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문예지 '한국작가' 제18회 신인작품(수필) 당선작
야루장 강 유감(有感)
김성태(金聖泰)
압록강 철교 아래는 여름 장마에 불어난 강물이 무서운 굉음으로 소용돌이를 치며 흘렀다.
순식간에 교각을 씹어 삼킬 기세로 달려들어 휩싸고 맴돌다가 쏜살같이 하구로 줄행랑을 치는 물줄기.
거대하게 밀려와선 제압할 수 없는 위력으로 얕은 물거품 따위는 금세 삼켜버린다.
하나같이 눈알을 부라리며 아시바 소총을 겨눈 중공군의 인해가 부조된 승전 기념탑에서 압록강 철교는 시작되고 있었다.
해발 2500미터의 백두산 수원에서 출발하여 790킬로미터를 내달려 평안북도 신의주와 중국의 단동을 어우르듯 서조선만으로 흘러가는 것이 압록강이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소통하여 유일하게 경인선으로 이어진 총연장 940미터의 압록강 철교.
장마가 걷힌 8월 한낮의 태양이 철교난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손등으로 햇볕을 가리고, 목 줄기와 겨드랑이로 흐르는 땀방울을 연방 찍어냈다. 조심스레 발작을 옮겨 더 이상은 갈 수 없는 끊어진 철교 끝에 이르렀다.
철교는 폭격으로 형용할 수 없게 얽히고 찌그러져 동강 나 있었고, 그 가운데 보기도 섬뜩한 로켓 포탄이 박혀 있었다.
자로 재기라도 하듯 철교 반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12개의 교각 중 북한 쪽 6개의 교각만이 쓸려가는 강물 위에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몸이 시원치 않았는데 갑자기 심한 두통과 현기증이 몰려았다. 나도 모르게 철교난간을 움켜잡고 가까스로 몸을 지탱했다.
혼미한 상태에서도 그대로 쓰러지면 건강물에 휩쓸릴 게 뻔한 이치였다. 순간, 두려움에 더는 지체할 수 없어 가이드의 부축을 받으며 서둘러 철교를 떠났다.
눈을 떴을 때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곰팡이 얼룩이 벽면 곳곳에 번져있는 병실이 눈앞에 들어왔다. 팔목에는 주사기가 곱혀 있고 맹물 같은 의심이 드는 커다란 링거 약병이 머리 위에 매달려 있었다.
선풍기 앞에서도 숨을 몰아쉬며 헉헉대는 약체주제에 중국 무순에서 열리는 조선족 민속축전 초청장을 썩힐 수 없어 집을 나선 것이 잘못이었다. 더구나 압록강 관광을 선택힌 것은 잘못이었다.
병실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언제 빨았는지도 모를 꼬질 하고 구겨진 가운을 걸치고 달마상 얼굴을 닮은 중국인이 들어와 목청을 돋워 뭐라 한마디 던졌다. 중국말은 한마디도 모르나 치료가 끝났으니 나가도 좋다는 말인 듯싶었다.
병원을 나서니 바로 지척인 압록강변에 저녁노을이 깔리고 있었다.
“ 햇쌀이 선생님 머리를 팍 내리 꽂혔답네다” 심양에서 동행한 조선족 처녀 가이드가 의사 말을 통역한 듯 퉁명스레 말을했다. 그 가이드는 연변이 고향인데 4년째 서울 대방동에서 주방용 고무장갑 만드는 공장에 불법취업해서 병든 아버지 약값을 송금하는 어머니를 만나러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심양까지 4시간은 족히 걸려야 도착하니 오늘밤 직장인 노래방 도우미는 공쳤다고 불만인가 보았다.
집을 나설때는 사진첩에서 보았던 그림같은 압록강 철교와 강물위로 비친 노을과 건널 수 없는 북녘 강변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것 마음이 부풀었다.
그리고 월드컵 축구경기 때 보았던 북한의 아리따운 응원단 아가씨도 한 명쯤은 만나 얘기라도 나누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먼 길을 마음 설레며 달려와 막상 철교 위에서 마주한 실망스런 압록강과의 짧은 만남은 동경하듯 밤잠을 설치며 기대했던것과는 너무도 먼 거리의 실체였다.
몸은 깡그리 뭉개지고 이겨진 채로, 팔다리는 동강이 나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피 흘리는 한반도의 얼굴을 만난 것이다.
철교가 잘려나간 치유하기 힘든 단절된 철교 끝에 매달려 발버둥치는 민족의 모습을 다시한번 확인했을 뿐이다.
압록강 철교는 일본이 대륙진출의 야욕으로 100년 전에 한반도와 만주를 잇는 철교를 건설하고, 러일 전쟁에는 일본군과 러시아군이, 6.25전쟁에는 국제 연합군과 중공, 소련, 북조선군이 전투를 벌였던 현장이다.
미군의 공중폭격으로 파괴된 상태로 남, 북 분단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고스란히 멍에로 지고 있는 반쪽짜리 단교는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 압록강에 세월을 묻고 있었다
북한 강변엔 녹슬고 흉물스런 북조선 폐선 몇 척이 안간힘을 쓰듯 강물에 요동치며 매달려 있고, 허리 굽혀 삽질하듯 작업하는 북한 병사들 머리 위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붉은 현수막이 노을빛에 더욱 붉게 물들어 시선을 끌고 있었다.
가이드의 부축을 받으며 차량을 향해 몽롱한 상태로 비척이며 발길을 옮겼다. 압록강 유람선 선착장을 떠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장고를 멘 북한 아가씨의 웃는 모습이 그려진 ‘아리랑식당’ 간판을 끼고 모퉁이를 돌아서려는 순간, 노을을 이고 북한 쪽 강변에서 손짓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어슴푸레 시야에 들어오며
신줏단지 모시듯 족보를 머리맡에 놓고 운명하는 순간까지 두고 온 고향땅을 밟아보는 것이 소원이셨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두부장사로 온 식구의 생계를 이어가다 기력이 다해 병들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통일만 되었으면 이 지경은 안됐다며 목멘 한숨을 토하던 부농의 맏이였던 아버지도, 지금쯤은 모두 고향땅에 가셨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골백번도 더 목청을 곤두세우고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가르쳐 주었던 초등학교 담임선생은 지금도 통일이 되려면 이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했을까. 음절도, 가사도 생각나지 않는 사기당한것 같은 노래를 이제는 잊을 때가 됨직도 한데 주절대는 자신이 한심하기까지 하다.
가이드가 툭하고 나를 향해 한마디 쏘아댔다. “싸나이가 뭣 땜에 눈물임네까, 이제 야루장 강엔 다시 오지 마시라요!”
여장을 풀어놓은 심양 서탑 거리에 있는 호텔을 향해 떠나는 흐린 차창 밖으로 단동 쪽 교각만 조명이 켜진 압록강 철교가 어둠 속에 묻혀지며 멀어져 갔다. 어저면 내 감정도 그렇게 다스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 분단조국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끝)
* 종합문예지 '한국작가' 2009 봄호/ 제19호 243페이지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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