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공복
-정진규
거기 늘 있던 강물들이 비로소 흐르는 게 보인다 흐르니까 아득하다 춥다 오한이 든다
나보다 앞서 주섬주섬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슬픈 내 역마살이 오슬오슬 소름으로 돋는다
찬 바람에 서걱이는 옥수숫대들, 휑하니 뚫린 밭고랑이 보이고 호미 한 자루 고꾸라져 있다
누가 던져두고 떠나버린 낚싯대 하나 홀로 잠겨 있는 방죽으로 간다 허리 꺾인 갈대들 물 속 맨발이 시리다
11월이 오고 있는 겨울 초입엔 배고픈 채로 나를 한참 견디는 슬픈 공복의 저녁이 오래 저문다
—『시안』(2009. 여름)
—2009년 제2회 이상(李箱) 시문학상 수상작
시인 정진규 : 미양면 보체리. 1939년 안성 출생. 안성농업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껍질』(세계사), 『본색』(천년의 시작) 외 다수시집 출간.
고희 기념 활판 시선집 『우리나라엔 풀밭이 많다』(十月) 출간. 현재 시 전문 월간지 『현대시학』주간.
![]() |
||
▲ 제14회 김삿갓 문화제(영월) 중 제7회 김삿갓 문학상 수상자인 정진규 시인의 시비 제막식이 열렸다.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답설 (踏雪)의 작가? (0) | 2013.03.13 |
---|---|
눈이 내렸나 봅니다 -최영호 (0) | 2012.12.30 |
석류 (0) | 2012.11.26 |
징 - 박정원 (0) | 2012.11.06 |
김유정 만나기 (0) | 2012.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