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발레단 국제무대 선다

매일경제|입력2012.04.03 17:16

 

서울발레시어터 `홈리스 발레` 중남미 최대 예술제 초청받아
콜롬비아 국제연극제서 공연

지난해 12월 말 서울발레시어터의 '호두까기 인형' 무대. 몸놀림이 둔탁하지만 열심히 움직이는 남자 무용수 6명이 눈길을 끌었다.

그들은 발레리노가 아니라 노숙인이었다. 8개월 동안 발레 교육을 받아 무대에 섰다.
추운 거리를 헤매던 이들은 발레를 배우면서 건강해졌다. 다리를 찢고 허리를 펴는 동작 덕에 관절염도 낫고 자세가 반듯해졌다.

↑ 지난해 12월말 발레 "호두까기 인형"에서 귀족 역할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노숙인들. <사진 제공=서울발레시어터>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삶의 균형도 되찾았다. 술 담배를 끊고 노숙인 자활잡지 '빅이슈 코리아'를 판 돈을 모아 임대 아파트에 입주하게 됐다.

보금자리를 찾은 후 빌딩 경비직을 얻은 사람도 있다.
노숙인들에게 새 삶을 선사한 사회예술교육 프로그램인 '홈리스 발레교육'이 콜롬비아 이베로아메리카노 국제 연극제에 소개된다.
1998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시 건립 450주년 기념 행사로 시작된 이 축제는 연간 300만명이 찾는 남미 최대 공연예술제다.
제임스 전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53)는 4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조지 타데오 로자노대학에서 홈리스 발레 교육 성과를 발표한다.

 이 자리에는 콜롬비아 문화부 관계자와 사회예술교육 참여자 200명이 참석한다.
콜롬비아는 오랜 내전과 사회 갈등 문제를 예술 교육으로 풀고 있는 나라다. 마약 중독과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춤과 희망을 가르치는

 '몸의 학교' 프로그램이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제임스 전은 "한국 문화예술의 사회 공헌을 알리고 세계 각국 교육 프로그램의 장점을 두루 배워오겠다"면서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8월 29일~9월 2일 보고타 등 5개 도시에서 콜롬비아 소외계층 어린이에게 발레교육도 할 예정이다.

9월 5~6일 콜롬비아 마니살레스 국제연극제에서는 서울발레시어터의 '라이프 이즈' 공연을 펼친다.
서울발레시어터 '홈리스 발레교육'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지원하는 사업. 지난해 4월 노숙인 14명으로 시작했고,

올해 3월에는 노숙인 10명이 새로 참여했다. 매주 일요일 3시간 동안 발레 동작을 가르친 후 간식을 나눠 먹고 대화를 나눈다.
제임스 전은 "그들을 돕기 위해 발레 교육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내가 감사한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갖고 있는지, 언제든지 불행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12세에 미국으로 이민간 그는 이방인의 설움 때문에 방황을 많이 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싸움판에 빠지기도 했다. 춤을 추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노숙인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있다.

직장과 가정을 잃고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사람들이 점점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제임스 전은 "처음에 우울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미소를 짓고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다닌다.

어렵게 잡지를 팔아 모은 돈을 모아 내게 꽃다발을 선물할 정도로 삶의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