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
박정원
누가 나를 제대로 한방
먹여줬으면 좋겠다
피가 철철 흐르도록
퍼런 멍이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
찡하게 맞았으면 좋겠다
상처가 깊을수록
은은한 소리를 낸다는데
멍울 진 가슴 한복판에 명중해야
멀리멀리 울려 퍼진다는데
오늘도 나는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서쪽 산 정수리로 망연히
붉은 징 하나를 넘기고야 만다
징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모가지로 매달린 채
녹슨 밥을 먹으면서
- 『시와정신』2010.가을호 발표
-------------------------------------------------------------------------------------------
* 화자인 '징'은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을 '한방 먹여' 주기를 기다린다. 나아가 피가 흐르고 퍼런 멍이 들도록 '찡하게 맞'기를 원하는데 그 까닭은 '상처가 깊을수록 은은한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타자들의 욕망에 길들여지고 억압된 채 '녹슨 밥을 먹'으며 목숨을 이어가는 화자의 억압된 욕망을 대신한다. 즉 '멍울진 가슴 한복판'이 상징하는 무의식의 깊이에 소외되어 있는 참된 욕망의 울림이다. 그리고 징채 한번 잡아 보지 못하고 타자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양도한 채 피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화자가 진정한 욕망의 주체로 태어나려는 갈망을 암시한다. 이처럼 징이 자신의 '모가지를 매달'고 있는 타자들에 대하여 피학적 대응을 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저항 의지를 역설적으로 암시하는 데 이 시의 미학이 있다. 한편 그러한 화자의 자세는 이질적인 타자들의 억압이 그만큼 무겁다는 것을 보여준다. 폭력이 거세질수록 제 소리를 내어 멀리까지 울릴 수 있는 징은 바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얼굴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모두 가슴 한복판에 녹슬어 가는 징을 하나씩 감추고 누군가 아프도록 쳐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누구나 한번쯤 징채를 잡고 이웃의 가슴 속에 숨겨둔 '은은한 소리'를 낼 때까지 쳐보고 싶은 욕망을 숨겨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 김석환 (시인, 명지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