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새

                - 감태준

 

바람에 몇 번 뒤집힌 새는

바람 밑에서 놀고

겨울이 오고

겨울 뒤에서 더 큰 겨울이 오고 있었다


"한번 ……"

우리 사는 바닷가 둥지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고향을 바꿔 보자"


내가 아직 모르는 길 앞에서는

달려갈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때,


아버지는 바람에 묻혀

날로 조그맣게 멀어져 가고, 멀어져 가는 아버지를 따라

우리는 온몸에 날개를 달고

날개 끝에 무거운 이별을 달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환한 달빛 속

첫눈이 와서 하얗게 누워 있는 들판을 가로질러

내 마음의 한가운데

아직 누구도 날아 가지 않은 하늘을 가로질러

우리는 어느새

먹물 속을 날고 있었다.


"조심해라, 얘야."

앞에 가던 아버지가 먼저 발을 헛딛었다.

발 헛딛은 자리,

서울이었다.

 

 

해 탈

                - 감태준
 
해탈이 어찌 내 품에 안기기를
바라겠는가
 
남한산성 가는 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바람에 가지 씻고 서 있는 나무들을 본다
 
아무 미련 없이
남은 단풍잎을 털고 있는 느티나무 고목한테
해탈이 찾아와 노는지
빈손을 흔들어 보이며
허허 웃고 있는 얼굴이 보인다
 
나도 몸 가뿐하게
버릴 것 버리고 나면
해탈이 찾아와줄까?
 
눈 반쯤 내려 감고
무릎 위에
두 손 가볍게 올려놓을 수 있을까? 

 

감태준 1947 경남 마산 출생 1972 <<월간문학>>에 <내력>으로 등단
1982 제2회 녹원문학상 수상, 1986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시집 <몸 바뀐 사람들> <마음이 불어 가는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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