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이 빚은 흉상 ‘피노키오 배우’ 이대엽
기사입력 2010-12-28 18:01:35
시장 취임선서를 하고있는 이대엽
[TV리포트 신일하의 연예 X파일]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 ‘빨간 마후라’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긴 ‘피노키오 배우’가 있다. 이대엽 전 성남시장이다. ‘피노키오’란 거짓말쟁이에 붙여지는 패러디 호칭. 거짓말을 많이 해서 일까. 그의 재임 중 사진에 유난히 코가 빨갛게 보이는 게 있다. 김태호 전 국무총리 후보자도 ‘피노키오’ 칭호를 얻었다. 아방궁 같은 초호화 청사를 지어놓고 재임 중 일가와 상상을 초월하는 비리 백화점을 경영(?)해온 그는 성공한 영화배우 출신에서 일약 ‘피노키오 배우’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의 날개 없는 추락은 예고된 거나 마찬 가지였다.
‘화려한 샹들리에, 스테인드 글라스로 번쩍이는 무도회장, 우리에 갇힌 사자 세 마리와 치타, 갈색 곰이 어슬렁거리는 넓은 정원, 방마다 눈에 띄는 페르시아 산 카펫, 대형 TV 수상기와 실크 커튼, 마호가니 원목으로 만든 문, 외제 침대로 가득찬 방,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카날리의 더블 상의, 프랑스제 드레스 셔츠, 실크넥타이 등으로 가득 찬 옷장, 은제 식기로 뒤덮인 주방---’ 2009년 11월18일 예산 3천200억 원을 들여 오픈 한 성남 시청이 왜 ‘현대판 아방궁’이라며 비판 받았는지 말해주는 장면이다. 이날 ‘성남시청사, 시의회개청식’에서 이 전 시장은 청사가 ‘베르사이유 궁전’이란 국민적 비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시대적 기대에 부응한 고품격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며 자랑하듯 인사말을 했다. 인기 가수를 초청한 콘서트를 비롯 2억7천만원을 들인 호화판 오픈식을 보고 분노한 시민들이 “현대판 시황제(市皇帝)로 등극한 것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는 추태까지 연출해냈다.
염불에는 관심 없이 잿밥에만 생각을 두고 펼친 그의 재임 8년 공직생활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탐욕의 불꽃과 같았다. 2009년 10월25일 성남시종합운동장에서는 ‘제1회 대한민국 희극인의 날’ 행사가 있었다. 뽀식이 이용식이 추진위원장을 맡았고 이대엽 시장이 스폰서를 한 행사로 아방궁 청사 오픈 1년을 남겨놓고 준비된 깜작 쇼다. 초청된 유재석 박명수 정형돈 노홍철 강호동 정준하 김병만 등 인기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는 깜짝 이벤트를 연출하고 송해 등 코미디언 500여명이 함께 한 2시간 축하공연이 곁들여진 호화판 자리였지만 시민들에겐 씁쓸한 뒷맛을 남긴 행사로 비쳐졌다. “단발성 행사였잖아요. 연속성이 있는 거라면 몰라도 한번으로 끝날 이벤트에 예산을 펑펑 쓰다니--” 네티즌이 시청 홈피 게시판에 올려놓은 불만이었다. 이날 행사 소식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는 등 홍보의 효과는 있었지만 이대엽시장의 포퓰리즘을 위한 탐욕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 행사다. 매스컴 노출 효과만을 노린 그의 속셈뿐이었다. 자신이 배우 출신인데 ‘영화인의 날’ 같은 행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대엽 성남시장’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발한 행사라 뽀식이 이용식과 함께 널뛰기 묘기를 보여준 것이다. 청사 건설에 참여한 업체들은 행사 축하 명목으로 선물 보따리를 이대엽 시장에게 안겨 주고 욕망을 채워주느라 허리가 휘청거렸을 것이고 남모르는 속앓이도 했을 거다. 그래서 일까. 현대판 탐관오리의 실상을 파헤친 사건이 드러났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11월 2일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 있는 이 전 시장 아파트를 급습했다. 명품 애호가로 소문난 그의 아파트를 수색하던 검사와 수사관들은 한 동안 넋을 잃었다. 상자나 면세점 봉투와 보자기 등에 그대로 쌓여진 채 쏟아져 나오는 명품 선물 더미에 놀라서다. 옷장에 명품 넥타이 300개, 악어가죽 핸드백 등 명품이 30여개나 나왔고 거실 진열장이 아닌 침대 밑, 발코니 서랍 등에 병당 150만원의 루이 13세 코냑 3병과 38년 산 로열살루트(150만원 상당)가 쑤셔져 있는 걸 찾아냈다.
이날 압수한 양주병만 30개가 넘었는데 붙박이장 틈 사이에서 50년 산 로열살루트도 나왔다. 이 술은 2003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50주년과 로열살루트 스카치 위스키 제조 50주년을 기념, 50년 이상 된 원액으로 255병만 만든 최고급 위스키로 알려졌다. 포장지 가격만 20만원이 넘는 이 양주에 73번이라는 시리얼 넘버가 찍혀있는데 2008년 분당구 석운동 승마연습장 허가와 관련, 업자로부터 받은 거란다. 워낙 고급술이다 보니 판매자나 구매자가 한정되어 있어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뇌물 전달자가 드러났다고 한다.
이외에도 아파트 침실에 있던 구급함, 서랍장, 여름 옷 주머니 등에서 나온 미화와 엔화, 현금이 8천여만 원이나 되었다. 이 전 시장 일가의 뇌물 수수는 15억원이 넘는데 “아파트가 명품 창고나 다름없는 탐욕의 현장이었다”며 수사관들이 비화를 털어놓았다. 특히 시청사 신축과 관련 시공업체에 편의제공해 주고 큰 조카 아들이 운영하는 조경업체를 통해 총 17억5천여만원의 조경식 재공사를 수주한 혐의가 있는가 하면 이 전 시장의 부인도 공영주차장 신축공사와 여성공무원 승진, 명절 떡값 등 명목으로 1억1천만원을 챙겼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 일가가 받은 뇌물을 광주시 오포와 율동공원 인근의 땅을 매입하는 데 사용, 2배 이상 시세차익을 올린 것으로 밝혀져 그동안 소문이 무성했던 ‘이대엽 왕조(王朝)’ 비리가 사실로 입증 되었다.
그런데다 재임 기간인 2002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매월 업무추진비 200만원을 부서 회식비로 사용했다는 허위 영수증을 작성해 1억8천만원을 챙겼고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면서도 관사를 사용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매달 93만원씩 7천100만원을 착복한 혐의까지 드러나자 “도덕적 해이가 땅에 떨어진 사건이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지도층의 도덕 불감증이 이처럼 적신호에 처했다는 사실에 실망한 네티즌들은 댓글로 ‘피노키오 배우’를 성토하고 나섰다. ‘탐욕의 명품 창고’로 호칭된 그의 아파트 베일이 벗겨지며 ‘비리의 온상’으로 까발려졌다. 이게 한국영화 터프가이 1세대로 불린 배우의 진짜 얼굴인가. 2005년 옥외광고업자로부터 뇌물 수수로 징역 5년 형의 교도소 신세를 졌던 배우 신성일은 ‘이대엽 왕조(王朝)’ 비리에 비하면 새 발의 피로 비유된다. 치사스러운 공직자의 종말이라 그런가.
얼마 전 패터슨 뉴욕주지사가 공짜 야구 표 5장 때문에 망신을 당했다. 표 값 245만원 아끼려다 벌금 7천만 원을 냈으니 말이다. 뉴욕 공직윤리위원회에 딱 걸려 체면을 완전 구기고 말았다. 하지만 교도소 행 예약이 된 이 전 시장은 더 이상 구길 얼굴도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피노키오 배우’란 흉물의 오명을 썼으니 지울 수 없어서다.
신일하 편집국장(대우) ilha_shin@tvreport.co.kr
기사일자:2010-12-2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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