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입구서‘희극인의 날’ 핸드프린팅 제막식 열려
 
성남투데이
올해 처음으로 10월 25일 ‘희극인의 날’이 제정된 가운데 11일 오후 남한산성 유원지 놀이마당 입구에서는 ‘희극인 핸드프린팅 제막식’행사가 개최됐다.
 
▲ 11일 오후 남한산성 유원지 놀이마당 입구에서는 ‘희극인 핸드프린팅 제막식’행사.     © 성남투데이

성남시가 후원하고 성남예총, 희극인의날 제정추진위원회 등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추진위원인 이용식, 남보원, 남성남, 임희춘 등 희극인을 비롯한 일반시민과 이대엽 성남시장 등 주요인사 2천여명이 참석했다.

제막식 행사는 남한산성 입구(가칭 웃음의 동산)에 설치한 구봉서, 송해, 배삼룡 등 44명 희극인의 핸드프린팅 제막식과 서영춘, 김희갑, 김형곤, 이주일 등 25명 작고 희극인의 이름을 새긴 동판 제막식, 테이프 컷팅 행사가 진행됐다. 이어 이용식 씨의 사회로 신인가수 이종박, 전자바이올린 연주팀, 성남가수 정수빈, 아침마당, 초청가수 서지오 등의 축하공연이 펼쳐졌다.  

이용식 등 희극인의 날 추진위는 대한민국을 웃겨온 희극인들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고 앞으로 희극발전을 위해 올해 처음 ‘희극인의 날’을 제정, 지난달 25일 일반시민과 전국의 희극인 등 1만5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희극인의 날 제정’ 축하 행사를 성남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성황리에 개최한 바 있다.

추진위는 앞으로 ‘희극인의 날’ 행사를 ‘성남희극제’라는 이름의 문화예술축제로 확대할 계획이며, 44명 희극인의 손도장 등이 설치된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 남한산성 입구 인도를 앞으로 ‘웃음의 거리(가칭)’로 조성할 계획이다.     
기사입력: 2009/11/12 [09:18]  최종편집: ⓒ 성남투데이

말 많고 탈 많은 대종상에 또 공정성 시비가 불거졌네요.
<해운대>와 <내 사랑 내곁에>의 하지원은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탈락하고 
<하늘과 바다>의 장나라가 올라간 것에 대해 누리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9년 전에는 하지원씨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입장이었다는 것입니다.
2000년 37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 여우상을 받았는데,
검찰 수사결과 매니저가 감독을 통해 심사위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9년 뒤 하지원씨는 피해자 입장이 되었습니다.
공정성 논란에 대해 하씨가 "대종상의 권위와 판단을 존중한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이런 전력이 회자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가 원로 배우인 장나라는 대종상이 사랑하는 배우입니다.
2003년 <오 해피 데이>에 출연한 장나라는 <질투는 나의 힘>의 배종옥을 제치고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랏습니다.
이런 전력 때문에 누리꾼들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7년 전에 대종상의 문제점에 대해 취재했던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심사위원 구성이었습니다. 
원로영화인 위주로만 구성되니 관객들의 감수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대종상에 산소호흡기를 대고 있는 각종 영화단체들의 재정도 대종상의 공정성을 해치는 요인인데 이에 대한 개선 작업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원로 영화인들의 입김이 다시 세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다시 대종상 문제도 불거졌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 등에 문제제기를 하며 '좌파척결'을 해야한다는 원로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영화계 '앙시엥 레짐'의 시작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 아래 글은 제가 2002년도 썼던 글입니다.

대종상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은 이유

연예계 비리 수사의 불똥이 튀면서 말 많고 탈 많던 대종상의 공정성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서울지검 강력부(노상균 부장)는 배우 하지원씨의 매니저가 2000년 제37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하씨가 신인 여우상을 타도록 감독을 통해 심사위원에게 로비 자금 8백여만원을 건넸다고 발표했다. 하씨는 실제로 그 해에 이재은씨와 함께 신인 여우상을 공동 수상했다.


1962년 문교부 고시로 제정된 대종상은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영화상이다. 그러나 대종상 40년의 역사는 그대로 한국 영화 오욕의 역사이기도 했다. 군사 정권 시절에는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정권 홍보 영화가 상을 받았고, 수상작에 한해 외화 수입 쿼터를 주기 시작하면서는 비리로 얼룩졌다. 1987년부터는 영화인협회(이사장 신우철)가 행사를 주관하고 있지만 심사위원이 부정 심사를 폭로하는 양심 선언을 하고, 시상 결과에 의혹을 제기한 감독이 검찰에 투표함 증거보전 신청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과감하게 옷 벗은 용기 기특하니 상 주자”


<박하사탕>이 작품상을 받은 2000년 제37회 영화제는 비교적 무난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당시 본선 심사 회의록을 살펴보면 심사가 얼마나 엉성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신인 여우상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한 심사위원이 이재은씨에게 상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가 어이없는 것이었다. ‘요즘 여배우들은 벗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씨는 영화에서 과감히 벗어주었기 때문에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라도 상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종상 문제가 외부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계기는 지난해 제38회 영화제였다. 그동안 영화제를 주관했던 영화인협회는 공정성 시비를 해소하기 위해 소장파 영화인 모임인 영화인회의(이사장 이춘연)와 영화제를 공동 주관했다. 영화제를 공동 주관하며 영화인회의 활동가들은 처음으로 대종상 문제를 내부에서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다.


가까이서 들여다본 대종상 영화제는 문제투성이였다. 당시 사무국에서 영화제를 준비했던 영화인회의의 한 활동가는 “대종상은 최고 권위의 영화제도, 영화인들의 잔치도 아니었다. 영화인협회와 산하 기관들의 1년 살림 밑천을 챙기는 행사에 불과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각 산하기관들은 본선 진출을 빌미로 후보자들에게 협회 가입을 종용하고 회비를 받아냈는데 사무국에서는 이런 관행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영화인회의의 추천으로 본선 심사에 참여했던 심사위원들이 체감한 문제는 훨씬 더 심각했다. 심사 기준이 터무니없는 데다가 심사 과정이 너무나 비민주적이었기 때문이다. 심사에 참여했던 영화 평론가 양윤모씨는 “심사위원들이 먼저 이력서를 보고 족보부터 따졌다.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후배인지부터 살폈는데 정말 어이없었다” 라고 말했다. 역시 심사에 참여했던 황철민 교수는 “전혀 토론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죽여버리겠다고 위협까지 하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작품을 선정하라고 강요했다” 라고 밝혔다.


대종상 영화제 심사위원 선출 방식은 영화인협회가 집행위원을 선발하고 집행위원이 다시 예선과 본선 심사위원을 선발하는 구조이다. 그런데 심사위원이 60∼70대 원로 영화인 위주로 구성되다 보니 당대의 영화계 정서를 담아내지 못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달성한 한국 영화의 눈부신 성취를 파악하지 못한 일부 심사위원들은 젊은 영화 관객의 감수성과 동떨어진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영화제 심사에 참여했던 소장파 심사위원들이 부딪힌 벽도 바로 원로 영화인들의 닫힌 시각이었다. 심사에 참여했던 한 심사위원은 “국제 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들은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을 영화도 아니라고 폄하하고 <공동경비구역 JSA>의 송강호가 인민군 장교 역할을 했기 때문에 주연상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정도로 영화에 대한 시각이 보수적이었다” 라고 말했다. 당시 한 심사위원은 <친구>가 상을 하나도 수상하지 못한 이유를 해명하면서 “사람을 수십 차례나 칼로 찌르는 영화를 어떻게 상을 주느냐”라고 말해 영화팬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데는 지극히 눈이 어두운 대종상은 그러나 옛날 영화의 미덕을 찾아내는 데는 유난히 눈이 밝았다. 대종상은 영화발전공로상, 특별기술상(2), 특별연기상(2) 등 무려 5개 부문에 공로상을 남발하고 있다. 전형적인 나누어먹기식 시상이다.


일선 영화 제작자들도 대종상에 심각한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다. 조우필름 조종국 대표는 “대종상은 영화인들의 단합을 저해하고 불신 풍조를 조장한다. 일선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영화제를 보이코트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원로 중심 심사위원단, 당대 영화계 정서 못읽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김혜준 정책실장은 대종상에 대한 일선 제작자들의 이런 반발이 단순한 감정 차원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386세대가 주축인 그들에게 영화인협회로 상징되는 원로 영화인들은 존경할 대상이 아니라 극복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선 제작자들은 원로 영화인들을 독재 정권에 협력하고 외화 수입 쿼터를 확보하기 위해 영화를 제작했던 사람들이라고 본다. 이들의 반발심은 봉합할 수준을 넘어서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대종상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3년 제31회 영화제와 1994년 제32회 영화제 때는 소장파 영화인들이 주축이 되어 개혁에 나섰다. 그러나 대종상을 개혁하려던 이들의 노력은 공정성 시비를 벗어나려는 기득권 세력의 물타기에 이용될 뿐이었다. 대종상을 개혁하려 했거나 대종상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영화제의 회생 가능성에 대해 대부분 회의적이다. 대종상 사무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영화인은 “영화인협회가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면 대종상의 공정성은 결코 확보될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영화계 안팎에 대종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일면서 영화제의 위상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영화인회의는 올해 대종상을 공동 주최하자는 영화인협회의 제안을 거절했다. 전성기 때 10억원을 넘었던 영화제 예산도 협찬사가 나타나지 않아 이제는 3억∼4억 원 규모로 줄었다. 대종상은 또 3대 영화제 중에서 유일하게 공중파로 중계 방송이 되지 않는 영화제이다. 올해는 배우들도 많이 불참해 영화제의 쇠락을 확인해 주었다.


협찬사도 다 떨어져 나가 올해 영화제 사무국은 영진위의 지원금만으로 영화제를 치러냈다. 그러나 공정성 시비가 계속될 경우 영진위도 지원을 계속하기 힘들기 때문에 영화제는 지금 존폐 기로에 서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영화인협회측은 개혁에 둔감하다. 심사위원의 금품 수수 사건에 대해서 협회 관계자는 “로비 자금으로 건넨 돈이 불과 8백만원이다. 예심과 본심 심사위원이 20명이므로 한 사람당 40만원을 받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 돈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표를 주었을 리는 없다”라고 말했다. 향후 대책에 대해서도 심사위원 숫자를 50명 정도로 늘리는 것 외에는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국민가수’ 이미자(67)씨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이씨에게 수여된 은관문화훈장은 국내 대중가요분야에서 역대 최고등급(2등급)으로,

 지금까지 최고등급은 이씨를 비롯해 가수 김정구, 백년설, 조용필, 남진씨 등이 받은

 ‘문화의 날’ 기념 문화훈장(3등급)이었다

* 연기와 노래를 통해 삶의 활역을 주는 연예인은  대중의 부러움이고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만큼의 수고와 노력이 요구되는 연예인의 위치는 대중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흡입력이 있어

늘 행동에 자유롭지 못하다.

대중들에게 공인의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는 노력은 물론, 자신을 다스리는 엄격함도 요구받는다.

연예인도 저마다 자유인으로 사적 권익과 삶이 존중되야  함은 당연하다.

                                연예인들과 만난 스냅 사진을 여기에 옮긴다.  

                                                                                                - 징소리 김성태

 



가수 코리아나  이애숙 (88서울올림픽 '손에 손잡고..,)

 

 



가수 설운도

 



가수 주현미

 


탈렌트 임채무. 가수 현숙. 징소리 김성태.  탈렌트 김영애

 



 가수 임희숙 "나하나만의 사람은 가고"

 



* 좌 *,김성태. 박춘석(작곡). 남진(가수). 석현(한국연협 이사장). 오세응(국회의원) 

 

가수 인순이

 



* 좌: 가수 송대관. 김성태, *.  기수 민혜경

 



영화배우 신영균(한국예총 회장. 국회의원) 

 

탈렌트 임수정

 

가수 장윤정

 

탈렌트 김학철

 

가수 전영록

 

김영임(국악인). 이상해(코미디언)

 

탈렌트 조상구 (시라소니 역으로 인기).

 

좌: 이광용(사진). 이영식(연예기획)). 조성란(무용). 징소리. 최병서(개그맨). 이애숙(가수). 윤금선(성악). 송영철(탈렌트) -2000. 평창 성남예총 세미나 장에서

 

 


                        

    * 좌: 김성태, 인순이, 오성수(성남시장)

 

 

장윤정의    드라마 '이산' 주제곡

 

 

                  * 한국연예협회 성남지부

 한국연예협회 성남지부는 연예예술의 발전과 향상을 도모하고 회원간의 친선과 단결로 사회적 지위향상과 권익을 옹호함을 목적으로

 1986년 1월30일 중앙으로부터 인준되어 정식 창립되었다.

 1973년 시제가 실시되기전까지는 연예인의 활동이 그렇게 활발한 편은 아니었다. 당시 중동, 신흥동의 한전골목 그리고 수진동의

 제일시장 골목등에 밀집돼있는 각종주점에서 연예인들의 공연을 간혹 접할수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이

 성남에 정착하지 않은 초청자들 이였기 때문에 시사에 기록할 대상은 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신흥동을 중심으로 대중관광유흥업소들이

 속속 문을 열게 되었는데 국제, 월드컵, 남도, 남한산성, 대원, 제일카바레에서 각분야의 연예인(가수, 코메디언, 밴드, 무용등)을

 고용하게 되면서 성남에도 유명한 연예인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성남에 머물며 연예활동을 계속한 사람으로

 한국연예협회 성남지부 창립의 초석이 되었던 한국연예협회 경기도지부 성남분실 발족에 기여한 조이수(趙二秀)를 꼽을 수 있다.

 1985년 10월 성남예총 창립을 위해 행정실무를  주관하던 김성태가 한국연예협회 이상우 이사장과 협의하여 조이수를 독려하고 김건아, 이영식, 이상호, 강충원들과 협조하여 1986년 1월30일 한국연예협회 성남지부를 인준받게된다.

 당시 초대임원에는 지부장에 조이수, 부지부장에 조영육, 이상호, 이영식, 기획실장 박용승, 사무국장에 강충원, 상임위원 장태현,

홍보실장 서호근, 운영위원 최한범, 안유섭, 총무 박창훈이 있었다.

 연예협회 초창기는 성남예총 창립식에 출연하고 예총이 제정한 성남종합예술제 시민노래자랑을 주관하면서 군부대 위문공연,

 청소년장기자랑대회, 건전가요 경연대회등을 개최하며 대중예술의 저변확대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성남연예협회는 1994년 7월20일 성남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이덕화 매니저로 활동하던 이영식(李永植)이 지부장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대중연예행사가 펼쳐지게 됐다. 

 1993년6월 성남예총 김성태 회장이 성남교차로(대표 유길수)와 제정하여 공동주최한 성남주부들의 노래실력을 겨루는 성남주부가요제는  2003년현재까지 10회에 이르고 있다.

                                                                                                                           -성남시사30년사(2003년 발행)- 연예편에서

제1회 성남주부가요제-수상자들과  임석봉 성남시장 등 내빈-성남시민회관 대강당 -1993. 6.

 

대상경품 '티코'자동차 1대를 협찬 및 공동주최한 성남교차로 유길수 대표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김성태 (성남예총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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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게시글


* 유길수 님 페북 퍼옴

( 우길수 님은 당시 성남교차로 대표였고, 이후 성남문학상, 성남예술대상 등 부상을 협찬하는 등 많은 지원을 하며 성남예술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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