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아이들이 음악으로 인생이 바뀐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카라카스 빈민가에서 지휘하고 있는 구스따보 두마멜
1970년대 베네수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석유 부국을 꿈꿨다.
마라카이보 호수에서 솟아난 석유는 분명한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다.
1975년 사관학교를 졸업하면서 페레스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지휘도를 받은 우고 차베스 역시 조국의 번영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16년 뒤 페레스 대통령, 미국과 다국적 기업을 향해 칼을 빼들 반역의 주인공이 될 줄 몰랐을 것이다.
누구나 장밋빛 미래를 말하던 시기, 불가능한 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베네수엘라는 탐욕스러운 제국들의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그들의 귀에 민중의 신음과 통탄은 그치지 않았다.
1975년 엘 시스테마는 그렇게 탄생했다.
“우린 예술로 싸웁니다. 자라나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음악이라는 기치 아래 하나가 되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거죠.”
엘 시스테마가 택한 건 총 대신 음악이었다.
엘 시스테마의 공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과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이다.
흔히 시스템을 뜻하는 ‘엘 시스테마’라 줄여 부른다.
가난은 당장 처치할 수 없지만, 조금씩 치유할 순 있다.
“여기 아이들은 열다섯이면 총 들고 마약을 하다가 3달 뒤엔 죽고 말아요.”
빈민가에서 마약과 총으로 허기를 달래던 아이들에게 엘 시스테마는 든든한 요새이자 꿈의 요람이다.
전과 기록으로 얼룩진 11명의 아이로 시작한 엘 시스테마는 현재 200여 개의 지역별 오케스트라와 26만 명의 단원을 거느린 초대형 오케스트라가 됐다.
역경에서 환희를 쏘아 올린 엘 시스테마는 특별한 재능이 기적을 일구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모차르트의 부활이라는 찬사를 받는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또한 엘 시스테마의 일원으로만 다뤄진다.
대신 종이로 만든 바이올린을 만지작거리던 코흘리개들이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되묻게 한다.
“한 명의 어려운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모든 어려운 아이들도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죠.”
엘 시스테마의 창립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오의 말처럼, 엘 시스테마의 철학은 누구에게나 평등이다.
마에스트로와 비르투오소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음악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엘 시스테마의 이념은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는 스태프들의 확신에 찬 발언과 총을 맞고서도 웃으며 연주를 했다는 소녀의 진지한 표정에서도 읽힌다.
호세는 마약과 포르노에 찌들어 살던 베네수엘라의 뒷골목 아이들에게 악기를 쥐여줬다.
음악으로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모험은 완전히 성공했다.
36년이 지난 후 베네수엘라는 세계적 음악 강국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엘 시스테마는 20대 나이에 LA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가 된 구스따보 두다멜과 더블 베이시스트 에딕슨 루이즈 등 세계적 음악가들을 낳았다.
그들이 어린 시절 ‘엘 시스테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모든 어린이에게 악기를 사 줄 여력이 없는 엘 시스테마 센터는 처음 음악을 접하는 아이들에게 종이 바이올린과 종이 첼로를 준다.
종이 바이올린을 들고 입으로 노래를 부르며 부모님을 초청한 첫 발표회.
가난한 어머니들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을 땐 모두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엘 시스테마의 수화 합창단이 펼치는 아베마리아 공연은 또 어떤가.
땅 밑과 같은 어둠 속에 살던 아이들이 천사와도 같은 표정으로 노래를 부를 때, 우리는 듣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구원하는 음악의 힘을 믿게 된다.
엘 시스테마의 성과는 국내에도 알려져 최근 몇몇 지자체들이 저소득층을 위한 음악 교육 지원을 시도하고는 있으나,
장기적인 ‘시스템’이 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이들에겐 국·영·수 뿐 아니라 예술이 있음을, 예술은 여유로운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사람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구스따프 두다멜이 지휘하는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의 맘보
'부에노의 사는 이야기' http://blog.daum.net/bueno77/17047547 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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