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판 알려면 세상을 알아야” 협박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ㆍ인권위, 여성 연예인 인권실태 보고서
ㆍ기획사 대표의 횡포·인격모독 등 ‘적나라’
ㆍ불공정 거래·감금수준 활동 통제 사례도

“기획사 대표가 옷을 잔뜩 사주고, 남자를 알아야 된다면서 모텔로 끌고 갔어요.”

국가인권위원회가 27일 ‘여성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20대 중반 연기자의 심층면접 결과를 소개했다. 이 연기자는 면접에서 “왜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이쪽 일을 하려면 세상을 더 알아야 되고 남자도 알아야 된다고 했어요”라고 털어놨다.

인권위가 조사해 내놓은 여성 연예인들의 인권 상황은 한마디로 ‘화려함의 이면에는 온통 상처투성이’로 요약된다. 351명(연기자 111명·연기지망생 240명)의 설문조사와 27명의 심층면접으로 이뤄진 조사는 한정된 인원의 여성 연기자를 대상으로 했지만, 국내 최초의 실태 보고서라는 의미가 있다.

여성 연기자와 연기자 지망생들은 성적 피해뿐 아니라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을 요구받는 등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도 무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뷔 전 연기자 지망생들의 피해는 더 컸다.

설문에 응한 연기자 지망생 240명 중 72.3%가 다이어트를 하도록 요구받았고, 58.7%는 성형수술을 권유받았다고 답했다. 연기자의 경우에도 다이어트와 성형 권유 경험자가 각각 54.6%와 55.6%에 달했다. 연기자의 63.6%와 지망생 29.9%는 외모에 대한 폭언과 인격 모독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20대 초반의 한 연기자는 심층면접에서 “너 짝눈이다, 눈 풀렸다, 눈 조금만 더 손대자, 이런 식으로 자꾸 얘기를 해요”라고 고백했다.

기획사와의 불공정 거래 등으로 노동권을 침해당하는 경우도 잦았다. 모든 활동에 대해 일방적 승인과 지시를 받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통제당하는 일이 많았으며, 감금 수준의 인신 구속과 같은 극단적 피해 사례도 나왔다.

여성연기자의 49.2%는 기획사로부터 행사에 무상으로 출연할 것을 강요당했다고 답했다. 사전 동의없는 일방적인 계약 양도를 경험한 사람도 36.5%로 나타났다. 과도한 사생활 침해와 감금에 준하는 인신 구속을 경험했다는 답도 각각 44.5%, 11.1%에 달했다.

인권위는 “노동권 확보를 위해서는 성적 또는 신체의 자기결정권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적 상황이 개선돼야 한다”며 △연예매니지먼트 사업자의 자격을 엄격히 정하는 법 제정 △공개 오디션 문화 정착 △연예 관계자 협의체를 통한 자정노력 △상담 창구와 멘토시스템 도입 △인권교육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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