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한국인 가이드  '노태우(32세)'-4년전 캄보디아 관광가이드로 씨엠립에 정착, 부인과 아이(3세)를 한국에 두고 있다.

  3일간 씨엠립 관광에 전용으로 사용한 버스기사(맨 우측)와 캄보디아 현지인 보조 가이드(명찰을 달고 일행중 낙오자나 사고에 대비하여 배치)

  기념품 판매를하는 노상가게 여주인과...

  여행중 체류한 호텔로비에서 캄 음악을 실로폰으로 연주하고 있는 현지 처녀

 실크공장의 여종업원

 기념품�의 여직원

 공산명품 가게 전경

 씨엠립의 '평양냉면' 북한 근무원

  

 이 길로 가면 태국 국경. 흰 소가 차도로 등장...

 실크고장 견학

 

 킹덤 앙코르호텔 객실에서 본 서쪽 씨엠립 전경

  동쪽 전경

 5달러의 닭 구이

 5달러의 민물고기 구이

 거리 이정표시판- 한글이 유독 눈에띤다.- 캄보의 관광객중 다수가 한국인

 뒷골목 제레시장도 구경

 

 

 

 

 

 씨엠립의 젊은이들이 테이트 장소로 선호하는 커피� 

앙코르왓 계단에서 삭발중인 수도 입문자 

 저녁식사중 캄 민속무용도 공연

 

씨엠립의 북한식당 '평양냉면'에서 인기품이라는 종업원들의 무용(1인 다기) 

 수상마을 슈퍼에서 키우는 악어

 

 앙코르왓 입구 연못(해자)에서 관광객에 1달러를 요구하며 다이빙을 하는 어린이

 

 관광지마다 어린아이들이 1달러짜리 물건들을 팔고있다. 

 수상마을을 운행하는 모터 나룻배에 직원(?). 이들은 수심이 얕아 모터에 쓰레기가 걸려 배가 멈출경우 곧바로 잠수하여 장애물을 치우며 승선팀에게 1~2달러 팁을 받는다

 우리일행이 탄 관광선의 캄 소년- 수상마을 사람들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드린 것일까   소년의 표정이 ...

 

'앙코르 왓(Angkor Wat)-인간이 만든 신의 도시.

" 모든 앙코르의 사원은 '앙코르 왓'을 만들기 위한 실험무대였고, 이전의 모든 앙코르의 시간은 '앙코르 왓'을 만들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앙코르 왓'은 앙코르 문화의 결정체이고 가장 화려한 결과물이다. 장대한 해자(사원의 보호,신의 세상과 속세의 구분, 적과 동물들의 침공을 막기위한 목적으로 만든 인공 호수로 사원을 둘러 싸고 있다)와 긴 공도, 끝없이 펼쳐지는 대서사시와 같은 화랑의 벽화,

살아 숨쉬는 듯 체온을 느끼는 수많은 압사라(힌두 신화 중 천지창조의 우유 바다 젓기에서 탄생한 여신 혹은 천상의 무희. 사원에 새겨진 압사라는 같은 표정과 포즈가 하나도 없이 다양하다.)들의 미소, 벽면의 수많은 장식 무늬, 중앙 성소의 장엄함과 신성함 등 신을 위한 신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1113년~1150년 수르아바르만 2세 왕에의해 건축. 20만 명의 노예가 동원. 12세기 이전에 지구상에 지어진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사원으로 호칭되고 있다.

                                                                                                                                                                                         -유목민루트 지에서

 

 

 

 

 

 

 

 

'바욘(Bayon) -' 영원한 앙코르의 미소' -12세기 말~13세기 초, 자야바르만 7세'앙코르 톰'  도시 중앙에 위치한 중심 신전으로 자야바르만 7세의 평생 업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신비로운 사원이다.  서로 다른 바위들을 하나씩 이어 마치 부록 맞추기를 하듯 20만 개가 넘는 바위들을 끼워 맞춰 형상을 만들고, 거기에 얼굴과 신화와 업적을 새겨 넣는 놀라운 기법을 도입했다. 이것은 앙코르의 수 많은 신전중에서 유일한 것으로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구조물로 보이는 착각에 빠진다. 3층 구조로, 1,2층은 부조가 가득한 회랑이 둘러 싸고, 3층은 테라스 처럼 되어 있어 '바욘'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어머니를 위해서는 ' 타 프롬' 을,  아버지를 위해서는 ' 프레아 칸' 사원을 세우고 자신을 위해서는 이 '바욘'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주변에는 54개의 크고 작은 탑들이 중앙 성소를 에워싸고, 지붕을 이루는 216개의 큰 바위에는 관세음보살과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의 얼글이라 믿어지는 '앙코르의 미소'천년 세월에도 변함없이 자비로움을 짓고 있다.  

 

  

 

 

 

 

 

 

 

 

 

 

 

 

 

 '코끼리 테라스'와,'문둥이 왕 테라스' -.  '앙코르 톰'의 남문을 드어가 관람, 길이 300m의 긴 테라스 하단에 코끼리와 가루다가 조각되어 있다.  주로 외국 사신을 영접, 국가 행사, 군대사열 등의 목적으로 이용. 나란히 자리한 '문둥이 왕 테라스'는 이중위 벽 구조로 벽면 가득 이간, 압살라 등이 새겨져 있다. (문둥이 왕...는 자야르만 7세가 충신을 참형하다 피가 튀어 문둥병에 걸렸다는 설 등)

 

 

 

 

'타 프롬(Ta prohm)-1186년 자이바르만 7세가 왕위에 올라 5년만에 어머니를 위해 헌납한 사당 겸 사원 왕권의 전통성을 강화하기위해 중앙에 어머니를 상징하는 '프라나바라밀다'를 세움. 불교 숭배 시절 건립된 불교사원이나 당시 앙코르 왕국은 힌두교를 신봉했기에 사원의 구조나 양식은 힌두교 건축양식이 혼합.

타 프롬에 새겨진 문자 기록에는 고위급 승려가 18명, 관리인 2740명, 무희가 무려 615명.

폐허중에도 화려함을 잃지않은 '타 프롬' 사원은 곧게 뻗은 '이엥나무'와 사원의 벽과 기둥을 휘감으며 뿌리를 뻗고 있는 '스펭나무' 생존.

EFEO(프랑스 극동학원)는 19세기 발견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놓아두기로 결정하여 지금까지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토인비'가 "자연의 회귀"와 "폐허의 미학"을 동시에 언급한 '타 프롬'을 느낀다.   * (35도를 넘는 열기와 따가운 태양열에 일행은 한 나절만에 얼굴이 붉게 익어버리고 연신 가쁜숨을 몰아쉬고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앙코르왓의 영화와 유산, 흔적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몰입되고 있었다.

 

 

 

 

 

 

 

  

 

 * '바꽁(Bakong)사원.-피라미드 형식의 최초의 사암사원으로 881년 인드라바르만 1세가 건축. 앙코르 왕국 초기의 수도, 히리하라라야 한가운데 위치한 '바콩'사원은 앙코르 국가의 중앙 사원으로 그 위상을  자랑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인드라바르만 1세는 조상들을 위하여 '프레아 코'를 건립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이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사암을 사용하였고, 900x700m에 달하는 외벽은 홍토로 만들어졌다. 우주의 중심에 솟구쳐 있다는 '메루 산'을 중앙 성소로 표현한 효시가 되는 사원이다.

중앙 성소의 벽에 남아 있는 조각들은 풍화작용으로 많이 손상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왕이 있는 방으로 가려면 누구나 가파르고 급경사진 돌 계단을 기어서 올라야 하는 '바콩' 사원은 오늘도 수 많은 여행자들을 사원 정상까지 기어오르게 하고 있어 당시의 영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프놈 바켕(Phnom Bakeng)' 입구 보수공사중인 사원-야소바르만 1세가외적의 침공에 대비하여 롤로스를 떠나 새 수도 야소다라푸라를 건설하면서 , 수도의 중심높이 62m의 '바켕'산 위에 새운 앙코르 지역 최초의 신전. 신전 정상에서 바라보면 앙코르 톰과 앙코르왓, 톤레? 호수가 보인다.

피라미드 형의 사원 중심에 성소가 있고 사방에 4개의 탑이 있다. 원래 108개의 탑이 있었으며 이사원을 모태로' 앙코르 왓'을 만드었다고 한다.

 

 

 

 

 

 

 

 

 

 

  앙코르 건축예술의 빛나는 보석 '반데이 스레이'-967년 라젠드라바르마 2세(944~968)준공, 자야바르만 5세(968~1001)완공. 건립자-브라민 야즈나바하.

반데이는 성채, 스레이는 여인이란 의미로 '여인들의 성채'라 불림.

반데이 스레이는 짙은 분홍빛 사암과 홍토를 사용, 사원전체가 분홍 꽃잎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사원이다. 앙코르의 모든 유적군이 국가 신전으로 신의 무덤이라는 성격을 지닌데 반해, 반데이 스레이는 라젠드라바르만 2세의 신하이자 자야바르만 5세의 스승인 브라민 야즈나바라하와 그의 동생이 건설한 초기 유적의 걸작품이다.

당시 수도 야소다리푸라에서 25km떨어진 이스바푸라 쉬바의 도시에 세워진 이 사원은 왕이 지은 사원이 아니기 때문에 규모는 작지만 빈틈없이 화려한 조각으로 채워져 있고 1914년에 발견되어 기록만 남긴체 1924년까지 방치되었다가 이후 프랑스의 문화부장관 앙드레 말로의 유물 밀반출 사건 이후 주목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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