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아산의 일송정과 해란강이 있는'선구자, 의 대한 독립운동 산지

 

* 용정 (龍井)-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지차주 중부에 위치하며, 두만강의 지류인 해란강(海蘭江)이 시내를 가로질러 흐른다. 용정용정중학교(구 대성중학교), 윤동주시비, 비암산의 일송정 등으로 백두산 관광 명소로도 유명하다.

[용정중학교 (구 대성중학교)] 민족 시인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중학교로, 현재는 용정제일중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학교 내 기념 전시관에는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 등을 전시해 놓았으며, 전시관 앞에는 그의 대표적인 시 <서시> 가 세겨져 있는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다.


[일송정(一松亭)](차창관광) 암산 정상에 우뚝 선 한그루의 소나무로, 그 모양이 정자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용정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곳으로, 일송정은 독립 의식의 상징이었다.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 푸른 솔' 이 바로 이 소나무 이다.

[해란강(海蘭江)](차창관광)가곡 <선구자>의 '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라는 가사를 통해 알려져 있는 해란강은 해란강은 두만강의 지류로, 용정을 돌아 두만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 2014. 7. 13. 징소리 김성태

                    

 

* 비암산과 '일송정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명소. 가이드가 적시에 설명못하고 지나치면서 급히 소개, 차창박의 모습이 아련하기만...

 

* 용정에서 도문으로 이동중 차창에 비친 '해란강, - 가이드의 뒤늦은 안내가 못내 아쉽기만...차창으로 급하게 찍은 해란강,  

 

 

선 구 자

                                                                     윤 해영 작사 / 조 두남 작곡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때 |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쏘던 선구자 |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 사나이 굳은마음 길이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 대우합창단, 지휘 윤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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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시비  

 

   윤동주: 일제 말기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아명은 해환(海煥).

교회 장로이면서 소학교 교사인 아버지 영석(永錫)과 어머니 김룡(金龍) 사이의 7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해 1931년 졸업했으며,

 중국의 관립소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모두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때 송몽규·문익환도 이 학교에 입학했다.

1935년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에 편입하고 교내 문예부에서 펴내는 잡지에 시 〈공상〉을 발표했다. 〈공상〉은 그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활자화된 것이다.

1936년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당하자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 4학년에 편입했으며, 옌지[延吉]에서 발행하던 〈가톨릭 소년〉에 윤동주(尹童柱)라는 필명으로 동시를 발표했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뒤 2년 후배인 정병욱(鄭炳昱)과 남다른 친교를 맺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자작시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필시집 3부를 만들어 은사 이양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주고 자신이 1부를 가졌다. 1942년 도쿄[東京]에 있는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1학기를 마치고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편입했다. 그러나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송몽규와 함께 검거되어 각각 2, 3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송몽규는 3월 10일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했다. 유해는 용정의 동산교회 묘지에 묻혀 있고, 1968년에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시비가 세워졌다.

1985년 월간문학사에서 윤동주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http://search.daum.net/search? 퍼옴)

 

 

 

*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중학교

 

 

 

서 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시인의 '서시, 시비 앞에서 -2014. 7. 13. (사진: 조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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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스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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