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의 도시 캄보디아 씨엡립(Siem Reap)...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 왓'의 영광과 흔적을 찾아서...
캄보디아의 4번째 규모의 도시 씨엡립-9세기~15세기 초반까지 오늘날의 베트남 중부 이남과 태국, 라오스, 미얀마 동쪽과 말레시아 반도의 중앙까지 차지했던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다. 1432년 삼족의 침입으로 멸망했고, 화려했던 유적은 400여 년 간 정글 속에 묻혀버렸다.
1860년 프랑스인 앙리무오가 재 발견한 후 계속된 개 보수 작업으로 찬란했던 문명은 다시 빛을 발하고, 오늘의 세계적인 유적 관광지가 되었다.
-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 문화유적 탐방에서- 김성태
원우회(회장 김성태)의 4월 정기모임이 해외여행(문화탐방)으로 결정되어 2008.4.17~4.21일 까지 캄보디아 씨엠립의 앙코르왓 신전등을 탐방하기위해 출발-
당초 20여명이 신청하였으나 진작 출발은 가족동행 포함 총 9명. 17일 19:20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출발.
체류중 숙박한 씨엠립의 '킹덤앙코르'호텔
첫 방문지 ' 타 프롬 (Ta Prohm)'
사원은 거의 폐허직전,'타 프롬'은 '스펭나무'의 위력에 붕괴는 시간문제다. 사원을 휘감고 있는 나무 뿌리사이로 보이는 섬세한 조각과 신전의 신비는
머잖아 앙코르왓의 전설속 영화로만 후대에 기억될 것이어서 오늘의 여행객에게는 더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일게다.
'타 프롬(Ta prohm)-1186년 자이바르만 7세가 왕위에 올라 5년만에 어머니를 위해 헌납한 사당 겸 사원 왕권의 전통성을 강화하기위해 중앙에 어머니를 상징하는 '프라나바라밀다'를 세움. 불교 숭배 시절 건립된 불교사원이나 당시 앙코르 왕국은 힌두교를 신봉했기에 사원의 구조나 양식은 힌두교 건축양식이 혼합.
타 프롬에 새겨진 문자 기록에는 고위급 승려가 18명, 관리인 2740명, 무희가 무려 615명.
폐허중에도 화려함을 잃지않은 '타 프롬' 사원은 곧게 뻗은 '이엥나무'와 사원의 벽과 기둥을 휘감으며 뿌리를 뻗고 있는 '스펭나무' 생존.
EFEO(프랑스 극동학원)는 19세기 발견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놓아두기로 결정하여 지금까지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토인비'가 "자연의 회귀"와 "폐허의 미학"을 동시에 언급한 '타 프롬'을 느낀다. * (35도를 넘는 열기와 따가운 태양열에 일행은 한 나절만에 얼굴이 붉게 익어버리고 연신 가쁜숨을 몰아쉬고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앙코르왓의 영화와 유산, 흔적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몰입되고 있었다.)
가슴을 치면 진동하는 사원의 방
부처의 조각상이 없는 석담
* '바꽁(Bakong)사원.-피라미드 형식의 최초의 사암사원으로 881년 인드라바르만 1세가 건축. 앙코르 왕국 초기의 수도, 히리하라라야 한가운데 위치한 '바콩'사원은 앙코르 국가의 중앙 사원으로 그 위상을 자랑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인드라바르만 1세는 조상들을 위하여 '프레아 코'를 건립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이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사암을 사용하였고, 900x700m에 달하는 외벽은 홍토로 만들어졌다. 우주의 중심에 솟구쳐 있다는 '메루 산'을 중앙 성소로 표현한 효시가 되는 사원.
중앙 성소의 벽에 남아 있는 조각들은 풍화작용으로 많이 손상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왕이 있는 방으로 가려면 누구나 가파르고 급경사진 돌 계단을 기어서 올라야 하는 '바콩' 사원은 오늘도 수 많은 여행자들을 사원 정상까지 기어오르게 하고 있어 당시의 영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바꽁 '사원의 왕이 있었던 정상까지 가파르고 험한 돌계단을 기어 올라야 한다.
'프놈 바켕(Phnom Bakeng)' 입구 보수공사중인 사원-야소바르만 1세가외적의 침공에 대비하여 롤로스를 떠나 새 수도 야소다라푸라를 건설하면서 , 수도의 중심높이 62m의 '바켕'산 위에 새운 앙코르 지역 최초의 신전. 신전 정상에서 바라보면 앙코르 톰과 앙코르왓, 톤레? 호수가 보인다.
피라미드 형의 사원 중심에 성소가 있고 사방에 4개의 탑이 있다. 원래 108개의 탑이 있었으며 이사원을 모태로 앙코르왓을 만드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