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알리기 이제 시작일뿐이에요"

연합뉴스 | 입력 2009.11.08 11:32 | 수정 2009.11.08 17:56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우리는 일본에 20년을 뒤진 셈이에요. 한국관 개관으로 절대 만족해서는 안 돼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에요."

지난 9월 미국 서부의 최대 미술관인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에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한국관이 문을 열었다.

578㎡(175평) 규모로 한국 밖에 있는 한국미술 상설전시장으로는 최대 규모인 LACMA 한국관의 개관에는 한국인 큐레이터 김현정(41)씨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서울대에서 한국회화사로 석사학위를, 미국 UC산타바바라대에서 중국미술사로 박사과정을 수료한 미국 주요 미술관의 몇 안 되는 한국인 큐레이터 중 한 사람으로 2006년 3월 LACMA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3년간 꼬박 한국관 개관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LACMA의 한국미술 컬렉션의 국적과 진위 판별부터 시작했어요. 살펴보니 중국 불화도 한국미술 컬렉션에 섞여 있더라고요. 한국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전시할 가치가 있는 작품인지, 작품 상태는 좋은지 등을 확인하는 작업만 1년 가까이 진행했어요."

작품 선별 뒤에는 자리가 문제였다고 한다. 한국미술에 특별한 관심을 둔 마이클 고반 관장이 '좋은 자리'를 고르려다 보니 세 번이나 위치가 바뀐 끝에 지금의 자리가 결정됐다.

인테리어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온돌에 사용하던 장판지, 전통 가옥의 창문과 벽지로 사용되던 창호지를 전시 케이스에 이용하는 등 현대적 건물에서 한국적 미감을 살리기 위해 조그만 재료 하나까지 꼼꼼하게 신경을 썼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역시 '돈'이었다. 다행히 동분서주한 끝에 아모레퍼시픽에서 30만 달러를 지원한 것을 비롯해 한국국제교류재단, 대한항공 등의 지원을 얻어낼 수 있었다.

조그만 것 하나까지 공들여 준비한 한국관이 개관하자 반응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9월 개관 이후 지금까지 관람객 중 한국교민은 4분의 1 수준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이었다.

또 한국관을 홍보하기 위해 찾은 말리부의 한 사립학교에서는 한국미술에 대해 학생들의 수준 높은 질문이 쏟아져 김씨를 놀라게 했다.

"(한국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은 많은데 그동안 홍보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대로 된 영문 출판물도 없고….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어서 놀랐어요."

한국관이 개관했지만, 그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LACMA 한쪽에 3층 규모의 일본식 별도 건물로 자리 잡고 있는 일본관을 볼 때마다 속상하다는 그는 더 큰 꿈을 꾼다.

"일본관이 언제 생긴 줄 아세요? 1988년이에요. 한국관 컬렉션은 500여 점인데 일본관 컬렉션은 5천 점이에요. 그것도 일본인이 아닌, 일본 미술을 수집하는 미국인이 지원한 자금으로 지어진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일본보다 20년이 늦은 거에요. 절대 이것(한국관 개관)으로 만족해선 안 돼요.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LACMA 한국관을 전초기지로 삼아 다른 미국의 미술관에도 한국관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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