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절벽 언덕에서 첼로와 무용의 향연
노컷뉴스 | 입력 2011.07.24 17:45 | 수정 2011.07.24 18:39
[CBS문화부 김영태 기자]
"배배꼬인 소사나무들의 검은 줄기, 돌멩이들 틈으로
가까스로 운을 내밀어 하나의 단어로 태어날 때부터,
저 끓는 바다로부터 끊임없이 기어 올라왔던 바람이
다듬어놓은 문장이다.바람이 검은 철근 같은 줄기를
구부리고 땅 위에 바짝 엎드린 구조물들을 세웠다.
언어의 구조물 소사나무숲! 그것은 버려진 악기처럼
파도보다 가벼운 안개만 통과해도 비명을 연주한다.
절벽과 파도 거품이 일구어놓은 죽지 않는 문장,
초록 리넨 잎을 중얼거리는 소사나무 숲."
(채호기,'개머리초원' 중에서)
◈ 여행정보:지금 굴업도는 해수욕장을 개장했다.굴업도에서 민박을 할 수 있고, 민박집 식당에서 1끼에 6천원 식사를 시키면, 21끼의 식단의 다른,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배편은 덕적도에서 11시 10분에 굴업도로 들어오고, 나갈때는 12시 20분 또는 2시30분 배를 이용하면 된다. 굴업도 민박 032-821-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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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환상의 공연이다.바다가 지척인 100미터 높이의 언덕. 그 언덕 연초록 풀밭에 드리워진 아침 안개. 바다 전경과 하늘 배경은 안개에 가려진 채 하늘색 옷차림을 한 여성 무용수의 우아하면서도 절도있는 몸짓, 그리고 여성 연주자가 켜는 갈색 첼로에서 은은히 퍼져나오는 도타운 선율. 자연도 자신을 사랑하는 인간들을 위해 조화를 부린 것일까. 하늘과 바다는 안개 속으로 잠시 숨었고, 파도소리는 첼로소리에 양보를 했다.하늘과 바다,섬, 인간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굴업도(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개머리초지에서 공연을 펼친 주인공은 무용가 정유라,첼리스트 최윤희씨.'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의 실행위원이기도 한 이들의 자연 속 예술행위는 천연경관 굴업도의 소중함을 안개가 스미듯, 파도가 치듯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가슴에 새겨주었다. 개머리 풀밭의 알알이 이슬맺힌 보라빛 엉겅퀴, 황금빛 환한 갯채송화, 웅장한 바위절벽, 솨솨 울리는 파도소리는 이 섬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끔 빠져들게 했다.
최윤희, 정유라씨의 굴업도 코끼리바위 해변에서의 공연(7월22일)은 개머리초지 공연(7월 23일)과는 전혀 색다른 느낌이었다.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해변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와 하늘, 섬을 배경으로 모래사장과 바위를 무대삼아 공연을 펼쳤다. 모래사장 한쪽에서 바흐의 무반주첼로 모음곡 1번 전주곡과 2번 전주곡의 선율이 햇살을 유영하는 사이, 바닥의 기다란 하늘색 천을 사이에 두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춤사위가 이어진다. 그 선율은 이 자연의 아름다움이 세상에 울려퍼지기를 바라는 큰마음이 담겨 있고, 그 몸짓은 견우와 직녀의 만남처럼 인간과 자연이 하나되어 공존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절절하다.이어 바위 위에서 펼쳐진 연주와 춤사위는 하늘과 바다에 인간의 사랑을 새긴 의식이었다. 첼리스트와 무용수를 사이에 두고 하늘과 바다가 바라보이는 허공에서 산뜻한 옥색천이 일(一)자로 나부끼는 장면은 자연사랑에 대한 일념(一念)을 맹세하는 듯했다.
이 두 예술인이 왜 섬 공연에 나섰을까? 첼리스트 최윤희씨는 "지난달 여기 처음 오게 되었죠. 이 섬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이 섬을 보여주고 싶었어요.제가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아름다운 광경에 음악을 더하면 더 효과가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종종 이 섬에서 연주를 하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무용가 정유라씨는 "춤추면서 해무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하늘과 섬과 내가 하나된 느낌, 춤추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이 무대에 서 있는 느낌이었어요.정말 어떤 무대장치로도 만들 수 없는 진짜 아름다움을 느꼈죠. 이렇게 아름다운 섬에서 무용, 음악,문학이 어우러져 문화를 즐길수 있는 섬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요.한달에 한번씩 방문한다면 너무 좋겠어요."라고 했다. 이들은 8월 초에 덕적도를 방문해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굴업도에서 이런 특별한 공연이 펼쳐지기까지는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로부터 이 섬을 지켜내기 위한 마음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CJ그룹이 이곳에 추진중인 골프장 건설을 꼭 막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굴업도 땅의 98%를 사들인 CJ그룹은 이 곳에 14홀짜리 골프장을 비롯한 150실 규모의 호텔, 주거용콘도 30동,요트시설 등 대규모 위락시설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단체는 좁은 섬에 골프장이 들어설 경우 천연경관의 아름다움이 인공적 환경으로 변질되고, 잘 보존되어 가치있는 생태계가마구 헤집어져 파괴될 것을 우려한다.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제초제 농약 사용으로 인한 먹거리 오염을 가장 우려한다. 지금은 싱싱한 바다생선과 해초를 마음껏 구할 수 있지만, 골프장이 들어서면 농약이 흘러들어 먹거리가 심각하게 오염될 것이라고 했다. 굴업도 전 이장 서인수씨(55세)는 " 무엇보다도 이 아름다운 천연 경관을 모든 국민이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위락시설이 들어설 경우 야영이나 민박을 하는 저가관광은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굴업도에는 현재 10가구가 살고 있으며,골프장 건설에 대해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 있다.
굴업도에서는 독특하고 다양한 해안지형을 볼 수 있다. 동섬과 서섬이 연결된 사빈(모래언덕)이 매우 인상적이다.모래언덕 양 옆이 바다이지만 물이 차면 잠기고,물이 빠지면 모래언덕이 열려 양 섬을 잇는 길이 되는 것이다. 연평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철모모양의 산과 공룡섬, 중앙에 길게 뻗은 사빈을 경계로 나뉘어진 양쪽 바다의 모래사장과 푸른 물결, 침식으로 인해 동굴이 패인 바위절벽은 노르웨이의 피요르드(협곡) 전경 못지 않다. 모래가 바람에 날려 끊임없이 생성된 사구, 목기미 습지, 코끼리바위라 불리는 아치형 바위, 연평산의 붉은모래해변 등은 해안지형의 교과서라 부를 만하다.
굴업도는 야생 동식물의 보고이다. 이 섬은 천연기념물인 매의 국내최대번식지이다. 예전에 소를 키웠던 이곳은 목장이 없어진 이후 초지가 발달했고, 그 초지에 곤충이 많이 살고, 곤충을 먹이로 하는 새가 늘게 되고, 새를 잡아먹는 매가 서식하게 된 것이다. 굴업도에는 멸종위기인 먹구렁이가 서식하고, 희귀식물인 갯방풍, 두루미천남성, 큰천남성 군락이 있다. 천연기념물인 황새와 검은머리물떼새가 찾아오고, 애기뿔소똥구리와 왕은점표범나비가 다수 서식한다.
굴업도의 소사나무는 시인에게 영감을 주어 시로도 탄생했다.
"배배꼬인 소사나무들의 검은 줄기, 돌멩이들 틈으로
가까스로 운을 내밀어 하나의 단어로 태어날 때부터,
저 끓는 바다로부터 끊임없이 기어 올라왔던 바람이
다듬어놓은 문장이다.바람이 검은 철근 같은 줄기를
구부리고 땅 위에 바짝 엎드린 구조물들을 세웠다.
언어의 구조물 소사나무숲! 그것은 버려진 악기처럼
파도보다 가벼운 안개만 통과해도 비명을 연주한다.
절벽과 파도 거품이 일구어놓은 죽지 않는 문장,
초록 리넨 잎을 중얼거리는 소사나무 숲."
(채호기,'개머리초원' 중에서)
예술인들의 발길을 끌어들인 굴업도는 앞으로 예술인 재능기부운동의 새로운 거점이 될 전망이다.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은 회원이 기부한 굴업도 땅 4천평을 활용해, 그곳에 임시문화공연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이곳에서 이번처럼 음악과 무용, 시낭송 등 다양한 형태의 문화공연을 펼쳐나감으로써 굴업도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킨다는 전략이다. 골프장 건설의 철회와 아름다운 생태를 간직한 관광단지로의 개발을 위해 전 국민의 동참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굴업도는 90년대 핵폐기물 처리장 후보지 문제로 여론의 주목을 끌었다. 이제 굴업도는 개발이냐 보존이냐, 지방세수 증대냐 국민여론의 반영이냐 사이에서 송영길 인천시장의 고민,부유층과 서민층간 문화향수 차별, 물질주의와 생태주의, 과거 시위방식 예술인 재능기부로 운동방식의 진화 등 여러 가치의 충돌과 대립을 풀어가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 여행정보:지금 굴업도는 해수욕장을 개장했다.굴업도에서 민박을 할 수 있고, 민박집 식당에서 1끼에 6천원 식사를 시키면, 21끼의 식단의 다른,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배편은 덕적도에서 11시 10분에 굴업도로 들어오고, 나갈때는 12시 20분 또는 2시30분 배를 이용하면 된다. 굴업도 민박 032-821-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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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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