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칼럼]문화가 죽었다

 박홍규 | 영남대 교수·법학
정상배나 사기꾼이나 폭력배가 아닌 문화인은, 권력·금력·폭력과 결탁하거나 그것들에 복종하지 않고 항상 그런 잘못된 힘들을 비판하고 대결해야 한다. 그래야 문화의 본질인 인간의 자유와 사랑, 화합과 평화가 가능하게 된다. 그렇게 믿는 나는 권력 내부에 문화부가 왜 있고 그것이 무슨 권력을 행사하는지 상상할 수 없다. 문화부나 그 장관이라면 최소한 문화를 파괴하는 반문화적 폭력배나 돈밖에 모르는 야바위 장사꾼이나 권력을 좇아 날아다니는 박쥐도 아닌, 그래도 조금은 문화적인 사람이 문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생각 정도는 상식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상식은 그런 문화권력이나 문화권력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문화란 어떤 권력과도 관련 없이 가장 자유로울 때 가장 좋은 것이란 사실이다. 설령 비판은 못해도 최소한 권력과 무관할 때 비로소 참된 문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문화는 모두 어용 획일 쓰레기이고, 그런 문화인은 권력을 향한 해바라기 광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상식은 현 문화부 장관이 지난 2년간 행한 소위 물갈이 표적 인사라는 비문화적이고 반문화적인 행태 때문에 여지없이 깨졌다. 수많은 상식적 비판이 있었고, 법을 위반해 무효라고 법원이 몇 차례나 선고했음에도, 최소한의 미안한 표정도 짓지 않고 있는 그는 나에게 최소한의 상식조차 의심케 한다. 그야말로 문화적이기는커녕,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이기는커녕, 기본적인 최소한의 법조차 지키지 않고 불법과 위법을 일삼는 그는, 이 나라에 과연 문화부나 문화부 장관이라는 것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하게 한다.

임기 보장 예술단체장의 축출

그런 문화부나 그 장관의 위법망동을 2년간 허용해온 우리나라에 문화란 것 자체가 존재하는지 의문까지 든다. 이 나라에는 철저히 권력화된 획일문화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획일화된 문화는 더 이상 문화가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 문화란 죽었다. 이 정권 하에 더 이상 문화란 없다.

정권이 바뀌면, 그것도 정책이 근본적으로 다른 정권이 권력을 잡으면, 정치적 인사들은 자리를 내놓는 것이 옳지만, 정치인이 아니라 권력과 무관해야 할 문화부서, 가령 방송사나 미술관과 같은 부서의 장은 그 전문가로서 업무를 수행해왔다면 정권교체를 이유로 임기가 보장된 자리를 내놓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법무부와 검찰청이 과거 정권의 중요 인사들을 정치적으로 표적수사하듯, 문화부 장관이 산하 예술단체장들을 정치적으로 내쫓아 신·구 단체장 두 사람이 한 지붕 밑에서 동거하는 코미디까지 생겨났다. 지난 반세기 그 험난한 정치사에서도 처음 보는 너무나도 비문화적인 야만적 만행을 주연하는 저 문화부 장관은 중요한 국제영화제의 예산을 삭감하고 자신을 풍자하는 네티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했다. 공직자가 국민으로부터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고소하는 것은 1964년부터 미국에서 판례로 금지됐으며 우리 국가인권위원회도 국민의 인권침해라고 밝혔는데 말이다. 정상배들이야 그런 일을 밥 먹듯 한다고 해도, 최소한 문화부 장관만은 그래선 안되는데도 말이다.

문화적이라 함은, 합법적인 것은 물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보다 고귀한 것이다. 문화적이기 위해서는 법을 위배해서는 안됨은 물론 윤리와 도덕을 위배해서도 안 된다. 법과 윤리가 없는 곳에 문화는 없다. 문화인마저 네 편 내 편이니, 적과 동지니 하고 싸우고 죽이는 경우 문화는 있을 수 없다 .

문화 없는 곳엔 억압과 증오뿐

문화는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획일의 황무지에서는 자랄 수 없다. 적은 무조건 죽이고 끼리끼리만 산다는 경우는 문화나 윤리는커녕 법도 없는 무법천지다. 거기에 남는 것은 억압과 갈등, 투쟁과 증오뿐이다. 이를 가장 극단적으로 처절하게 보여주는 연극조차 그것들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극복해 자유와 사랑, 화합과 평화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문화부 장관은 연극인으로서 대선배인 19세기 영국의 오스카 와일드가 “문화가 낮으면 낮을수록 국민의 증오심은 더욱 강하다”고 한 말을 되새겨보며, 자신이 앞장서 국민의 증오심을 극단적으로 부추기지 않았는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2010. 4. 21. 경향신문 오피니언 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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