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 정호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햇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히 흩어져 돌아갔을 때
그는 조용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고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니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다운가
가을 꽃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 꽃이여
시인 정호승
1950년 경상남도 하동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경희대학교 대학원 졸. /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로당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첨성대〉당선./ 1982년《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위령제〉당선./ 1979년 첫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출간. /시집 《서울의 예수》(1982)와 《새벽편지> 《샘터》 편집부와 《월간조선》 근무, /2000년 현대문학북스 대표/ 1989년 제3회 소월시문학상, 1997년 제10회 동서문학상 수상,/ 2000년 제12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 시집 《별들은 따뜻하다》(1990),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1999),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사랑하는 사람》(2000) 등,/ 수필집 《첫눈 오는 날 만나자》,(1996) 동화집 《에밀레종의 슬픔》 《바다로 날아간 까치》(1996), 《연인》(1998), 《항아리》(1999), 《모닥불》등 다수
0), 장편소설 《서울에는 바
다가 없다》(199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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