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1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뜰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띈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자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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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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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김용택


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 산입니다.
산도 꽃 피고 잎 피는
산이 아니라
산국 피고 단풍물든 산이 아니라
그냥 먼 산입니다.
꽁피는지 단풍지는지

당신은 잘모르는 그냥 나는 그대를 향한
그리운 먼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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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 세트
책 정보
저자 <김용택> 저
출판사 문학동네|2013년01월
 

책소개

섬진강에서 길어낸 30년 세월, ‘섬진강 시인’ 김용택
그리고 마침내 한자리에 모인 여덟 빛깔의 ‘섬진강 이야기’

'김용택 문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섬진강' 이다. 섬진강은 김용택 문학의 시작과 끝을 잇는 가장 중요한 줄기이며, 역사이자, 심장이다. 그를 '섬진강 시인'으로 만들어준 섬진강과 그 곁의 자연,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여기에는 신작 산문집 두 권과, 기존에 여러 책과 매체를 통해 발표한 섬진강에 관한 산문들, 총 여덟 권으로 분량으로 풀어놓은 섬진강 세월 30년이 담겨 있다.

작가는 고향 진메 마을의 산이며, 강이며, 나무며, 샘이며, 징검다리며 그 무엇도 빼놓지 않고 ‘복원의 밑그림’을 성실하게, 빽빽하게, 아름답게, 때로는 서럽게, 눈물겹게 그려왔다. 그는 섬진강이, 진메 마을이, 산골의 작은 학교가 설령 사라진다 해도 훗날 어느 화가가 자신의 글을 보고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 그려주기를 바라는 듯한 마음으로, 작은 돌멩이 하나 빠뜨리지 않고 소중하게 기록해왔다. 사라져가는 것들, 철 지나고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인간 삶 본연의 가치를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고된 글쓰기를 계속해온 것이다. 고통과 슬픔 없이 쓸 수 있는 글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작가는 자신만의 행복한 외길을 걸어왔으며,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 산문집에서 그 기나긴 징검다리에 놓인 글들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복원하고 있다.

*이 책은 세트상품입니다.(전8권)
『내가 살던 집터에서』
『살구꽃이 피는 마을』
『섬진강 남도 오백 리』
『진메 마을 진메 사람들』
『같이 먹고 일하면서 놀았다네』
『창우야 다희야, 내일도 학교에 오너라』
『김용택의 교단일기』
『꽃이 피는 그 산 아래 나는 서 있네』

                    * 김용택 시인과 덕치면 진메마을 생가

저자소개

저자 :김용택
대한민국의 시인으로 모더니즘이나 민중문학 등의 문학적 흐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로 독자들을 감동시키며 대상일 뿐인 자연을 삶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한 그는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전라북도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태어나 순창농고를 졸업하였으며 그 이듬해에 교사시험을 보고 스물한 살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교직기간동안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임실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썼었다. 섬진강 연작으로 유명하여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칭이 있다. 2008년 8월 31일자로 교직을 정년 퇴임하였다.

김용택은 시골에 머무르면서 글을 쓰고 있는 보기드문 작가이로,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이 아닌 곳에서 쓰여지는 작품들이 쉽게 대중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그는 꾸준히 글을 쓰고 있고, 또한 일반에게 그것이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김용택의 글 속에는 언제나 아이들과 자연이 등장하고 있으며 어김없이 그들은 글의 주인공으로 자리잡고 있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글을 쓰며 호흡하는 김용택은 아이들과의 글쓰기를 통해 아이들이 자연을 보고, 세상을 이해하는 시선과 교감하며 세상을 바라본다. 그 속에서 아이들의 작품은 어엿한 문학 작품이 되기도 한다. (『촌아, 울지마』) 또한 김용택은 아이들의 순수함과 숨겨진 진실을 단번에 알아차리는 직관적인 시선에 감동받으면 자신의 글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연시에 무척 어울릴법한 섬세한 시어와 감성 - 실제로 그의 연시는 널리는 읽히는 연시들이다 - 을 가지고 김용택이 바라보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과 아이들만이 아니다. 김용택은 그 빛나는 시적 대상들을 아름다움을 가리고 있는 한국 농촌의 황폐함에 주목한다. 험난한 세월을 견디며 살아 왔으면 이제는 폐가만이 황량한 농촌 마을과 피폐해진 땅을 갈며 살아가는 사람들, 지난한 역사를 흘러오면서 억세진 어머니와 누이의 손등에서 김용택은 이 나라의 아픔을 발견한다. 그것은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잊혀졌던 우리의 고향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름이 알려진 후에도 김용택이 고향 마을을 떠나지 않은 까닭은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것이다. 김용택는 출근길의 꽃내음과 학교 뒷산 솔숲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자신의 시와 삶을 길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택은 시적 상상력은 그래서 '촌'스럽다.

"출근하면 늘 오르는 학교 뒤꼍 조그마한 동산 솔숲에 오른다. 아침햇살은 솔숲에 떨어져 빛나고 솔 숲 아래 작은 나무들도 솔숲 사이로 새어든 햇살을 받아 그 작은 몸들이 빛난다. 솔숲에 떨어진 솔잎들은 떨어진 그대로 가지런히 누워 반짝인다. 작은 숲길을 걸어 언제나 이만큼 돌아나오면 푸른 호수 위에 작은 운동장이 보이고 아이들 해맑은 소리가 들렸는데, 방학이어서 아이들 소리는 들리지 않고 맑은 햇살이 운동장 가득 퍼져 까맣게 탄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놀던 작은 돌멩이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시집으로 『섬진강』『맑은 날』『누이야 날이 저문다』『그리운 꽃편지』『강 같은 세월』『그 여자네 집』『그대, 거침없는 사랑』『그래서 당신』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작은 마을』『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섬진강 이야기』『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인생』 등이 있다. 이밖에도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 성장소설 『정님이』,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내 똥 내 밥』, 동시엮음집 『학교야, 공 차자』, 시엮음집 『시가 내게로 왔다』 등 많은 저작물이 있다. 1986년 김수영문학상을, 1997년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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