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깃발' '그리움'의 시인을 낳은  통영시 정량동 망일1길 82번지에 있는 있는 청마(유치환)생가와 '청마문학관' -2011. 5. 28. 가다.

  전화(055) 650-4591

 

 

 

청마문학관 현판

 

 

 

 

 

 

 

 

 

 

 

 

문학관을 찾은 사람들 

 

청마의 복원된 생가

청마의 생가(유약국)는 통영시 태평동 552번지 였으나 생가부지가 복원의 어려움이 있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지금의 위치에 복원 하였음( 통영시 기록)

 

이전 복원된 생가에서 보이는 통영항

 

 

깃  발  유치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날 어쩌










     (청마 친필)ㅊ
    정운(이영도)는 재색을 고루 갖춘 규수로 출가하여 딸 하나를 낳고
    홀로 되어 해방되던 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 교사로 부임했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된 청마의 첫눈에
    정운은 깊은 물그림자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일제하의 방황과 고독으로 지쳐 돌아온 남보다 피가 뜨거운
    서른 여덟살의 청마는 스물아홉의 청상 정운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불길이 치솟았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통영 앞바다에서 바위를 때리고 있는 청마의 시 "그리움"은
    "뭍같이 까딱않는" 정운에게 바친 사랑의 절규였다.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는 정운이기에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고

    청마의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

    청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쓰고 시를 썼다.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청마의 사랑 시편들에
    마침내 빙산처럼 까딱않던 정운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청마가 정운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두 그대로 시였다.
    내가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던?
    그러나 얼굴을 부벼들고만 싶은 알뜰함이
    아아 병인양 오슬오슬드는지고

    덧없는 목숨이여
    소망일랑 아예 갖지 않으매
    요지경같이 요지경같이 높게 낮게 불타는
    나의 -노래여, 뉘우침이여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 날이 나의 낙명(落命)의 날이 된달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

    - 52년 6월2일 당신의 마(馬)  



    끝이 보이지 않던 유치환의 사랑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 났다.
    1967년 2월 13일 저녁,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붓을 영영 놓게 된 것이다.
     

    통영여자중학교 교사로 함께 근무하면서 알게 된
    이영도(일찍이 결혼했으나 21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당시 딸 하나를 기르고 있었다)에게
    청마는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보냈다
    그러기를 3년,  마침내 이영도의 마음도 움직여
    이들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시작됐으나
    청마가 기혼자여서 이들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청마는 1967년 2월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20년동안 편지를 계속 보냈고  
    이영도는 그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그러나 6·25전쟁 이전 것은 전쟁 때 불타 버리고
    청마가 사망했을 때 남은 편지는 5,000여 통이었다.
    <주간한국>이 이들의 "아프고도 애틋한 관계"를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실은 것이 계기가 되어  청마의 편지 5,000여
    통 중 200통을 추려 단행본으로 엮었다.
    이 청마의 사랑 편지가 책으로 나오자
    그날로 서점들의 주문이 밀어닥쳤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무명 중앙출판출사는
    대번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마땅히 서한집의 인세는 청마의 유족에게
    돌아가야할 것이나 정운은 시전문지"현대시학"에
    "작품상"기금으로 기탁운영해오다 끝을 맺지 못하고
    76년 3월6일 예순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뜬다.    

    더 크게 만들겠다던 문학상 기금은
    정운의 타계로 붓지 않고  
    구상.김준석.임인규등 문학상 운영위원들의
    합의로 "정운시조상"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Ann]

    란 말이냐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산 보리암  (0) 2011.05.31
통영항의 조선소와 굴밥  (0) 2011.05.30
통영 충렬사  (0) 2011.05.30
간월암  (0) 2011.05.18
실학박물관과 다산 유적지 탐방  (0) 2011.05.08

* 2011. 5. 27~5.29,  일정으로  특별히 정한 곳도 없이 남쪽으로 향해 경기 광주 목현리 집을 나섰다.

이번 여행은 통영(충렬사, 청마문학관)- 남해(보리암, 상주해변)-여수(오동도, 2012여수세계엑스포 홍보전시관)를 자가용으로 경유,

총 940.6km 장거리를 기록했다.

 

*10여년전 예총 대표자대회 참석차 다녀간 통영이었으나 그때 일정상 아쉬움이 남아 있던 터였다. 

28일 아침 날씨가 흐려  한려수도 조망 케이불카 탑승을 포기하고 통영항을 거쳐  충렬사와 청마 (유치환) 문학관 둘러 보았다.

 

                                                                                                                                                     -2011. 5. 28. 징소리 김성태 

                              

       

       

충렬사 편액(한자)은 명필 송준길의 글씨

 

 

 

 

통영 충렬사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인 정당에 모셔진 성웅 이순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정형모 화백 그림) 앞에서 참배하다.

매년 춘, 추 향사와 탄신제, 한산대첩 고유제를 이곳에서 올린다.

 

 

 

 

제172대 통제사 이승권이 헌종 6년(1840)에 건립한 영남 제일의 수영(水營)누각

 

 

 

 

 

 

 

 

 

충렬사 를 애워싸고 있는 대나무 숲

 

 

 

파종(종4품) 정효현이 그린 수군 조랸도(19세기)

 

도독인<부 인함1개포함> 보물440-1호

 

호두령패 보물440-2호

 

귀도<부 도초 2개 포함> 보물440-3호

 

참도<부 도초2개 포함> 보물440-4호

 

독전기 보물440-5호

 

남소령기 보물440-6호

 

홍소령기 보물440-7호

 

곡나팔 보물440-8호

 

 

 

 

 

            충렬사 담벽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영항의 조선소와 굴밥  (0) 2011.05.30
청마문학관  (0) 2011.05.30
간월암  (0) 2011.05.18
실학박물관과 다산 유적지 탐방  (0) 2011.05.08
퇴촌면 도수리 벚꽃  (0) 2011.04.19

*  지인의 먹거리 행복표정에 감화되어 서산의 '간장게장"을 먹으러 갔다.

오랫만에 밥 한공기와 누룽지 2공기를 '간장게장' 맛에 감동되어 순간에 해치웠다.

포만감이 밀려오는 한낮의 서산거리는 여름날씨다.

일행은 간월도로 향했다. 밀물과 썰물이 조화로운 '간월암'에 때마침 무릎높이로 바닷물이 차오르고 다정한 연인(?)인듯

여인네를 업고 바닷길을 건너는 사내의 표정이 정겹다.

서해 해풍에 건조한 우럭을 서너 마리 샀다.

큼직한 조기도 건조대에 있어 몇 마디 건네니 "요즘 서해에서 잡지 못하는 고기는 없다" 라며 온난화 현상을 시사 한다.

새조개 샤부샤부 간판이 시선을 끌었으나 간장게장에 포식한 점심이 소화가 덜 된 상태니 발길을 돌릴 수 밖에...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맛있게 먹은 간장게장, 바다 위를 떠있는 간월암과 함께 한  즐거운 하루였다.

 

                                                                                                                  -2011. 5. 17.  징소리 김성태

 

 

 

 

 

 

 

 

납 대용 조개를 매달은 어망

 

 

 

건조 우럭 찜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마문학관  (0) 2011.05.30
통영 충렬사  (0) 2011.05.30
실학박물관과 다산 유적지 탐방  (0) 2011.05.08
퇴촌면 도수리 벚꽃  (0) 2011.04.19
권금성과 비룡폭포  (0) 2010.12.03

* 실학박물관과 다산 정약용 유적지를  탐방(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산 75-1)했다.

2009. 10. 23. 개관한 실학박물관은 경기도민의 정체성 확립이 실학에 있음을 확인하고 실학사상의 중심인물인 다산 정약용의 유적지인

이곳에 실학의 형성과정과 전시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전시, 실학연구와 보존 및 계승사업을 경기문화재단이 맡아 운영하고 있다.

                                                                                                                                                  - 2011. 5. 7. 징소리 김성태

  실학개념

실학은 조선후기 경기도와 서울을 중심으로 등장한 우리나라 유학儒學의 새로운 학풍이다. 조선후기에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세계사의 전환과정에서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으로 국가기능이 마비되고 국토가 황폐화되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조선사회에서는 여러 가지의 개혁을 진행하여 농업생산력이 회복하는 한편, 새로운 상업이 발달하였다. 하지만 급박하게 전개되는 시대 상황에도 불구하고, 학문은 여전히 농민들의 현실생활과는 동떨어진 사장학詞章學이 아니면 주자학적인 성리학性理學이나 형식적인 예학禮學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이러한 학풍을 반성하고 국가의 총체적 개혁과 대외개방을 지향하려는 새로운 학풍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곧 실학實學이다.
실학은 ‘궁경치용窮經致用’ 즉 “고대의 유교 경전經典을 궁구窮究해서 국가의 총체적 개혁에 이바지하는 것”을 학문의 목표로 삼았다. 물론 실용實用을 중시하는 이러한 학풍은 조선후기의 실학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고 자기시대의 요청에 올바로 부응하려는 학문이라면 어느 시대에나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선후기의 실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개혁과 개방이라는 시대 요청에 대한 철저한 인식입니다. 조선후기는 중세적인 어두움 속에서도 서양의 문물이 조금씩 들어오고, 상품경제가 활발히 전개되는 가운데 개혁이 절실히 요구되던 시대다. 여기에서 실학자들은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라는 낡은 시대의 자폐적自閉的 정신상황을 반성하는 한편, 국가의 총체적 개혁을 도모하는 것을 학문적인 사명으로 삼았다.

둘째, 고대의 유교 경전에 관한 근본적인 탐구입니다. 국가의 총체적인 개혁이라는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적인 성리학이나 양명학의 심학心學 등 형이상학을 가지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인간의 본원적인 상태를 기반으로 성립하였다고 생각되는 고대의 유교 경전에 관한 연구로 돌아가고자 했다. 이러한 실학의 학문적 자세는, 이제 조선의 유학도 후대의 주석註釋에 의한 고전 탐구에서 벗어나 유교 경전에 관한 직접적인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했다.

셋째, 이 같은 시대인식과 유교 경전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의 전개를 위한 개혁방안을 제시하였다. 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국가체제의 확립을 위한 각종 제도의 개혁, 상공업의 발달을 촉진하기 위한 상업의 진흥과 기술개발 및 외국으로부터 새로운 문명을 수입하여 낡은 풍속을 개조하기 위한 개국통상 등에 관한 방안들을 제시하였다.

결국 실학은 조선후기의 새로운 시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서양문물을 참조함과 동시에 고대 유교 경전의 재해석을 바탕으로 개혁방향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이러한 실학은 14세기 서양의 문예부흥과 맞먹는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의 문예부흥이 자기시대 문제해결의 길을 찾기 위하여 그리스나 로마의 고전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이었다면, 실학도 자기시대 문제해결의 길을 찾기 위하여 중국의 고전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이었다.                               -  ( 실학박물관 홈 참조)

 

 

 

 

 

정약용

본관 나주(). 자 미용()·송보(). 초자 귀농(). 호 다산()·삼미()·여유당()·사암()·자하도인()·탁옹(籜)·태수(叟)·문암일인()·철마산초(). 가톨릭 세례명 안드레아. 시호 문도(). 광주()(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출생이다.

1776년(정조 즉위) 남인 시파가 등용될 때 호조좌랑()에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상경, 이듬해 이가환() 및 이승훈()을 통해 이익()의 유고를 얻어보고 그 학문에 감동되었다. 1783년 회시에 합격, 경의진사()가 되어 어전에서 《중용》을 강의하고, 1784년 이벽()에게서 서학(西)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책자를 본 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7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가주서()를 거쳐 검열()이 되었으나, 가톨릭교인이라 하여 같은 남인인 공서파(西)의 탄핵을 받고 해미()에 유배되었다. 10일 만에 풀려나와 지평()으로 등용되고 1792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와 기중가설()을 지어 올려 축조 중인 수원성() 수축에 기여하였다.

1794년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연천현감 서용보()를 파직시키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이듬해 병조참의로 있을 때 주문모()사건에 둘째 형 약전()과 함께 연루되어 금정도찰방()으로 좌천되었다가 규장각부사직()을 맡고 97년 승지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자 자명소()를 올려 사의를 표명하였다. 그 후 곡산부사(使)로 있으면서 치적을 올렸고, 1799년 다시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다시 모함을 받아 사직하였다. 그를 아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1801년(순조 1) 신유교난() 때 장기(鬐)에 유배,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이배되었다.

그 곳 다산() 기슭에 있는 윤박()의 산정을 중심으로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학문체계는 유형원()과 이익을 잇는 실학의 중농주의적 학풍을 계승한 것이며, 또한 박지원()을 대표로 하는 북학파()의 기술도입론을 받아들여 실학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재()에 뛰어나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1836년 2월 22일 , 75세를 일기로 고향 마현에서 생을 마감했다. 1910년(순종 4) 정2품 규장각제학()에 추증되었고 시호를 문도로 하사 받았다. 1959년 정다산기념사업회에 의해 마현() 묘전()에 비가 건립되었다. 저서에 《정다산전서()》가 있고, 그 속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마과회통()》 《모시강의()》 《매씨서평()》 《상서고훈()》 《상서지원록()》 《상례사전()》 《사례가식()》 《악서고존()》 《주역심전()》 《역학제언()》 《춘추고징()》 《논어고금주()》 《맹자요의()》 등이 실려 있다.  -(daum 지식 홈 참조하여 첨가정리-징소리 김성태 )

 

 

 

 

 

 

 

 

 

 

 

다산 묘역 동산

부인 풍산 홍씨와 나란히 합장된 다산 묘

 

 

 

 

 

 

 

 

 

다산 정약용 생가 '여유당' (오른쪽 동산이 다산 묘역)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영 충렬사  (0) 2011.05.30
간월암  (0) 2011.05.18
퇴촌면 도수리 벚꽃  (0) 2011.04.19
권금성과 비룡폭포  (0) 2010.12.03
'문경 칠석(七夕) 다 (茶) 문화제'   (0) 2010.08.16

* 봄 볕이 정겹다. 길고 추운 겨울 끝자락의 봄은 더욱 정겹다.

똑딱이 디카를 들고 가벼운 차림으로 봄볕을 찾아 집을 나선다. 남한산성은. 계곡 바람이 차서 아직 벚꽃을 피지 못했다.

차를 돌려 팔당댐으로 향한다. 광주시 퇴촌면 도수리 '배알미대교' 입구에서 좌측으로 화사한 벗꽃이 유혹한다.

'배알미대교' 개통 이후 팔당댐을 통행하던 차량을 통제한 후 이 마을 댐 가까이서 성업하던 식당들도 찾는 사람이 없다.

한가로운(?) 마을을 떠나 광주로 돌아오는 길에 '생태공원' 밴치에서 졸음을 떨치며 잠시 휴식, 한낮은 여름초입인냥 덥다. 물냉면을 맛있게 먹었다.

분당 00 백화점에서 여름 바지와 콤비를 사느라 발이 무겁다.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잠시 휴식,.

봄기운이 해 저녁 바람에 쇠잔하고 하루는 저물고 있었다.    

                                                                                                               - 2011. 4. 19.   징소리 김성태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월암  (0) 2011.05.18
실학박물관과 다산 유적지 탐방  (0) 2011.05.08
권금성과 비룡폭포  (0) 2010.12.03
'문경 칠석(七夕) 다 (茶) 문화제'   (0) 2010.08.16
칠갑산 천정호 출렁다리  (0) 2010.04.26

* 2010. 12. 1. 단풍잎이 낙엽 되어 떨어져 쌓인 겨울 설악산 등산길에

속초 '외용치 항'에서 한창 살오른 알도루묵을 맛보고,  설악산 '권금성.과 '비룡폭포'를 가다.

 

                                                                                               - 2010. 12. 1. 징소리 김성태

권금성 

비룡폭포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자세히보기

 

 

 

 

* 2010. 8. 14. 오후 5시 (사)한국차인연합회 문경다례원(원장 고선희)이 주최하고 문경시(시장 신현국)가 후원하여

 문경세재 야외공연장에서 막을올린 제14회 '문경 칠석(七夕)  다 () 문화제' 개막식을 둘러보았다.

두리차회(차나눔 자리)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차를 마시고 때마침 '초성제와 칠석다례(여성7인)를 관람하고

참석자들 전원이 함께 주최측이 제공한 국수를 먹는 등 문경의 칠석다례를 즐겼다.

 

(이날 나드리는 문경 선유계곡에서 갖은 성남시민포럼과 포로미산악회의 합동 야유회 이후 귀경길에 이루어 졌다.)

                                                                                       -2010. 8. 14. 징소리 김성태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퇴촌면 도수리 벚꽃  (0) 2011.04.19
권금성과 비룡폭포  (0) 2010.12.03
칠갑산 천정호 출렁다리  (0) 2010.04.26
바다의 교향시(사진동영상)  (0) 2010.02.09
동해 일출(동영상)  (0) 2010.01.03

 * 2010. 4. 25. 칠갑산 등반과 장곡사를 거쳐, 장곡리 장승축제장을 경유 천정호 출렁다리를 관광하다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금성과 비룡폭포  (0) 2010.12.03
'문경 칠석(七夕) 다 (茶) 문화제'   (0) 2010.08.16
바다의 교향시(사진동영상)  (0) 2010.02.09
동해 일출(동영상)  (0) 2010.01.03
속초 영금정의 겨울바다 (동영상)   (0) 2010.01.03

 

파도를 보면

내 안에 불이 붙는다

내 쓸쓸함에 기대어

알몸으로 부딪치며 으깨지며

망망대해 하이얗게

눈물꽃 이워 내는 파도를 보면

아, 우리네 삶이란

눈물처럼 따뜻한 희망인 것을

 

2010. 1. 1. 속초 겨울바다에서 

* 2010 새해 아침의 동해 일출(속초해수욕장 해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