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삶이란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 안도현의 시 <연탄 한 장>에서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안도현 시 <연탄 한 장> 전부

 

 

안도현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군대에서 제대하고 대학에 막 복학했을 때이다. 첫 인상이 아주 친근하고 신선했다. 특히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안도현 시인의 시가 독자를 문득 놀라게 하는 이유를 나는 그 눈에서 찾았다.

그리고 잊지 못할 기억도 있다. 그 당시 우리학교에는 문학동아리가 많았는데 동아리 통합 문제로 안 시인과 서넛이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때 서로 왈가왈부하면서 시비가 붙었는데 정도가 과하니까 안 시인이 ‘그만 하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맥주로 머리를 막 감는 것이었다. 우리는 헐레벌떡 열이 식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거기서 안 시인의 강단 넘치는 에너지를 보았다고나 할까 하여튼 안 시인의 기발한 착상은 반짝이는 눈의 포착력과 깊고 깊은 시심에서 나온다고 할까 보다.

안 시인의 시 <연탄 한 장>은 제4시집 초반부에 실려 있다. <너에게 묻는다>가 첫째이고 그 다음으로 <연탄 한 장>, <반쯤 깨진 연탄>이 뒤를 잇는데 모두 연탄이 그 소재다. 3행 단시 <너에게 묻는다>는 안 시인의 재주가 돋보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 는 독자들로 하여금 깊은 성찰을 하게 하는 수작이었다. 이 시는 이기적이고 각박한 현실에서도 자기희생을 통하여 세상을 뜨겁게 하는 연탄에 대한 예찬이었다.

<너에게 묻는다>와 함께 <연탄 한 장>도 독자를 문득 놀라게 하는 재주가 돋보인다. 시 중반부의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며 후반부의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누군가가 마음 놓고 걸어갈 길을 만드는 거'라는 착상은 눈의 각도가 유별나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안 시인은 동화적 상상력이 풍부하다고나 할까 아니면 사물의 정령을 끌어내는 능력이 있다고나 할까 어떻든 사람을 대하는 친근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 이런 물상들에까지 미쳐서 그런 신선한 발상이 나온다고 본다.

1990년대는 안 시인에게 이별의 아픔이 컸던 때였다. 전교조 문제로 학교에서 해직되어서 생계도 막막했고 사랑하는 제자들과 헤어져서 길거리를 낙엽처럼 굴러다니던 때였다. 그러다 보니 연탄으로 난방을 해야 했다. 그렇게 연탄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그 착상이 시선하고 은유적이다. 겨울날 뜨끈뜨끈하게 방을 덥혀 주지만 자기는 연소되어 사라지는 연탄의 희생성이 따뜻한 이웃사랑으로 받아들여지고 민주화 길에서 고초를 겪어야 했던 안 시인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 시는 1990년대 독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쓴 것이다. 그러면서 그 당시 시대 상황과 결부된 자기 헌신성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다 희생된 열사들의 정신을 연탄의 희생성으로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시는 '삶이란 나 아닌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거'라고 단정하면서 풀어나간다. 그러면서 '겨울날 거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며 삶의 희망을 노래하기도 한다. 추운 겨울날 연탄차에 가득 실린 연탄이 방구들을 뜨겁게 하고 따스한 밥과 국물을 준다면 이것보다 더 큰 희망은 없을 것이다. 연탄은 온몸을 태워서 이웃 사랑을 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다.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고 자기 연소를 망설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망실이 두려워서 자기희생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시적 화자는 이런 연탄의 희생성을 자각하면서 연탄에 미치지 못하는 자기를 성찰하게 된다. 사는 것이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인데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죽어서 까지도 이웃사랑을 이어가는 연탄을 예찬하는 것이다. 눈 내려 미끄러운 언덕길을 누군가 마음 놓고 내려가게 만드는 연탄의 최후를 보면서 자기를 성찰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몰랐네', '되지 못하였네', '몰랐었네' 등의 각운은 시적 화자가 연탄과 같은 삶을 지향하겠다는 반어적인 다짐으로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나 아닌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라고 한다. 시적 화자는 연탄의 자기희생과 헌신성을 통하여 자신을 성찰해 나간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가 연탄처럼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연탄의 자기희생은 완전 연소에서 끝나지 않는다. 죽어서도 미끄러운 언덕길에 으깨어져서 길 가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1990년대 격변기에 많은 사람들이 열사가 되고 감옥에 가고 밥줄이 끊기기도 했었다. 자신을 연소시켜서 뜨겁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연탄처럼 자기 희생성을 발휘했던 것이다. 안 시인은 이런 90년대 민주화 운동기를 겪으면서 삶이란 나 아닌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거라며 시적 화자는 물론 독자에 까지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출처 : 달빛세상
글쓴이 : 바른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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