면서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그때 그 시절 관람객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본다면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요즘처럼 공교육제도가 발달해서 미술에 대한 기초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예술을 일상생활을 위한 기분전환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상황은 더 나빴을 것이다. 마네의 옹호자였던 에밀 졸라도 전시회를 방문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논평을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노력이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면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미학운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수적인 언론들은 이들의 전시회를 완전히 무시했지만, 좌파 신문들은 비교적 자세하게 보도를 했다. 특히 그 중에서 <파리 저널>이라는 신문은 모네를 극찬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호평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인상파의 이름을 소개하고 널리 알려준 비평이 없지 않아 있었다. 비평가 카스탕게리 같은 이는 공식적이고 아카데믹한 그림을 거부하는 새로운 화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소식을 전했고, 이런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논평에 힘입어 차츰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화가들로 성장시킨 장본인은 뒤랑-루엘이라는 집요하고 걸출한 화상이었다.


언제든 역사의 굽이마다 시대의 감수성을 남달리 파악한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이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기막힌 감각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대를 함께 만들어가는 뛰어난 비평가와 상인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택광 / 문화비평가, 경희대 영미문화과 교수

부산에서 자랐다.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문화연구에 흥미를 느끼고 영국으로 건너가 워릭대학교에서 철학석사학위를, 셰필드대학교에서 문화이론을 전공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21>에 글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화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시각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치사회문제를 해명하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눈 내리는 날

 

어쩌지 못하는 탐욕의 하루

봄을 시샘하듯 눈이 내린다.

내리는 눈바람에 시린 마음을 비운다.

비우고 버릴 것이 왜 없을까만

선뜻 버려야 할 무엇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

 

눈길에 발자욱을 꼭꼭 찍는다.

일상의 덕지덕지 묻은 나태와 욕심이

눈처럼 녹기는 할런지?

 

눈 내리면 마음이 설렌다고 했던가!

눈 내리면 마음이 슬프다고 했던가!

설렘도 슬픔도 먼 뒤안길인 이방인으로

눈 내리는 향기에 취했다

 

비틀대는 눈이 나를 닮았는가

어디쯤에 개나리가 설원에 피고 있을까

 

눈 내리는 날

눈을 머리에 이고 간다

 봄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 2010. 3. 10. 징소리

 

 

 목현동 집 앞에서 -2010.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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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경영대학 교수이자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이 가장 주목하는 경영 구루인 저자는 잘나가던 기업들이 망하는 이유를 `활동적 타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업들이 과거의 성공 방식만 답습한 나머지 활동적인 타성에 젖어 실패에 빠진다는 것이다.

활동적 타성에 빠진 기업은 마치 웅덩이에 빠진 자동차와 같다. 시장의 변화를 깨달은 경영자가 마침내 위기에서 빠져나오려 애를 쓰고 가속 페달을 밟아보지만 바퀴는 오히려 더 깊이 박히고 만다는 것이다. 활동적 타성에 빠진 조직 역시 격동기에 급격한 변화를 맞이해도 기존 시스템을 바꾸지 못해 결국 몰락의 길에 빠져들고 만다.

그렇다면 기업이 활동적 타성에 빠진 징후는 어디서 찾을까. 저자에 따르면 △최고경영자가 유력 경영 잡지의 표지인물로 자주 등장할 때 △최고경영자가 `경영의 달인'이라는 타이틀로 기업을 경영하는 경우 △최고경영자가 저술활동에 매진할 경우 △과시성의 크고 화려한 사옥을 지을 때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스포츠 경기의 광고판에 광고를 실을 때 △경영진의 구성이 복제형 인간처럼 비슷할 때 등이 활동적 타성에 빠진 기업의 전형적인 사례다.

* "꿈과 사랑과 낭만이 담긴 환상미" - 꿈, 그리움.

2010. 3. 10. 오후 5:30. 성남에서 오랫동안 친교를 나누며 지내는 유길수 님의

간곡한 권유로 그와 후포초등학교 동창생이라는  정미애 님의 서양화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인사동 단성갤러리를 찾았다.

 

어릴때 부터 미술에 재질이 있었으나  꿈은 접고 살았다며, 그림에 대한 열정을 주체할 수 없어

늦게 그림을 시작, 오늘 첫 개인전을 열었다며 기뻐한다.

개전식에는 초교시절의 미술선생을 비롯해서 고향 지인들과 동창들, 미술계 인사들이 찾아와 축하했다.

 

" 얄궂은 봄.

봄을 기다리는 맘은 모두 같아 / 봄이 스쳐가는 땅은 온통 수라장이다

대지를 품고 솟아오른 꽃과 풀... 스스로 생존권을 찾기위한 몸부림인가.

아! 우리에겐 봄은 언제나 꿈이런가"-작가노트에서

한국미협, 한국미술창작협회, 대한민국 한가족 미술협회 등에서 회원으로 활동하며 작품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정미애 작가.

 

봄을 기다리는 꿈 많은 소녀처럼 화사한 작가의 얼굴에도, 작가의 " 꿈/ 그리움" 작품에도 이미 봄은 활짝 꽃피고 있었다.

갤러리 밖은 밤새 내린 눈으로 온통 설원인데...

                                                                        2010. 3. 10. 징소리 김성태

 

 

 

  

 

  

정미애 작가와 부군 

 

 

좌 ; 유길수. 정미애 작가. 김성태 

 

 

 

 

 

 

 

 

 

전시 작품 중에서 

고 김소희 명창의 마지막 제자인 오정해는 중학교 때부터 판소리 수업을 받았다. 오정해는 "당시 최악의 상황도 이겨낼 수 있도록 혹독한 훈련을 했었다. 가령 선생님께서는 음식이 쉬어도 버리는 법이 없었다. 선생님이 먹는데 하물며 제자가 안 먹을 수 있겠느냐"며 "지금도 쉰 음식을 어느 정도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다"고 말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사연인 즉 몸이 악기인 소리꾼으로서 언제 어디서라도 음식을 먹고 탈이 나지 않고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면역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 중 하나였던 것. 오정해는 "7남매 중 막내라 빨래를 한번도 해본 적 없었는데, 자기의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기 때문에 겨울에 찬물로 청바지를 빨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또 오정해는 "1년에 2번 집에 가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당시로서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사춘기'를 말하는 것조차 호강이라 생각한다"며 쉽지 않던 판소리 사사 과정을 회고했다.

하지만 오정해는 고 김소희 선생이 손수 자신의 한복을 줄여준 것을 입고 나간 첫 대회에서 당당하게 1등을 거머쥐며 처음으로 "수고했다"며 등을 두드려주시는 고인의 손길을 맛봤다고. 오정해는 "어린 내게 안 어울리는 한복이었지만 대회에서 1등을 했고, 선생님이 칭찬 대신 수고했다고 등을 두드려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오정해는 "나는 선생님의 제자로서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 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대회에 임했는데 1등을 하게 됐다"며 "나의 단아함, 배려, 나를 낮추는 법, 사람을 대하는 법 등은 모두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것이다. 선생님은 모든 걸 주고 가셨다"며 진정한 소리를 주고 지난 95년 영면한 고인을 떠올리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오정해는 자신의 돈을 모아 사정이 어려운 후배들에게 주저없이 도움을 준 고인의 대인배다운 면모를 공개하며 "16년 전 돌아가실 때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싫으셔서 어느 때보다 꼿꼿하고 반듯하셨다"며 "단 한 분의 스승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정해는 "70살이 넘어서 (나를)마지막 제자로 삼으셨을 때 하신 말씀이, '소리쟁이로 사는 우리 삶이 너무 싫어서, 우리 제자는 소리도 잘하고 지적인 면모도 보이는 내 김소희의 제자로 기억되게 하고 싶었다'고 하셨다"며 "선생님 연세가 있으셔서 힘드니까 한번에 배우려고 안간힘을 다 해서 배웠다. 1년치를 한달 만에 배워서 온 힘을 다했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잠꼬대까지 판소리로 하며 고군분투 했던 오정해. 결국 그녀는 스승의 뜻대로 대학 강단에 서게 됐다. 지난 연말 동아방송예술대학 공연예술계역 전통연희전공 교수로 정식 임용된 것. 오정해는 "늘 제자가 대학 강단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는데, 우리 선생님의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어서 강단에 서게 됐다"며 "너무 많이 사랑하고 감사합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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