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빚은 예술’ 굴업도 인간의 골프장과 바꿀건가  

  한겨레 | 입력 2011.07.24 20:40

 
[한겨레] 문화예술인들, 굴업도에서 생명을 외치다
채호기 시인 등 14명 찾아가
개발위기 맞선 저항의 몸짓

낭개머리서 첼로·무용 협연
'개머리 초원' 시도 읊조려
23일 오전 굴업도 서쪽 끝 낭개머리.

보라색 엉겅퀴와 노랑 갯채송화가 지천이다. 짙은 해무 사이로 선율이 흘렀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2번 '프렐류드'다. 낭떠러지 끝 바다를 향해 서 있던 몸짓이 획 돌아섰다. 바위를 박차고 활공하는 매처럼 자그만 몸을 감싼 하늘색 천이 너울거렸다. 천 속에서 나온 손끝의 움직임이 어깻짓으로 변하고 그것은 발끝으로 전해져 풀섶에 점을 콕, 콕 찍었다. 잘게 허공을 썰던 손길과 함께 멈춘 춤사위는 그대로 꽃사슴이다. 무용가 정유라씨와 첼리스트 최윤희씨가 협연한 굴업도 공연 '평화의 시작을 알리다'이다.

 

22~23일 채호기 시인, 이윤하 생태건축연구소장, 생태연구가 이수용씨 등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회원 14명이 굴업도를 찾았다. 이 모임은 지난 5월 문화계 인사 150명이 굴업도를 개발로 인한 파괴로부터 지켜야 한다며 발기해 만든 단체다. 이들은 굴업도를 보존해 '문화예술의 섬'으로 만들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굴업도 땅의 98.5%는 씨제이(CJ) 그룹의 소유이다. 1994년 핵폐기장 후보지로 선정돼 홍역을 치렀던 굴업도를 씨제이가 통째로 사들인 뒤 2006년부터 골프장과 관광레저단지 개발사업을 추진해왔다. 씨제이 쪽은 굴업도 개머리 초원에는 골프장을, 주민이 사는 마을에는 콘도미니엄을, 하루 한차례 피서객을 부리는 선착장에는 요트계류장을 건설하는 등 대규모 계획을 세우고 주민 설득에 나선 상태다.

굴업도는 8천만~9천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 화산 폭발로 빚어진 섬이다. 섬 전체가 화산 쇄설암이 쌓여서 굳은 응회암으로 돼 있다. 소금기를 머금은 안개가 머무는 시간 차에 의해 동쪽은 회랑처럼, 서쪽은 절벽처럼 침식된 독특한 해안지형을 갖고 있으며, 곳곳에 살아 움직이는 사구습지가 형성되는 등 지질학적으로 희귀한 섬이다. 또한 이팝나무 군락, 왕은점표범나비, 먹구렁이, 매 등 멸종위기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문화예술인과 환경단체들이 굴업도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다.

"배배 꼬인 소사나무들의 검은 줄기, 돌멩이들 틈으로/ 가까스로 운을 내밀어 하나의 단어로 태어날 때부터/ 저 끓는 바다로부터 끊임없이 기어 올라왔던 바람이/ 다듬어놓은 문장이다. 바람이 검은 철근 같은 줄기를/ 구부리고 땅 위에 바짝 엎드린 구조물을 세웠다./ 언어의 구조물, 소사나무 숲! 그것은 버려진 악기처럼/ 파도보다 가벼운 안개만 통과해도 비명을 연주한다./ 절벽과 파도 거품이 일구어놓은 죽지 않는 문장." 이날 '공연'에서 채호기 시인은 시 '개머리 초원'을 낭송했다.

개머리 초원은 굴업도의 옛 땅콩밭. 민어, 조기잡이와 함께 땅콩을 심고 흑염소와 꽃사슴을 기르던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고 남은 흔적이다. 이제는 계단식 밭의 희미한 흔적을 간직한 풀밭을 야생으로 변한 염소와 사슴이 지키고 있다.

"제비꽃, 엉겅퀴, 금방망이, 억새가 계절마다 장관을 이루는 곳이죠. 멸종위기 2급의 왕은점표범나비, 애기뿔소똥구리가 함께 삽니다. 왕은점표범나비는 유충 때 제비꽃을 먹고 자라죠." 생태연구가 이수용(전 우이령보존회 회장)씨는 개머리 초원은 "곤충-조류-맹금류가 먹이사슬을 이루는 희귀한 초지성 생태계"라고 설명했다.

"골프장을 만들면 표토를 걷어내고 외부 흙으로 3m를 덮습니다. 생태기반이 완전히 무너지죠. 그뿐 아닙니다. 농약과 화학비료는 곧바로 바다로 유입되면서 해양을 오염시키게 되죠." 환경운동가 이승기(한국녹색회 정책실장)씨의 말이다.

굴업도(인천)/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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