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남시 은행동계곡(남한산성 입구 우측능선)에 있는 김춘수 시인의 "꽃' 시비

 

*  김춘수 시인은 가장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불행한 시인이다. 일견 볕 잘 드는 방에서 언어와 놀이에 빠져 자기 유희에만 열중한 시인의 뒷 잔등을 먼저 보게 되는 듯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그가 방 밖 세계에 대한 예민한 시선과 자신의 자유 의지 사이에서 긴장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의 삶과 시적 편력은 매우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하지만 그의 시에 드리워진 시인의 생애는 마치 추상적 편린과도 같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시에서 생의 기미를 읽으려는 그런 독법 자체가 가장 무효화되는 시인이 바로 김춘수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역설적으로 시인은 고집스럽게 견지해 온 자신의 시세계가 딛고 있는 자신의 삶과 시에 대해 오해와 편견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해 왔다.
그는 1922. 11. 25. 경남 통영의 부유한'수재집안"에서 태어났다.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 동경의 예술대학 창작과에 입학했다. 1942년 일본 천황과 총독 정치를 비방했다는 혐의로 퇴학당하고 6개월간 유치되었다가 서울로 송치되었다. 통영중학과 마산중.고교 교사를 거쳐(1946-1952) 해인대학과 경북대, 영남대 교수를 지냈으며(1960-1981),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이후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및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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