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프롬(Ta prohm)-1186년 자이바르만 7세가 왕위에 올라 5년만에 어머니를 위해 헌납한 사당 겸 사원 왕권의 전통성을 강화하기위해 중앙에 어머니를 상징하는 '프라나바라밀다'를 세움. 불교 숭배 시절 건립된 불교사원이나 당시 앙코르 왕국은 힌두교를 신봉했기에 사원의 구조나 양식은 힌두교 건축양식이 혼합.
타 프롬에 새겨진 문자 기록에는 고위급 승려가 18명, 관리인 2740명, 무희가 무려 615명.
폐허중에도 화려함을 잃지않은 '타 프롬' 사원은 곧게 뻗은 '이엥나무'와 사원의 벽과 기둥을 휘감으며 뿌리를 뻗고 있는 '스펭나무' 생존.
EFEO(프랑스 극동학원)는 19세기 발견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놓아두기로 결정하여 지금까지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토인비'가 "자연의 회귀"와 "폐허의 미학"을 동시에 언급한 '타 프롬'을 느낀다. * (35도를 넘는 열기와 따가운 태양열에 일행은 한 나절만에 얼굴이 붉게 익어버리고 연신 가쁜숨을 몰아쉬고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앙코르왓의 영화와 유산, 흔적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몰입되고 있었다.
* '바꽁(Bakong)사원.-피라미드 형식의 최초의 사암사원으로 881년 인드라바르만 1세가 건축. 앙코르 왕국 초기의 수도, 히리하라라야 한가운데 위치한 '바콩'사원은 앙코르 국가의 중앙 사원으로 그 위상을 자랑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인드라바르만 1세는 조상들을 위하여 '프레아 코'를 건립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이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사암을 사용하였고, 900x700m에 달하는 외벽은 홍토로 만들어졌다. 우주의 중심에 솟구쳐 있다는 '메루 산'을 중앙 성소로 표현한 효시가 되는 사원이다.
중앙 성소의 벽에 남아 있는 조각들은 풍화작용으로 많이 손상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왕이 있는 방으로 가려면 누구나 가파르고 급경사진 돌 계단을 기어서 올라야 하는 '바콩' 사원은 오늘도 수 많은 여행자들을 사원 정상까지 기어오르게 하고 있어 당시의 영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프놈 바켕(Phnom Bakeng)' 입구 보수공사중인 사원-야소바르만 1세가외적의 침공에 대비하여 롤로스를 떠나 새 수도 야소다라푸라를 건설하면서 , 수도의 중심높이 62m의 '바켕'산 위에 새운 앙코르 지역 최초의 신전. 신전 정상에서 바라보면 앙코르 톰과 앙코르왓, 톤레? 호수가 보인다.
피라미드 형의 사원 중심에 성소가 있고 사방에 4개의 탑이 있다. 원래 108개의 탑이 있었으며 이사원을 모태로' 앙코르 왓'을 만드었다고 한다.
앙코르 건축예술의 빛나는 보석 '반데이 스레이'-967년 라젠드라바르마 2세(944~968)준공, 자야바르만 5세(968~1001)완공. 건립자-브라민 야즈나바하.
반데이는 성채, 스레이는 여인이란 의미로 '여인들의 성채'라 불림.
반데이 스레이는 짙은 분홍빛 사암과 홍토를 사용, 사원전체가 분홍 꽃잎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사원이다. 앙코르의 모든 유적군이 국가 신전으로 신의 무덤이라는 성격을 지닌데 반해, 반데이 스레이는 라젠드라바르만 2세의 신하이자 자야바르만 5세의 스승인 브라민 야즈나바라하와 그의 동생이 건설한 초기 유적의 걸작품이다.
당시 수도 야소다리푸라에서 25km떨어진 이스바푸라 쉬바의 도시에 세워진 이 사원은 왕이 지은 사원이 아니기 때문에 규모는 작지만 빈틈없이 화려한 조각으로 채워져 있고 1914년에 발견되어 기록만 남긴체 1924년까지 방치되었다가 이후 프랑스의 문화부장관 앙드레 말로의 유물 밀반출 사건 이후 주목을 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