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복지한국'을 향한 보폭이 심상치 않다는 게 정가의 평가다. 시작은 지난해 5월 이른바 '스탠퍼드 대학 연설'이었다. 당시 미국을 방문한 박 의원은 "개인의 이익과 사회 공동선이 합치될 때 그것이 진정한 성장이다"라며 소외계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함께 가는 '공동체 행복'을 강조했다. 얼마 뒤 박정희 전 대통령 3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서는 "아버지의 궁극적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라며 자신의 뜻을 간접 피력했다. 국회 상임위(보건복지가족위원회) 활동에서도 그의 '복지 사랑'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심지어 "저는 복지란 궁극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이 자아실현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문화 정책 역시 시혜적 측면으로만 보지 말고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2009년 10월6일 보건복지가족부 국정감사)라고 한 발언은 보편적 복지 개념으로 해석이 가능했다.
'박근혜표 복지' 구상이 어디까지 나아갈지 아직은 베일에 싸여 있다. 사회복지제도의 근간이 되는 사회보장기본법을 전면 개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사실 박 의원의 대선 공약이 감세·규제완화로 대표되는 '작은 정부'였던 점에 비춰보면 그녀가 최근 던지는 복지 레토릭은 무리한 부분이 있다. 당시 분배보다 성장이 우선이라는 그의 시각("성장이 곧 복지다")은 두드러졌고, 특히 감세를 주장하면서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건 난센스로 받아들여졌다. "감세와 규제완화로 투자가 이뤄지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일자리는 최고의 복지다"라는 그의 논지가, 경제성장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예전같지 않다는 게 주지의 사실인 지금도 반복될지 지켜볼 일이다. 한 측근은 "큰 방향은 그대로다. 다만 뉘앙스와 무게중심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당대표나 후보 시절에는 오로지 개인으로 자신의 철학과 색깔을 드러내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부담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복지국가 담론을 띄우려는 시도는 사실 참여정부 때도 있었다. 경제지출 비용을 10%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복지지출 비용을 40% 수준으로 높이는 장기국가재정계획인 '비전 2030'이 그것. 하지만 추진동력을 상실한 정권 말기, 의제화되기 전에 수장되는 신세였다. 이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신의 저서 < 대한민국개조론 > 에서 살려내기도 했지만, 그 역시 당내 경선에서 탈락해 참여정부의 복지국가 비전은 빛을 보지 못했다. '비전 2030'의 핵심은 사회투자 전략이다.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을 지낸 김용익 교수는 "참여정부가 한 일은 잔여적 복지 수준에 머물렀지만 지향한 것은 사회투자 국가였다.
신자유주의의 작은 정부와 전통적 복지국가의 한계를 극복하는 제3의 대안이라 볼 수 있다. 복지가 성장을 가로막는 비용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투자가 되도록 재구성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가령 실업자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소극적' 방식에 재취업 교육을 제공하는 적극적 노동정책을 병행하는 식이다. '친노' 인사들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회투자국가론은 최근 출판된 김용익 교수와 민주당 '복지위 3인방'(백원우·최영희·박은수 의원)의 공저 < 복지도시를 만드는 6가지 방법 > 에 잘 드러나 있다.
바야흐로 복지가 당위인 시절이 왔다. 이런 싸움이라면 진보와 보수가 좀더 치열하게 경쟁해도 좋을 것 같다. 단, 늘 그랬듯이 말로 하는 '복지 마술'은 쓰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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