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
아… 어머니 아버지 되뇔 때마다 가슴 저미는 이름-서하진·소설가
오랫동안 가정의 중심이었던 아버지들이 밀려나고 '엄부자모(嚴父慈母)'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위치가 갈수록 작아져가는 시대에 만난 책 '아버지 다산'은 우리들에게 아버지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다시금 돌이키게 한다. 다산(茶山) 정약용의 이름이야 모르는 이 없겠으나, 그의 시 몇 편을 스치듯 읽은 외에는 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큰 학자로만 알고 있는 나 같은 이들에게 이 책은 소중한 지식과 감동을 선사한다.
- 다산 정약용. /글항아리 제공
6남 3녀를 낳았으니 다산은 '다산(多産)'한 아버지였으나 그중 6명의 자녀가 요절하는 아픔을 겪었다. 돌을 미처 넘기지 못하고 죽은 자식도 있었으며 더러는 두 살에, 또 두엇은 예닐곱에 아비의 곁을 떠났으니, 그 허망함을 어찌 말로 다할까.
이 책은 18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척박한 유배지에서 편지로써 자식을 혹독하게 원격교육한 강인한 아버지 다산, 가난 속에서도 도덕성을 지킨 아버지 다산, 스물아홉 꽃 같은 나이에 떠난 며느리를 둔 시아버지 다산, 형인 정약전이 처형된 후 정성을 다해 돌보았던 두 명의 조카마저도 17세와 20세에 떠나보내야 했던 숙부(叔父) 다산의 절절한 사랑과 슬픔·한(恨)을 그가 남긴 편지와 시구(詩句)들을 통해 조명한다.
유배되기 이전부터 다산의 집은 가난하여 끼니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니 그가 떠난 후의 삶이야 달리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터이다. 아내와 자식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다산이 남긴 편지와 시들은 어느 한 편, 가슴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그 중 유독 마음 아픈 한 구절을 보면, '손님이 와 내 문을 두드리는데/ 자세히 보니 바로 내 아들이었네/ 수염이 더부룩이 자랐는데/ 이목을 보니 그래도 알 만하였네/ 너를 그리워한 지 사 오년에/ 꿈에 보면 언제나 아름다웠네/ 장부가 갑자기 앞에서 절을 하니/ 어색하고도 정이 가지 않아/ 안부 형편은 감히 묻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시간을 끌었다네(하략)'
강진에 유배된 지 오년 만에 큰아들 학연을 만났을 때의 소회를 토로한 시이다. 여비가 없어 아버지를 찾지 못했던 아들은 수확이 끝난 마늘을 팔아 나귀 한 마리를 얻어 아버지에게 온다. 입은 옷이 황토범벅인데, 아들이 허리나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하면서도 다산은 아들이 무안해 할까봐 묻지 못한다. 묻지 못한 것은 또 있었다. 아들은 다산에게 "수확한 마늘이 먹는 배만큼 컸다"고 자랑했지만, 농사 초짜인 아들의 말이 곧이들렸을 리 없다. 아들의 말에서 오히려 가난의 크기를 읽었지만 얼마나 힘든지 차마 묻지 못한 아버지의 심정이 시공을 넘어 절절히 느껴진다.
몽매에도 아들을 그리워하였으나 막상 만나서는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아버지. 학문의 길에나 삶에나 한 점 부끄러울 것이 없었지만 자식에게는 유독 약했던 다산. 제대로 자식들을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리는 아버지 다산. 시달리고 후들리면서도 어느 한 곳 기댈 데 없는 우리네 아버지와 너무나 닮은 그 모습이 마음 아리게 다가오는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 명상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0) | 2012.08.12 |
---|---|
잡스가 남긴 메시지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 (0) | 2011.10.06 |
행복한 여자이기를... (0) | 2011.07.28 |
노란 고무풍선 (0) | 2011.05.23 |
그건 내생에 가장 아름다운것입니다 - (0) | 2011.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