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도서관
최승자
오늘도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렸다
되도록 허름한 생각들을 걸치고 산다
허름한 생각들은 고독과도 같다
고독을 빼앗기면
물을 빼앗긴 물고기처럼 된다
21세기에도 허공은 있다
바라볼 하늘이 있다
지극한 無로서의 虛를 위하여
허름한 생각들은 아주 훌륭한 옷이 된다
내일도 나는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리리라
너에게
네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치명적이다.
네게 더 이상 팔게 없다.
내 목숨 밖에는.
목숨밖에 팔게 없는 세상,
황량한 쇼 윈도 같은 나의 창 너머로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내리고,
나는 치명적이다.
네게, 또 세상에게, 더 이상 팔게 없다.
내 영혼의 집 쇼 윈도는 텅 텅 비어있다.
텅 텅 비어, 박제된 내 모가지 하나만
죽은 왕의 초상처럼 걸려 있다.
네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치명적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자기만의 시언어를 확립하며, 기존의 문학적 형식과 관념을 보란 듯이 위반하고 온몸으로 시대의 상처와 고통을 호소해온 시인이다. 1952년 충청남도 연기에서 태어났다. 수도여고와 고려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했으며, 계간〈문학과 지성〉에 「이 시대의 사랑」 외 4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최승자는 현대 시인으로는 드문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박노해, 황지우, 이성복 등과 함께 시의 시대 80년대가 배출한 스타 시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2001년 이후 투병을 하면서 시작 활동을 한동안 중단했으며 2006년 이후로 요양하다 2010년, 등단 30주년 되는 해에 11년의 공백을 깨고 신작을 발표, 2011. 7월 경기도 이천의 정신과 병동에서 일곱 번째 시집 ‘물 위에 씌어진’(천년의시작)을 냈다.
저서로 시집《이 시대의 사랑》,《즐거운 일기》,《기억의 집》,《내 무덤 푸르고》,《연인들》등이 있고, 역서로《굶기의 예술》,《상징의 비밀》,《자스민》,《침묵의 세계》,《죽음의 엘레지》,《워터멜론 슈가에서》,《혼자 산다는 것》《쓸쓸해서 머나먼》<물 위에 씌어진’>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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