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한국인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우리 정부가 신청한 아리랑의 등재를 확정했다. 이로써 한국은 종묘제례·종묘제례악, 판소리 등 현재 15건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아리랑의 등재를 확정한 직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인 이춘희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은
회의장에서 아리랑을 직접 불러 등재 확정에 화답했다.
이날 36건의 안건 중 27번째로 심사된 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끝나는 '아리랑 노래군'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2011년 5월 중국이 국가 무형문화목록에 집어넣은 '조선족 아리랑'을 포함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2009년 8월 '정선아리랑'을 단독으로 등재신청을 했다가, 올해 6월 수정 제안서를 제출했다. 중국의 역사왜곡인 '동북공정' 등으로 예민해진 한국은 중국의 노골적인 '아리랑 중국문화재 만들기'를 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문화재청은 '아리랑 노래군' 전체에 대해 수정 제안서를 제출한 이유를 두고 "발생 지역과 시대에 제한을 두지 않아 북한과 해외 아리랑도 포괄하려는 목적이었다."면서 "지역별로 독특한 가락과 노랫말이 존재한다는 점과 처한 환경이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지어 부를 수 있다는 점, 지역과 세대를 초월해 광범위하게 전승된다는 점 등에서 '아리랑'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아리랑은 한민족을 상징하는 대표 가락이다. 지위의 높낮이도 없다. 고종황제도 사랑했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10~20대 여성들이 설움을 다독이느라 흥얼거리는 노래였다. 흔히 '아리랑' 하면 강원도 '정선아리랑'과 전라도의 '진도아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등 '전통 3대 아리랑'을 손꼽지만, '아리랑 노래군'은 한반도에만 60여 종, 모두 4000여 수가 존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경복궁 중건때 부역꾼의 노랫말아리랑의 기원은 언제일까. 대표적인 학설은 19세기 말 흥선대원군(1820~1898) 섭정시대에 경복궁을 중건할 무렵 전국에서 부역꾼이 아내나 연인과 떨어져 있음을 한탄하며 부른 노랫말 '나는 님과 이별하네(아이랑·我離娘)'가 변해 아리랑이 됐다는 설명이다. 시대를 더 올라가 신라 건국 시조 박혁거세(기원전 69~기원후 4)의 비 '알영'의 덕을 찬미하기 위해 지은 시가 등이 '아리랑'이라는 말로 변했다는 '알영설'을 비롯해 여진어에서 고향을 뜻하는 말 '아린'에서 유래했다는 설,인도의 신(神) 이름 '아리람 쓰리람'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이동복 국립국악원장은 "아리랑의 기원 설화가 이렇게 많은 것은 아리랑이 역사 속에서 한민족의 애환을 잘 담은 노래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아리랑은 조선후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때로 비창이나, 노동요, 저항가요, 흥겨운 응원가로 변화했다. 한반도를 넘어선 '연변아리랑', 천연두 예방 주사를 널리 보급하기 위한 '종두아리랑', 문명퇴치 교육을 위한 '한글아리랑', 1900년대 의병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부르던 '독립군아리랑'이나 뗏목꾼들이 힘든 노동을 잊기 위해 부른 '뗏목아리랑' 등이 그것이다.●시대따라 노동요·응원가 등 변화일제 강점기에 나운규가 만든 무성영화 '아리랑'(1926년)은 일본에 저항하는 정신으로 전국에 아리랑 붐을 일으켰다. 1960년대에 아리랑은 민주화 운동에 쓰인 항쟁가로 변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꽹과리 장단에 맞춰 응원가가 됐다.문화재청은 이번 "등재를 계기로 각 지역의 아리랑 전승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수립해 시행하겠다."라며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아카이브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2017년까지 아리랑 국내외 정기공연에 27억원, 지자체 아리랑 축제 지원에 20억원 등 총 336억원의 예산을 들일 계획이다.한편 이날 위원회가 아리랑의 등재를 확정한 직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인 이춘희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은 회의장에서 아리랑을 직접 불러 등재 확정에 화답했다.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Copyrights ⓒ서울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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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소리 관련자료)
정선 아리랑, 현장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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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 -억수-장마-질라 - - 나 - -/ 만수 - 산 깊은구 - 름이 - - 막모 - 여 - - 든 - - 다
아리 - - 랑 - 아리 - - 랑. 아라 - 리 - - - 요/ 아리 - 랑 고개고 - 개로 - - - 나를넘겨 - 주 - - - 게 - - - -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 알뜰한 이내 청춘이 다 늙어 간다."
* 마음의 고향으로 '정선'은 '나를 찾아 길 떠나는 여행' 지다.
어디쯤엔가 한의 실체가 웅크리고 있을 것 같은..,, 마음 설렘의 근원지로, 그리움의 실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정선은 아우라지 강이 흐르고, 민속 5일장이 열리고, '격동의 세월을 '아리랑'으로 애환을 달랬던 '정선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에 가슴 시린
슬픔을 만나는 곳, 그래서 또 다른 새 희망을 흥겨움으로 승화하는 정선! 강원 정선의 가을을 향해 집을 나섰다.
그랬다. 정선에는 우리의 영원한 노래, '정선 아리랑'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정선 어딜 가나 '정선 아리랑'과 만난다.
정선이 '아리랑'이고, '아리랑'이 정선이었다. 정선과 아리랑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일체임을 정선에서 체험했다.
'정선 아리랑'은 한의 노래도 아니고, 가난한 삶의 절망을 풀어 낸 노래는 더욱 더 아니었다.
'정선 아리랑'은 우리겨레의 '희망'노래였다.
-2011. 10. 8. 징소리 김성테
정선여행 소개에서
강원도무형문화재제1호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 김남기(뒷줄 가운데), 김형로(뒷줄좌 첫번째)외 정선군립예술단의 '정선아리랑' 공연- 정선5일장터 2011. 10. 8.
김남기 강원도무형문화재제1호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
위 정선아리랑 공연장에서 연주 중 촬영.-2011. 10. 8.
-'이하 정선아라리촌 상설공연장에서 공연 중 촬영
강원도무형문화재제1호(정선아리랑)예능보유자 김길자(좌 세번째)외 단원들이 정선'아라리촌' 상설공연장에서 '정선아리랑'을 연주하고 있다.-2011. 10. 8.
강원도무형문화재제1호(정선아리랑)예능보유자 김길자
김길자 강원도무형문화재제1호(정선아리랑)예능보유자
관람객 체험
김길자 강원도무형문화재제1호(정선아리랑)예능보유자 외 단원과 공연 후 기념촬영.
징소리. 조덕원 뉴스페어 대표기자. 장수희 국악소리와 몸짖 '다솜'대표. 조성란 한국무용가 --2011. 10. 8. 정선'아라리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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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확정 ‘아리랑과 나’
한국인의 삶-정서 담은 민족의 혼 동아일보 | 입력 2012.12.07 03:18
[동아일보]《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혼(魂)이라고 불린다. 오랜 세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노랫말로 전승되어온 아리랑에는 한국인의 삶과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아리랑에 얽힌 사연을 들어보았다. 》▼ 전국민에 의해 전승 큰 의미… 아리랑 세계화 노력 지속 ▼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추진해온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9)
"우리 한민족의 대표 민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소수 전승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 국민에 의해 전승되어온 무형유산으로는 처음으로 등재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번 등재를 통해 아리랑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이 간직해온 다른 무형유산에 대해서도 국내외 인식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는 문화재청을 비롯한 유관기관과 전 국민과 함께 힘을 모아 아리랑의 세계화 등 우리 전통문화를 세계인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록 버전 편곡한 아리랑으로 2002월드컵 응원 기억 새로워 ▼
아리랑을 록 버전으로 재해석해 부른 가수 윤도현(40)
"YB(윤도현밴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 록 버전의 아리랑을 응원가로 불러왔고 음반에도 수록했다. 우리나라 전통 노래 중 누구나 알고 있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을 때 YB 멤버 전원이 만장일치로 떠올린 곡이 아리랑이었다. 록 음악으로 편곡한 아리랑은 기대 이상으로 기운이 나게 해주는 그 어떤 힘이 느껴졌다. 공연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아리랑을 부르며 대한민국 국민이 하나 되는 모습을 지켜본 것은 짜릿한 경험이었다. 아리랑이 앞으로도 계속 세계로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세계 전통민요와 어깨 나란히… 그 감동 세상 곳곳에 전해야 ▼
아리랑 관련 자료 수집과 연구에 바친 26년,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49)
"아리랑은 내 인생에서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나는 1986년 아리랑을 독일어로 번역하다 한계에 부딪혔다. '발병 난다'는 말의 뜻을 운율에 맞게 독일어로 번역하려면 훨씬 깊이 공부해야 했다. 그때부터 아리랑을 파고들었다. 아리랑 관련 책 음반 사진 엽서를 모았다. 정선아리랑을 알리려 '정선아리랑학교'도 세웠다. 아리랑은 이제 세계적 전통 민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아리랑이 한국인에게 감동을 주었듯이 앞으로는 우리가 아리랑의 주인으로서 세계인에게 그 감동을 전해야 한다."▼ 중국 이주때 아리랑도 따라와… 고국의 그리움 달래준 망향가 ▼
중국 옌볜에서 아리랑을 소재로 시를 써온 조선족 동포 리상각 시인(76)
"강원 양구군의 가난한 집 외아들로 태어난 나는 세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중국으로 이주했다. 척박한 땅에서 먹고살 것이 없어 땅이 흔한 중국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였다. 내가 부모님을 따라 중국으로 갈 때 아리랑도 우리 가족을 따라왔다. 중국에 정착하느라 숱한 고생을 할 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준 것이 아리랑이었다. 한국에 뿌리를 둔 우리에게 아리랑은 슬퍼도 부르고 기뻐도 부르는 노래다. 나를 비롯해 옌볜(延邊)의 조선족 시인들은 아리랑을 노래한 시를 우리말로 아주 많이 써왔다."▼ '아리랑 유랑단' 대학생팀 꾸려… 내년 14개국 돌며 공연 계획 ▼아리랑을 알리기 위한 세계일주를 앞둔 대학생 문현우 씨(25)
"말레이시아에서 조기유학을 했던 초등학교 시절, 한국의 청소년 국가대표 축구팀이 출전한 경기를 관람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응원구호가 없던 당시 교민들은 응원가로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으로 모두가 하나 됨을 느낀 순간이었다. 관광경영학을 전공하면서 외국인들에게도 아리랑을 알리면 세계인과 하나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나를 포함한 대학생 4명이 '코리아 아유(아리랑 유랑단) 레디' 팀을 꾸렸고, 내년 3월부터 109일간 14개국 28개 도시를 돌며 대금 및 단소 연주와 서예 등을 통해 아리랑을 알릴 계획이다."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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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가락 '아리랑' 인류무형유산 됐다 본문
한국인의 가락 '아리랑' 인류무형유산 됐다
후렴구 '아라리요'로 끝나는 노래 전부
문화재청, 전승 활성화위해 330억 투입 한국일보 | 권대익기자 | 입력 2012.12.07 02:33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가락인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종묘제례ㆍ종묘제례악, 판소리, 강강술래, 강릉 단오제 등 모두 15건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유네스코는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본부에서 24개 위원국으로 구성된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를 열어 산하 심사소위원회인 심사보조기구의 지난달 평가를 토대로 이같이 확정했다고 문화재청이 6일 밝혔다.
아리랑의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은 지난 2009년 8월 '정선아리랑'을 가곡ㆍ대목장ㆍ매사냥 등과 함께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을 하면서다. 하지만 연간 국가별 할당 건수 제한 방침에 따라 정선 아리랑은 심사 대상에서 제외됐다.이후 남북 공동으로 한반도 전 지역 아리랑의 등재를 추진하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자 지난 1월 아리랑을 심사 우선순위로 정하고 6월 우리 정부 단독으로 등재 신청서를 냈다.이번에 등재된 아리랑은 정선아리랑이나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처럼 특정 지역의 것이 아니라 후렴구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끝나는 노래는 모두 포함된다. 이번 등재 결정에는 세대를 거쳐 재창조되고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는 아리랑의 모습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아리랑은 현재 한반도에만 150여 곡 8,000여 수가 전한다. 중국은 지난해 5월 '조선족 아리랑'을 자국의 국가급 무형유산으로 지정했지만, 유네스코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국이 아리랑을 이용해 또 다른 '동북공정'을 시도하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이에 문화재청은 내년부터 5년간 336억원의 예산을 들여 ▦아카이브 구축 ▦상설 및 기획 전시 ▦국내외 정기공연 개최 ▦학술조사 및 연구 지원 ▦지방자치단체 아리랑축제 지원 등도 추진하는 '무형문화재 아리랑 전승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우선 내년 상반기 '무형문화유산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 아리랑의 국가무형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한다. 현재 정선아리랑만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돼 있다.내년 9월 전주에 개관하는 '국립무형유산원' 아카이브에는 국내외 아리랑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자와 전승단체는 물론 일반 국민에게 아리랑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또한, 고려인ㆍ조선족 등 재외동포와 외국인 노동자 등 국내 다문화 구성원, 해외 입양 가정 등을 대상으로 아리랑을 테마로 한 전통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민족 아리랑센터' 설립도 추진키로 했다. 한민족 아리랑센터는 재외동포 726만명을 비롯해 다문화 구성원, 해외 입양자, 탈북 주민 등 784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문화 교육기관이다.아리랑을 주제로 한 해외 기획 공연도 중앙아시아 고려인(연 1회) 위주에서 연 2, 3회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은 "아리랑이 다른 세계무형유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라며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과 몽골, 카자흐스탄 등 해외 동포가 만든 아리랑까지 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권대익기자 dkwon@hk.co.kr[ⓒ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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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이제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성공시켜야"
아리랑 인류무형유산 등재 위해 뛴… 임돈희 문화재위원회 무형문화유산 분과위원장 조선일보 | 김기철 기자 | 입력 2012.12.07 03:15 | 수정 2012.12.07 10:10
"이번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선정을 '아리랑 세계화'의 첫걸음으로 삼아야 합니다. '아리랑'만큼 온 국민을 하나로 묶을 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는 없을 겁니다."'아리랑'이 인류무형유산으로 선정된 6일, 가슴 벅차게 이 소식을 들은 사람 중임돈희(68)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 겸 무형문화유산 분과위원장이 있다. 2000년 유네스코 무형유산 선정 국제심사위원단이 처음 꾸려질 때, 그는 아시아의 유일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2001년과 2003년 심사위원으로서 종묘제례악과 판소리가 채택되는 현장을 지켜봤고, 심사위원을 그만둔 2005년엔 강릉단오제 선정을 위해 발벗고 뛰었다.
↑ [조선일보]임돈희 위원장은“아리랑을 모티브로 삼아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문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주완중 기자
문화재위원회에서 무형유산 분야를 맡고 있는 임 위원장은 "아리랑이 세계인들 공감을 얻으려면 민요 그대로가 아니라 감동이 있는 콘텐츠로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나운규의 '아리랑'이 일제강점기 조선인들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리랑의 정서를 영화에 잘 녹여냈기 때문입니다. 아리랑을 모티브로 한 영화나 드라마, 가요를 통해 세계인 감성에 다가가야 합니다."임 위원장은 "서구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 유형유산과 달리 무형(無形)유산 분야는 한국이 선도하고 있다"고 했다. 유네스코가 무형유산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0년 전후이지만, 한국은 40년 앞선 1960년대 초 '인간문화재'를 지정해 무형유산을 보호해온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실제로 유네스코가 인류무형유산 제도를 만들면서 우리 '인간문화재'를 벤치마킹했다"고 했다."무형유산은 유적 중심의 유형유산과 달리 세계 각 지역 문화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정신이 강해요. 우리 고유 가락인 '아리랑'을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성공시키면 다른 비(非)서구국가들도 자기네 문화유산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임 위원장은 "무형문화유산은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블루오션'"이라 했다. "각 민족의 자존심·정체성과 이어지는 고유문화를 경제나 외교에 잘 활용해야 해요. 외국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민요로 맞이한다면 얼마나 호감을 갖겠습니까. 아리랑에 대한 호감도가 높으면 한국 상품에 대한 친밀도도 높아지지 않겠습니까."국제 사회의 호감도를 끌어내는 데도 무형문화유산이 중요하다고 했다. 임 위원장은 미얀마를 예로 들었다. 미얀마가 조금씩 민주화되면서 미국·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진출하고 있는데, 한국이 만약 미얀마 각 부족 민속이나 고유문화를 조사·연구하고 기록을 남기면, 훗날 미얀마에서 얼마나 고마워하겠느냐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한국이 국제사회에 공헌하고 문명국가라는 인상을 주는 '소프트파워'로 무형문화유산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임 위원장의 아버지는 국내 민속학을 개척한 고(故)임석재(1903 ~1998) 선생이다. 1960년대 초대 무형문화재분과위원장을 맡아 굿과 무속 등 전통 유산 보호와 연구에 앞장서 왔다. 그런 아버지 뒤를 이어 임 위원장은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민속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석좌교수이기도 하다."아버지가 국내 무형유산 보호를 위해 애쓰셨다면, 저는 우리 무형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유문화가 중심이 된 한류가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걸 보고 싶어요."-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