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문화재단은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문화는 문화 다워야 한다.

문화가 문화적이지 못하면 문화는 이미 사이비보다 못한 탈 문화적 집단에 불과하다. 문화가 그 어느 분야보다도 신뢰와 존경을 받는것은 문화가 정신가치의 규범을 최우선으로 지향하고 있어 범 사회적 표상이기 때문이다. 문화집단이 그 존재가치를 스스로 괴도이탈했다면 이는 이해차원이 아니라 비난과 질타를 자초한 꼴이고 과감한 개혁과 수정이 불가피하다.

성남문화재단!
재단의 설립 과정에서 공론화된 시민사회의 지배적 의견은 재단의 주 업무가 아트센터의 운영관리 여서는 않된다는 것이었다. 재단의 관리감독하에 아트센터를 두던가, 아니면 독립기구화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재단의 상임이사가 아트센터 사장을 겸직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1인 채제의 독식을 막기위해서도 필요한 대목이었다. 그러나 개관일을 명시한 시한부 아트센터의 개관배경은 다분히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었고 재단설립은 여론을 무시한체 밀어부치기식으로 결론지어졌다.

재단의 인력시스템
외인부대를 연상케 하는 전형적 모델이라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여론이다. 인사규정도 자의적 탈법에 가까운 전횡으로 이루어 졌슴이 시의회 사회복지위의 행정사무감사에서 백일하에 드러났다.

71명의 직원중 39명이 특채
나머지도 서류심사와 면접만을 통한 사실상 전직원이 특채이고 더구나 미자격자를 특채 4개월만에 부장으로 승진시키는등 제멋대로의 인사가 이루어 졌다는 지적이고 보면 아트센터 사장의 화려한 전직 케릭터(?)와 전직원 전문가 인력시스탬 평가에 개별적 재 심의가 이루어져야할 부분이다.

재단의 급여 및 인건비
재단 임직원의 급여가 성남시 공무원 보수표에 준한다는 규정을 무시하고 운영수당(20%) 및 시간수당,각종수당을 전직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여 재단 출범이후 매일 시간외 수당과 출장비로 매일 5시간씩 150,000원을 일률적으로 지급하였고, 공무원의 경우 1시간당 수당이 8,500원이나 재단은 14,986원으로 2배 가까이 높게 책정되고, 휴일수당 또한 공무원의 경우 62,810원이나 재단은 119,890원. 급여또한 공무원 6급 32호봉이 월 437만원에 비해 이 직급에 해당하는 재단 4급이 542만원으로 책정 되어 공무원과 70만원~150만원의 임금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고 보면 재단의 자의적 종횡이 예산집행의 부실 을 가져온 결과이다.

재단의 내년도 예산
재단은 06년도 예산으로 2백13억원을 수립하고 이중 53억원(25%)은 아트센터의 각종 공연수입, 아카데미 프로그램 수강료, 극장 및 전시관 대관료로 충당하고 160억원(75%)은 성남시의 출연금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재단의 자체수입금(?) 인 53억원은 재단이 책정한 임직원 인건비 51억원에 가까운 예산으로 아트센터의 직접운영 수입금이 겨우 임직원 급여에 충당되고 마는 결과여서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행정사무감사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않은 예산을 시의회에 올렸다는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일이다.

재단의 운영경과 과정
아트센터 개관을 경축한다는 명분하에 치뤄진 급조된 "탄천 페스티벌"은 경기도에서 성남대표축제로 지칭된 세계민속예술축제를 무시한 처사였다. 개막과 폐막행사에 방송프로와 대중연예인을 투입하는등, 문화예술 전문인력이라고 자처하는 재단의 기획력과 사고가 의심되리만큼 4억3천만원의 예산을 전용집행하였다.

탄천행사 무대제작 업체(STAGE)에 용역비 350만원을 체불하고 예산이 초과되어 200만원은 못주겠다고 시의 신용을 실추시키는등, 세계민속예술단 섭외 업체와 사업계약 및 예산임의 조정 휴유증등 잡음이 많아 재단이 과연 시예산을 집행하는 공공재단인가를 의심게하는 주먹구구식 기관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개관페스티벌 메인 프로그램도 지역의 공청회나 설명회가 있어 프로그램 선정에 따른 예산집행의 투명성과 효율성도 재고되었어야 한다.

외부 프로그램의 홍보 극대화에 비해 지역의 참가프로그램은 개관 직전까지 재단 홈페이지나 홍보책자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고, 개관 예산 44억3천8백8십2만8천원 책정에 15개 성남지역 예술단체에 고작 3천8백50만원이 편성되는등 재단의 독선적 결정은 지역문화계의 비난과 원성은 물론, 성남예총과 9개회원예술단체 각 지부의 항의 질의서까지 받아 재단의 철저한 지역성 무시와 외부공연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자괴감으로 성남아트센터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였다.
아트센터 광장의 영구조형물인 핸드프린팅도 외부인사를 포함한 선별에 객관성이 결여되고 편의적으로 선정되었다는 논란이 재기되어 재 첨가하는등 설치물 표기도 오류가 많아 재 수정이 불가피하다.
개관식에서의 역대 아트센터 계획에서부터 관계한 지역인사들의 초청은 배려하지 안고 외부인사중심의 pr성 의전문제 또한 지탄이 되었다.

재단 최고의 홍보 마켓팅 전략이 집중된 재단자체제작 오페라 "파우스트"는 8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작품제작 및 연출자 선정의 개연성으로 출연자들이 선정되었다는 가정에서도 자체제작이 갖는 예술적 저작권과 이후의 재활용(재 공연및 타지에 판매권)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부천시립합창단 이 아닌 성남시립합창단과 프라힘오케스트라(서울의민간단체)보다는 성남시향을 프로그램 공급자로 출연시켰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시민회관에서 중원, 수정구민을 위해서도 재 공연을 준비함이 지역주민에 대한 배려이다. 재 공연을 위해서는 그때마다 상당한 시예산을 지불해야만 한다. 시립 예술단체를 선정했더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과연 1회적(총 4회공연)인공연물을 자체제작이라고 의미부여를 할 수 있을찌도 의문이다. 또한, 7세이상의 관람가인 공연물에 전나체에 음모까지 드러내고 성적연기를 서슴치 않는 공연물을 수천명이 관람하는데 재단은 사전의 진단을 했어야 한다.
출연진의 노출과 선정성은 작품의 전체 분위기, 필연성, 연출의 고유성에 따라 작품완성도에 영향을 준다고는 하겠으나 관람객의 분포 ,연령,지역성, 예술적 수준에 따라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성남 공공문화재단 최초의 자체제작 공연물에 전나체의 출연을 등장시키고 7세이상의 청소년 입장을 결정한 것이 과연 재단의 전문적 예술성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고 이에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재단에 있슴을 유념해야 한다.

재단이 발행하는 월간 아트뷰는 solution co,ltd 디자인과 (주)백산인쇄를 선정하여 월 1만부 제작에 1500만원의 예산을 드려 전국의 문화재단중 최호화판으로 발간,부천문화재단의 8000부에 발간비 80여만원과 비교해 볼 때 상상이 안가는 규모로 시정을 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아트뷰등 재단홍보지에 게시되는 광고 수입은 디자인 업체의 자체영업성과에 맡긴다고 한다면 이에대한 특혜소지도 떨칠 수 없는 의혹이 있다는것이 여론이다.

한편 명품 및 외제 자동차 업체들의 광고게제 조건으로 아트센터는 한달이상 1억4천8백만원의 "제규어'를 전시하는등 '아우디'도 전시되어 재단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있으며 지역주민 다수의 위화감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트센터내 uptown, LG하운드, 구내식당 위탁업체 선정에도 심사배점에서 심사항목중 사업제안서에 50%의 비중을 두고 가장 중요한 입찰금액등의 배점이 뒤로밀려 대형업체만의 입찰이 가능케 하였다는 것이고 보면 이또한 재단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재단의 부실운영은 과히 '종합병원'을 방불케 한다는 것이 시의회의 지적이다.

재단은 그동안 공연 및 전시 프로그램에 투입된 예산과 입장수입, 미술장식품 구입예산및 선정결과등 모든것을 시민사회에 투명하게 밝히고 새로운 개혁의 진로모색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드느데 심기일전 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재단의 정상화를 위하여 필요하고 이는 재단 스스로 풀어야 할 몫이다.

누군가 말했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획일주의가 압도할 때 인간은 언제나 부끄러운 역사를 남긴다."고 말이다

문화불모에서 출발하여 오늘의 성남문화 역사를 일구면서 가슴시린 문화예술 현장을 살아온 이땅의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애써 침묵하며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한계를 재단은 헤아려야 한다.

성남문화재단! 오늘 그들이 성남문화의 점령군으로 당연시하는 그 호사스러운 자리에서 과연 당당히 외칠수 있는가? "성남문화의 미래를 열어갈 파수꾼으로 시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에 희생과 봉사자가 되겠노라"고..

김성태 st3845@hanmail.net.
기사등록 : 2005-12-18 17:32:42
성남문화재단의 총체적 부실
성남문화재단에 대하여 6일에 있었던 성남시의회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윤광열)의 행정사무감사에서 밝혀진 결과는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운영"으로 드러나고 있다.

참으로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성남문화재단은 성남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래지향적 문화도시를 구현하여 시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성남시 조례에 의하여 설립된 공공재단이다.
그러므로 재단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인적 시스템의 기본적 요건은 당연히 문화가치의 철학을 지닌 전문인력으로 구성됨이 원칙이다. 여기에는 성남시민으로 살아가는 긍지와 애정을 가진 정신적 자세를 포함한다.

이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재단의 운영또한 가장 문화적인 절차에 따라야 함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화의 가치추구는 가장 상식적이고 보편타당한 논리의 결과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금 성남문화재단의 운영은 탈 문화적이어서 시민들을 슬프게 한다.

인사규정의 탈법,급여책정을 편성한 자의성,전문집단을 자처하는 과시성,문화라는 명분의 작의성,지역정서를 무시한 편의성,등은 오만과 독단으로 문화적 소양과는 상극되는 요소들이다.

성남문화재단이 심기 일전하여 진정으로 봉사와 희생의 자세로 겸손히 행보하기를 기대함은 시민 모두가 문화적 삶의 방향성을 재단에 기대하고 있기때문이다.

/김성태 st3845@hanmail.net.
기사등록 : 2005-12-18 17: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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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회동탈박물관에서... 탈의 해학적 표정에서 감춰진 인간의 또다른 내면과 모순을 찾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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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공유하고 하나되는 공간과 시간의 대화를 찾아나선 하회마을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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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국난을 극복하며 이후 초가삼간에서 생을 살다간 청빈의 표상 서애 류성룡의 종택으로 그를 추모하는 하회마을 '충효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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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의 끝자락에 하루종일 바가 오락가락, 하회마을을 굽어보며 급변의 세태를 품어 안고 기암절벽으로 서 있는 '부용대'아래로 낙동강이 빗물에 흐려진 흙탕물로 유유히 흐르고..발길끊긴 나룻터엔 사공없이 낡고 외로운 배 하나만 ..       -07.9.2. 한맥이 숨쉬는 문화현장의 나들길에서  -김성태
출처 : 원우회-좋은사람들의 모임
글쓴이 : 징소리(s.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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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을 위한 여행지로 설악산을 제일 많이 찾았다.

청소년기를 속초에서 살았던 탓도 있으나  동해와 인접한 설악산을 대하면 마음이 평온하기 때문이다.

                                                                                                                           - 징소리 김성태


 

* 삶터가 경기도 광주고 보니 지척에 나한산성이 있다. 성남에서 30여년을 고향삼고 살았으니

남한산성과 인연맺고 정들어 자주 산성에 오른다. 

 산성은 늘 새롭다. 철따라 다르고, 숨겨진 전설과 사연이 하 많아 속속들이 알려고 하는것이 유서깊은 산성에 대한 결례이고 잘못인지도 모른다.

그저 가까이 정들어 벗하고 있으니 그의 신비함을 지켜주는 것이 도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보면 유년시절은 속초에 살았으니 '설악산'이 벗이고, 지금은 '남한산성'이 정겨우니 이름 알려진 산 가까이에 사는게

삶의 필연인가 싶다

                                                                        . - 2011. 10. 26. 아침 징소리 김성태

                                                                         

복원된 행궁 전경-2011. 4. 17.

 

 

 

 

2010. 11. 25. 

 

 

 

 

 

 

북문에서 -2010. 11. 21. 

 

 

 

남문- 2010. 11. 13.

 

좌 : 김성태. 김정진. 조현기.-2010. 11. 13. 전, 현, 성남예총 사무국장인 두사람을 등산길에서 만나 기념사진

2010. 11. 13. 

 

 

 

 

2010. 11. 13.

 

 

남문 (지화문)

 

동문설경 

동문 

 

남문(지화문)에서 

 

 

 

 2008.8.31. '남사모'산성등반중에...

 

 

 

 

 

 

남한산성 동문성곽 

  

 

 

 

 

 

 

 

 

 

 

 

 

2007 남한산성문화제 중-2007.10.13.

 

 

동문에서

 

 

 

 

 

동문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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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10. 24일 오전 10시 남한산성 행궁 하궐 준공식이 있었다.

남한산성의 행궁은 갑자년(1624) 산성을 축성할 때 함께 지어진 것이다. 행궁은 '광주행궁' 또는 '남한행궁'이라 했다.

행궁은 크게 상궐과 하궐로 나뉘어 있고 좌전과 우실, 재덕당, 한남루, 인화관 등 모두 70여동에 이르렀다고 한다.

임금이 커처할 행궁은 상궐이 73칸 반, 하궐이 154칸으로 모두 227칸 규모.

행궁은 임금이 지방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거처하는 곳으로 '행재소'라고도 한다.

남한산성의 행궁도 세종의 능인 영릉과 효종의 능인 영릉에 참배하기 위한 임금들의 거처로 인조 2년(1624) 서장대 아래쪽에 세워졌다.

병자호란 때에는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간 인조가 청군과 격전을 치룬 곳이다.

숙종, 영조, 정조가 영릉 전배 길에도 머물렀던 곳.

남한산성 행궁은 일제 강점기에 방치되어 허물어진 것을 1999년부터 복원, 오늘 하궐 준공식을 갖었다.

 

잊혀진 역사가 오늘 새로운 의미로 우뚝섰다.

                                                                                                                            - 2010. 10. 24.  징소리 김성태

 

 

 

 

  

1892년 촬영되었다는 행궁의 정문 '한남루' 그림을 배경으로 경기도립국악관현악단이 준공식전 축하 연주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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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공식에 참석한 성남시민포럼 회원 -2010.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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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한산성내 망월사에가면 ㅎㅎ"

 

<남한산성내 망월사 전경>     -http://cafe.daum.net/ylmgallery 에서 퍼옴

 

 


남한산성 내 망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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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내 망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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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물들의 우와하고 섬세한 노출 표현

 

여기 남한산성내에 이토록 고풍적인 석조물이 즐비하게 전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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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리얼한 남여의 정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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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토록 오래 전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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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비디오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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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을 심하게 했던 조상들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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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거도 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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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토록 좋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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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어쩌나 부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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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하게 ~~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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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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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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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비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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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만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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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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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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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 중 남녀 정사장면을  묘사한 석조물은 '망월사'에 있는것이 아니고 산성내 '돌조각공원'이 따로 있다.

아마도 어느 블로그 필자가 사진 정리 중 망월사에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표기한 것이 옮겨져 확산된 것으로 추측, 이에 바로 잡는다

                                                                                                               - 2011. 10. 25. 징소리 김성태

 

 

 

 

 

남녀 정사장면을 묘사한 석조형물 '돌조각공원'  현장사진-2011.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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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 정호승 시

 

                       찾아가보니 찾아온 곳 없네

                       돌아와보니 돌아온 곳 없네

                       다시 떠나가 보니 떠나온 곳 없네

                       살아도 산 것이 없고

                       죽어도 죽은 것이 없네

                       해미가 깔린 새벽녘

                       태풍이 지나간 허허바다에

                       겨자씨 한 알 떠 있네

 

                 

 

 

25763

 나옹선사의 [靑山은 나를보고]

                        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努而無惜兮(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고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07.10.7일 설악산에서..

        내 동심속 꿈과 사랑과 추억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설악산!

 

                  내 조상들이 영면하는 설악산맥의 끝자락과   동해.

             언제고 달려 가면 늘 한 자리서 미동도 하지않고

    지친 상체기를 쓰다듬어 주는 용해의 땅.

 네 앞에 서면 내 삶은 하찮은 작은 존재

                        빈 마음으로 기대 선 너의 체온에 내 하루는 안식한다. 

                                                                                       -07.10.7일 설악산 나들이, 오늘의 메모중 징소리 김성태 -

 

 

  

      분원리 강변의 가을

 

             가을이 바람되어

             분원리 강변의 억새 헤집고

             잊힌 아픔 되살려 벗하여 오고있다.

           

             참붕어찜에 숨겨진 가시가

             목젖 깊숙이 박혀 컥컥 대는 진통으로

             올여름은 그렇게 잊히듯 지나치나 보다.

 

             황실 도자기를 진상한 후예의 넋두리가

             바람되어 전설로 살아나선

             강변에 겹겹한 풀잎으로 피고

 

             

             분원리 가을은 

             팔당댐 강변에서 휴희하다

             강물따라 세월로 흐를게다.

             

 

                                         - 07.10.4일 -오늘의 메모중에서 징소리 김성태-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강변에서-07.1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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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산두(三韓山斗)의 역사현장 - 삼학사비(三學士碑)의 고찰(考察)

2005년12월 21일부터 25일까지 성남타임즈(발행인 고재혁)주관으로 중국심양의 발해대학에서 삼학사 추모제에 참석하였다. 이에 삼학사비에 대하여 정리하여 삼학사의 역사적 재 조명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삼한산두(三韓山斗)!라는 글귀는 삼학사 비두에 청태종이 새긴 말이다.
조선의 태산과 북두.
"태산같이 높고 북두칠성같이 빛나는 분"


삼학사비(三學士碑)

<동아일보> 1933년 5월 13일자에 수록된 "삼학사 비석" 관련보도.

인조 당년(仁祖 當年)의 삼학사(三學士)
봉천(奉天)에서 비석(碑石) 발견
청태종(淸太宗)에 굴복(屈服)않고 장열(壯烈)한 최후(最後)
충혼의백(忠魂毅魄)의 옛자취

지난 5일 봉천(奉天) 십간방 일중어강습소 소장 황육덕(黃肉德, 황윤덕의 오기)씨는 북시장(北市場) 보선사(保○寺) 문전에서 삼한산두(三韓山斗)라고 새긴 중동 부러진 비석 한 개를 파내었다. 이 비석은 용을 조각한 훌륭한 비석이나 바람과 비에 닳고 낡았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땅속에 묻혔던 관계로 그 조각면이 확실히 남아 있지 아니 하였다. 그러나 삼한산두의 넉자 만은 아직도 뚜렷이 남아 있어 그 당시 사적을 역력히 말하고 있었다 한다. 이 비석인즉 인조(仁祖)의 충신열사 삼학사(三學士)의 유적이다.

지금으로부터 298년전 인조시에 청태종(淸太宗)이 조선과 친선을 맺고자 누차 조선에 사신을 보내었으나 명조(明朝)와의 관계로 이것을 듣지 아니하여 마침 태종은 대병을 거느리고 병자년(丙子年) 섯달에 왕성를 범하였다.

이때 인조께서는 신하와 종친을 데리시고 남한산성(南漢山城)에 피하시니 때의 형세는 그야말로 사직(社稷)의 흥망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형세가 이에 미치매 조정에는 화전양론이 대치되었는데 당시 김청음(金淸陰) 정동계(鄭桐溪) 등 중신과 홍익한(洪翼漢) 오달제(吳達濟) 윤집(尹集) 등 삼학사가 화친은 항복을 말하는 것이라 하여 끝까지 반대하였다.

그러나 세 이미 불리하여 화친할 도리 이외에는 좌이대사하는 수밖에 없었으니 청병에게 당하는 백성의 욕은 나날이 심하여 갔으므로 하는 수 없이 청조와과 화친을 맺었다. 이 굴욕의 화친은 왕자 두 분과 화친을 반대하던 삼학사를 배도(陪都)(지금 봉천)로 보내고 말았으니 왕자 두 분은 현재 봉천교섭처(奉天交涉處)인 질관(質館)에 계시게 하고 삼학사는 옥에 넣었다. 그리고 삼학사를 백방으로 달래기도 하고 갖은 악형 하여 항복을 하라고 하였으나 결국 듣지 아니하여 참하여 버렸다.

이 삼학사의 장렬한 충절은 그 후 청조유사(淸朝遺事), 동화록(東華錄), 청사(淸史), 청사통속연의(淸史通俗演義), 배도잡기(陪都雜記) 등에 명기되어 역사로, 소설로, 연극으로 삼학사의 사적은 전하여왔다. 뿐 아니라 당시 청조에서는 삼학사의 절개를 경앙하고 또 자국민의 절의를 장려하기 위하여 태산북두(泰山北斗)와 같은 절개라고 봉천 성서소사(城西小寺) 부근에 묘(廟)를 짓고 전기 삼한산두라고 새긴 석비를 세워 춘추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이 삼학사의 비가 청조가 망하자 돌아보는 사람없이 20여년 동안을 땅속에 묻히어 있다가 우연히 조선인의 손으로 발굴되었는데 황씨는 봉천의 유지들과 의론하고 이 비석을 목하 황씨의 강습소로 옮기어 두었는데 앞으로 북시장 공원에 삼학사비를 다시 세워 오래, 오래 지사의 혼을 기념할 터이라는데, 현재 봉천총영사관 부영사 오두환(吳斗煥)씨와 관동군사령부의 윤상필(尹相弼) 대위가 이 삼학사 오달제, 윤집의 후손이라고 한다. 위 동아일보 보도외에도 동년5월12일자의 <매일십보>의 같은기사, 1934년6월3일 <조선중앙일보>에도 삼학사유적보존회 창립과 관련기사가 보도 되었다.


삼학사중수비(三學士重修碑)





* 중국 심양 발해대학에 세워진 삼학사 재붕수비 (三學士再重修碑)

1935년 병자호란 300돌을 기념하여 당시 항일운동의 거점도시였던 봉천(지금의 심양)에서 황인덕.김구경등이 중심되고 삼학사유적보존회와 조선동포 120여명이 모금하여
심양시 춘일공원에 삼학사중수비를 건립하고 삼학사의 절개와 민족혼을 지켜 조국독립을 염원하는 추모제를 올렸다. 이중에는 일본인도 있었다니 그들의 삼학사에 대한 역사관을 엿볼 수 있다.

<중수삼학사비기(重修三學士碑記)>

조선은 단군이 나라의 기틀을 세웠고 기자가 강역을 열었다. 풍속이 충효를 숭상하고 선비들은 인의에 도타우니, 예로부터 예의의 나라로 일컬어져 왔다. 300년전인 인조 14년 병자년 겨울 청태종이 조선을 침략했다. 남한산성의 형세가 위태롭자 조정에서는 강화를 청하자는 의논이 있었다. 이때 대간 홍익한. 교리 윤집. 수찬 오달제는 대의를 부르짖으며 화의를 배척하였다. 화의가 이루어자 삼학사는 척화의 수괴로 지목되어 심양에 잡혀갔다.

청 조정에서는 이들을 귀순시키고자 하여, 온갖 영예와 이익으로 회유하는 한편 엄혹한 형벌로 협박하였다. 허지만 세분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다음해 3월에 죽었다. 그 높은 절개와 큰 의리는 일월과 빛을 다투고 만고에 썩지 않을 것이다. 이에 나라에서는 남한산성에 현절사, 부여에는 창절사를 세웠고, 경상도 영천에는 장엄서원을 개창하여 그 정신을 기렸으니 향사가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청조에서도 그 곧은 의리를 포장하여 심양성 서문밖에 사당을 건립하고 비석을 세워 그 위에 삼한산두(三韓山斗)를 새겼다. 삼한이란 조선을 가리키고, 산두란 그 절의가 태산북두처럼 빛난다는 뜻이다.

사당과 비석을 세운 전말이 청나라 사람이 쓴 일사(軼史, 일종의 야사)에 실려 있다.계유년 겨울 나는 심양에 머물면서 그 유적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되어 사당과 비석은 모두 사라졌다. 교외에서 옛일을 조상하는데 감개한 탄식을 이길수 없었다. 마을의고로에게 물어보니, 소서문 밖 세분이 순절한 곳에 작은 절이 있었는데, 조선의 세분을 모신 사당으로 전해진다고 하였다. 지금의 북시장(北市場) 보령사 (保靈寺)근처이다. 절문 앞 눈구덩이 속에서 비액(碑額)하나를 찾았는데, 글자를 새긴 흔적이 있었다. 흙을 씻어내고 보니 '삼한산두' 넉자가 찬연하니, 일사의 내용과 서로 딱 맞았다. 절의 주인과 상의하여 내가 사는 집으로 옮겨두고, 두루 비신을 찾았지만 찾지 못하여 오래도록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하였다. 이때 심양에 사는 여러 현자들이 그 사연을 영원히 하고자 하여' 삼학사유적보존'를 발기하였다. 각자 나누어 성금을 모아 새로 비신과 귀부를 조성하고 여기에 비액을 얹어 다시 세웠다. 이로써 충절의 기상은 위로 해와 별을 꿰뚫으니, 세상이 변하여 때로 숨겨지기도 하지만 결국 영원히 묻히게 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말없는 느낌은 귀신의 기호와 상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영원토록 보존되어 흙더미 속에 묻히지 않게 되기를 후세의 군자들에게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짓는다.

인조 병자년으로부터 300년이 지난 을해년 봄 3월에
창원 황윤덕이 삼가 짓고 경주 김구경이 삼가 쓰다.
(번역 이승수)

그러나 삼학사중수비를 세운 조선동포들의 염원은 1966년 중국의 문화혁명 소용돌이를 비켜가지 못하였다. 홍위병들이 이비를 강변에 내다 버렸고, 이후 어느 중국인의 집 주춧돌에 놓인것을 당시 랴오닝대 교수이자 중국과학자협회 부이사장인 천문갑(현 발해대학장)이 인민페 5천위안에 구입하여 발해대학에 갖다 놓았다고 한다.

역사와 현실은 항상 이데올로기의 관계선상에 있는 것인지, 삼학사의 유일한 현장 유물인 중수비는 어떤 연유인지 훼손되고 방치된체 한. 중 국제교류의 개화 시대에 이르기 까지 질곡의 역사를 지켜왔다.

삼학사재중수비(三學士再重修碑)

1997년 허창무. 신청등이 성남문화원 부원장으로 남한산성의 문화권역을 학술적으로 재 조명하고 '삼학사 모시요!'등 사업을 개시하였다. 한편,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사람들(남사모)의 모임이 결성되면서 본격적인 삼학사 정신선양의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경기도가 남한산성 행궁을 복원하고 산성복원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삼학사에 대한 성남 광주 문화권역의 연대가 이루어 진것도 역사되찾기의 맥락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광주문화원이 주관된 현절사의 삼학사 추모제가 언론의 관심으로 등장되었다.

2004년 허창무. 신청. 고재혁.서학선등이 주도하여 요녕발해대학교후원회(회장 허창무)를 결성하고 동년 12월 발해대학에서 첫번째 삼학사추모제를 고재혁 주도로 올렸다.

이를 계기로 방치되고 훼손된 삼학사중수비의 복원이 활발하게 논의되던중 계룡건설 장학재단(이사장 이인구)이 후원하여 2005년 7월 30일 드디어 요녕발해대학 교정에 삼학사 재중수비와 학사정을 세웠고 방치된 중수비도 발해대학내 보관 전시하게 되었다



중국심양 발해대학 교정의 "삼학사 재중수비"  곁에서 -2005. 12. 22. 

'삼학사 추모제'를 위해 2005. 12. 21.~12. 25. 중국심양 발해대학 방문 중)

훼손된 중수비를 보관하고있는 전시실에서(좌로부터 염창순, 고재혁, 필자, 류수남, 신청)

삼학사재중수비는 중수비와 같이 용두 2m. 폭83cm.두께 26cm. 높이 390cm로 거북형상의 비대로 비두와 함께 학자들의 고증에 따랐다고 한다. 한편, 계룡건설장학재단은 요녕발해대학에 세운 똑같은 모조비를 동년 8월 31일 천안 독립기념관에도 건립하여 삼학사의 충정을 후대에 귀감토록 하였다.

후일의 사가들은 병자호란 당시 항복문서를 쓴 사람도, 이를 찢은 사람도 "열지자 충, 결지자 충"의 양시론(兩是論)을 펴고 있어 사관의 객관적 접근이 아쉬운 현대사회의 기류이다. 

삼학사 추모제에 헌화 

 

-삼학사추모제 일행-2005.12.22. 심양 발해대학 강당
삼학사추모제의 참가는 심양시의'한국주간'에 성남예술단장으로 수 차례 방문한바 있는 필자로서는 민간차원의 문화사절 사명감에 또다른 한국인의 기상을 의식한데서 느낌이 깊다.

삼학사의 항쟁이 베어있는 역사의 현장인 남한산성 문화권에 하루빨리 삼한산두(三韓山斗)의 삼학사비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김성태 st3845@hanmail.net/성남타임즈 편집인.경기예총 수석부회장

기사등록 : 2006-01-04 14:29:18

(

* 누군가 말했다.

"문화주의의 의지와 신념을 가진 인사가 다섯 사람만 있는 동네는 그것 자체가 문화도시를 형성하는 힘이다.

그 인적 구성원이 정책을 결정하는 힘을 지니 시람들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문화도시를 이루는데

절반의 기반을 다진것과 다름없다" 고...관례와 정형화된 행정의 틀에서 창의적인 사고를 지닌 목민관이 간절한 시대다.

관선시대에는 부시장의 위치가 지방도시의 문예정책과 예술행정을 거게가 담당하였으나 민선시대를 맞으면서

양상은 시장 중심의 영역과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문화예술은 정책결정의 하위순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의례적인 범주에서 맴돌기 일수다.

문화예술현장을 함께 한 역대 성남의 부시장들과 구청장, 시, 도의원의 스냅이다.

                                                                                                        - 징소리 김성태

 

 

허재안 경기도의회 의장-2011. 12. 28. 성남예술인 시상식(성남시민회관)에서  

 

 김선임 성남시의원

 

방영기 경기도의원

 

지관근 (민)대표 성남시의원과 - 2010. 6. 15. 오후4시 성남아트센터 본관 전시실에서

 

2010. 6. 4. 

 

장정은(경기도의회 의원) '홍연화 지승공예전' -2010. 10. 20. 성남여성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장정은 경기도의회의원과 2010. 2. 28. '판교쌍용거 줄다리기' 시연이 열린 분당구청 잔디광장에서

 

2009. 12. 3. 제24회 모란현대미술대전 입상작 전시 및 시상식장에서 - 좌 : 이형만의원. 최만식의원  

 

좌 : 이형만(성남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 김성태. 강정완(중견 서양화가)- 2009. 4. 29. '깃발전'

 

장정은 경기도의회 의원과 2009. 4. 29. 깃발전 개전식의 아트센터 광장에서 

                                                                   경기예총 수석부회장으로  장정은 경기의회 부의장과 담소-2006.9.4일 경기의회 부의장실 

 

 권두현 성남시 부시장-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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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양운 성남시 부시장(94.5.9-95.4.11재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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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윤 성남시 부시장(93.3.30-94.5.8 재임). 손영태 성남시 의회 의장등..



  우종호 성남시 부시장(95.4.12-95.7.28). 김장수 성남시 교육장. 이대교 성남미협 지부장과..

 전국연극제 성남연극협회 참가 입상후-우종호 부시장. 김상규.이광수등 연협 임원들과..

  신중대 성남시 부시장(96.7.18-98.7.27 재임)-이후 그는 안양시 민선시장이 되었다

  좌:전태경 분당구청장. 신중대 성남시 부시장. 오인석 성남시의회 의원(분당야외공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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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귀태 성남부시장-1986.2.  성남예총 창립 현판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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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시 3개 구청장-좌: 양태용(수정구). 이경식(중원구). 이상철(분당구).

 - 2002 분당디자인회관개관 조형물 개막식에서

 

 이수영 성남시의회의장-07.9.29. 제21회성남미술협회전이 열린 성남아트센터 전시장에서

 

우:. 이수영 

우: 이수영 -009.5. 

우 :장윤영 경기도의원 - 2009.5. 

 

우 :정용환 시의원-2009.5. 

 

                                성남일보 주최 '실버축제에서...좌: 이수영 의장. 김종균(성남일보 회장). 이영식(성예총 회장). 김성태.전헤숙.정종삼 시의원등

 

좌: 이수영. 이영식. 김성태. 전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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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래' 연가

 

 가을이 비에 젖어 '산하래'로 오고 있었다.

 목현동 산허리 카페 '산하래' 창 밖엔

 세월 뛰어 넘지 못한 여름의 끝자락 치마끈 끌어안듯

 초점 잃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돋보기 안경 탓인가 - 내리는 비 탓인가! . 성애 피는 눈시울...

'산하래' 창 밖으로 가을이 오고 있었다.

 그리운 사람 숨결 닮은 가을이 비와 함께 오고 있었다

 또 다른 이별과 함께 

'산하래'로 세월이 지나고 있었다

 

_산하래- 경기도 광주시 목현동 충현동산밑 카페이름- 

                                                                                 - 07.9.14. 징소리 김성태의 '하루의 메모'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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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하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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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채 뜨락에 떨어진 낙엽위로 가을을 재촉하듯 비가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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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나무 가지의 싱그러움이 손에 잡히는 마당.-(열린 시화전이나 작은 음악회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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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베큐, 산채비빔밥, 들깨수제비등을 만나게 먹을 수 있는 야외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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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손들의 웃음과 행복한 시간이 연출되는 곳-'산하래'는 따뜻한 마음의 교차로.. 좌:조성란(한국무용가). 김혜련(펀치플러스 기획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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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혀진 시골집이 그리운 '산하래' 본채의 조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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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랑채 아궁이엔 녹슨 가마 �단지와 아궁이가 정감어린 추억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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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재가 있음직한 '산하래' 앞 뜰을 흐르는 맑은 실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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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하래' 별채 행랑에선 장작 지피는 내음과 연기가 피어 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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