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기차를 탈까보다 / 유승희


부슬부슬 눈개비가 흩뿌리는 날
노오란 우비를 입고
노오란 우산을 바쳐 들고
길을 나설까보다

허턱 나선 발길
기차를 탈까보다

희뿌연 창가에
어리비추는 그리운 얼굴
가다가다 내려선
하잔한 간이역이면 어떠랴

인정 뚝뚝 흐르는
웃음 가득한 역무원 아저씨
푸근함이 있으면 좋은 것을
함초롬히 젖은
들꽃 반기는 호젓한 길
그 끄트머리에
작은 호수 하나
있으면 더 좋겠다

빗방울 동그르르 물뱅뱅이 치는
호수가 벤치에 앉아
어디선가
그리운 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비 오는 날에 기차를 탈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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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프로필 
이름 : 신동엽  출생 : 1930년 8월 18일 사망 : 1969년 4월 7일

출신지 :충청남도 부여 학력 : 단국대학교

데뷔 :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당선

경력 : 1961년 명성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1958년 충남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

대표작 :아사녀, 금강, 시인정신론, 껍데기는가라 등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 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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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 8. 29 충남 홍성~1944. 6. 29 서울.
시인·승려·독립운동가.
개요
한용운 /한용운
한국 근대시사의 불후의 업적인 〈님의 침묵〉을 펴냈고, 한국 근대 불교계에서 혁신적인 사상과 활동을 펼쳤으며, 3·1독립선언에 민족대표로 참가하는 등 일제강점기의 혁명적인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다. 본관은 청주(淸州). 속명은 유천(裕天). 자는 정옥(貞玉). 용운은 법명이며 득도할 때의 계명은 봉완(奉玩), 법호는 만해(萬海 : 또는 卍海).
생애
유년시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다. 어릴 때 고향에서 한학을 배웠고, 18세 때인 1896(또는 1897)년 고향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수년 간 불교서적을 읽었다고 한다. 출가의 원인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당시 고향 홍주에서도 갑오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이 전개된 것으로 미루어 역사적 격변기의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1905년 백담사에서 김연곡에게 득도한 다음 전영제에게 계(戒)를 받아 승려가 되었고, 이후 수년 간 불교활동에 전념했다. 이즈음에 불교 관련 서적뿐만 아니라 양계초(梁啓超)의 〈음빙실문집 飮氷室文集〉 등을 접하면서 근대사상을 다양하게 수용했으며, 1908년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이 그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11년 송광사에서 박한영·진진응·김종래 등과 승려궐기대회를 개최하여 일본의 조동종(曹洞宗)과 한국불교의 통합을 꾀한 이회광 등의 친일적인 불교행위를 규탄·저지했다. 1913년 박한영 등과 불교종무원을 창설했고 1917년 8월 조선불교회 회장에 취임했다. 그해 12월 어느날 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진리를 깨우쳤다고 한다. 1918년 불교잡지 〈유심 惟心〉을 창간했으며 이 잡지를 통해 불교 논설만이 아니라 계몽적 성격을 띤 글을 발표했고, 또 신체시를 탈피한 신시 〈심 心〉을 발표하여 문학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일제에 체포되어 3년형을 받았다. 출옥 후인 1922~23년 민립대학 설립운동과 물산장려운동 등의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1924년 조선불교청년회 회장에 취임했고, 1927년 신간회 결성에 적극 참여해 중앙집행위원과 경성지회장에 피선되어 활동했으며, 1931년 잡지 〈불교〉를 인수하여 사장으로 취임했다. 같은 해 김법린·최범술·김상호 등이 조직한 청년법려비밀결사인 만당(卍黨)의 당수로 추대되었으며, 1936년 신채호의 묘비건립과 정약용 서세100년기념회 개최에 참여했다.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과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을 견지하다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에서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이 수여되었다.
불교사상과 불교혁신운동
흔히 불교사회주의로 요약되는 그의 불교사상은 불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우리 민족 현실 전반에 대한 혁명적 사상의 기반을 이루었다. 〈조선불교유신론〉은 그의 불교혁신론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책이며, 당시 한국불교의 침체와 낙후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하는 가운데 불교사상이 진보주의·평등주의·구세주의의 입장에 서야 함을 역설했다. (→ 〈조선불교유신론〉)그는 불교가 미래의 인류문명에 적합한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에서는 낙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염불당 등의 기존의 허례적인 의식들을 타파하고 산중에 있는 절이 도시로 나올 것, 승려들도 사취(詐取)와 동냥질을 그만두고 스스로 생산활동에 참여할 것, 승려의 취처(聚妻)를 허락할 것 등을 주장했다. 이러한 사원운영의 혁신을 주장하는 내용에서 불교의 대중화·민중화라는 기본사상이 도출되어 나온다. 그는 불교의 민중화를 위해 불교 교리와 제도, 불교 재산을 민중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청년불교를 제창하고 그 부흥을 위해 노력했고 〈불교대전〉 등 불교경전의 번역작업에 착수했으며, 〈불교교육 불교한문독본〉·〈정선강의 채근담 精選講義菜根譚〉을 펴내고 〈유심〉·〈불교〉 등의 잡지 간행에 힘쓰는 등 불교의 민중화를 위해 노력했다.
불교의 민중화와 그의 불교활동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불교의 자주화운동이다. 1910년 원종(圓宗) 종무원 이회광이 불교확장이란 미명하에 일본에 가서 조선의 원종이 일본 조동종과 완전히 연합·동맹할 것 등을 협약하고 오자, 그 이듬해에 박한영 등과 승려궐기대회를 개최해 이회광을 종문난적(宗門亂賊)으로 규정하면서 원종에 대응되는 임제종(臨濟宗)을 창립한 것은 그의 대표적인 불교자주화운동이다. 이 활동을 통해 그전까지는 다소 불분명했던 그의 반제국주의적 사상이 뚜렷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그후 그의 불교자주화운동은 1931년 결성된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의 이면단체였던 만당활동 등으로 이어졌다. 그는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의 긴급한 사명으로서 정교분립(政敎分立)과 불교통일의 촉진, 불교의 사회적 진출을 강조했는데, 그중 정교분립을 주장한 것은 종교를 하수인으로 삼으려는 일제의 정책에 반대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불교사상의 측면에서 역사를 끊임없는 변전의 운동으로 파악하는 중관론(中觀論)에 기초해 소승적인 소극주의나 현세부정적인 불교를 비판하고, 중생의 삶에서 곧 정토를 구하는 대승적인 입장을 취했다. 1933년 〈유마힐소설경강의 維摩詰所說經講義〉를 저술했으며, 강렬한 현실비판 등 현세에서의 실천을 강조한 그의 혁명사상도 이러한 불교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독립사상과 민족운동
그의 비타협적인 반일 독립운동 역시 불교혁신사상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대표적인 민족운동으로는 1919년 3·1운동의 참여를 들 수 있다. 그는 백용성(白龍城)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하여 3·1독립선언의 민족대표로 참여한 다음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 변호사는 물론 사식과 보석을 거부할 것을 결의하고 일본 검사의 신문에 대한 답변으로 〈조선독립이유서〉를 집필하는 등 비타협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옥중에서 작성한 〈조선독립이유서〉는 상하이[上海]에서 발간되는 〈독립신문〉 1919년 11월 4일자 부록에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며, 그는 이 글을 통해 제국주의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이해와 민족의 독립 근거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제시했다. 그는 다른 모든 사상에 앞서 인간의 자유와 평화가 우선함을,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서 민족자존이 요구됨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민족의식이 편협한 국가주의가 아니라 민족간이나 국가간의 자유와 평등에 입각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자주독립의 조건이 독립할 만한 자존의 기운과 정신적 준비에 있음을 천명하여 물질문명이 부족하다는 점을 조선 식민지 지배의 근거로 삼았던 일제의 허구적 논리를 정확히 비판했다. 이는 준비론이나 실력양성론, 민족개조론 등 결국 일본의 식민정책에 부합한 개량론과는 질을 달리하는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으로 평가된다. 좌·우파 간의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에 적극 참여한 것도 그의 대표적인 민족독립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이전부터 우파의 민족운동과 좌파의 사회운동이 분열되어서는 안 됨을 역설한 바 있으므로 신간회에 관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후에 신간회 해소론이 대두했을 때는 그것이 올바르지 않음을 주장하고 신간회의 존속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가 하면 1929년 광주항일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그것을 민족적·민중적 운동으로 확산시키고자 민중대회를 계획했으나 일본경찰에 의해 무산되었다. 또한 그는 여성해방운동과 농민·노동 운동 등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불교의 자주화운동에 앞장선 것도 민족독립운동의 하나로 보인다.
문학세계
그가 이룩한 문학적 업적도 불교개혁사상이나 민족독립사상, 그리고 그 실천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문학활동은 시에서 출발하여 시조와 한시 및 〈죽음〉·〈흑풍〉·〈후회〉·〈박명〉 등의 장편소설로까지 확산되었으나, 가장 의미 있는 성과를 낳은 것은 역시 〈님의 침묵〉으로 대표되는 시 장르이다. 1925년 백담사에서 탈고하여 이듬해 안동서관에서 발행한 〈님의 침묵〉은 당시 한국문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문학작품보다도 더 절실하게 민족의 현실과 이상,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요구되는 주체적 자세에 대해 노래했으며, 더욱이 그것을 풍부한 시적 이미지로 아름답게 형상화해 수준 높은 민족문학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이 시집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님'은 연인·조국·부처 등 다의적인 의미를 지니며 그에 따라 '님의 침묵'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민족적 상황을 가장 압축적으로 상징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당시 상황을 시적 주체인 '나'가 님과 이별하여 님이 부재하고 침묵하는 시대로 규정하면서도, 님이 부재한 상황을 통해 '나'가 진정으로 님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는 변증법적인 진리를 드러내고, 새로이 '나'가 님과 합일될 수 있다는 낙관적 인식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님과 새로이 만나기 위해서는 님에 대한 철저한 복종이 요구되는데, 그 복종을 통해서 비로소 '나'는 자유로워진다는 '복종과 자유의 변증법'을 노래한 것도 역사의 필연성의 인식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는 변증법적 진리와 통한다. 이러한 시적 인식을 통해 그는 식민지하에 있는 조국의 운명과 독립의 필연성, 그리고 그것을 위한 실천 속에서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진리를 탁월하게 형상화할 수 있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그의 시는 은유와 역설의 자유로운 구사롤 보여주며, 정형적인 틀을 완전히 벗어난 산문적 개방 속에서도 내재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근대 자유시의 완성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부분 1930년대에 창작된 그의 소설은 신소설적인 계몽성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여 작품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는 그가 근대소설의 특수성을 충분히 자각하지 못한 가운데 소설을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생각한 데서 연유한다. 즉 일제 말기로 접어들면서 더이상 직접적으로 항일독립사상을 펼칠 수 없게 되자 소설을 창작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청나라를 무대로 한 〈흑풍〉에서도 일제에 대한 투쟁정신을 은근히 보여주고 여성해방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삽입하여 반봉건 정신의 고취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1973년 신구문화사에서 〈한용운전집〉 전6권이 간행되었다.

님의 침묵

 

                                                        만해 한용운 님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돌려놓고 뒷 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에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때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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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소월 (김정식)
출생 : 1902년 8월 6일
사망 : 1934년 12월 24일
출신지 : 평안북도 구성 
학력 : 배재고등학교
데뷔 : 1920년 창조지 '낭인의 봄', '야의 우적', '우과의 읍' ,'그리워' 발표
경력 :1926년 동아일보 정주지국 개설, 경영
1924년 영대(靈臺) 동인
수상 :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1981년 금관문화훈장
대표작 : 산유화, 진달래 꽃, 초혼
    성장 : 2세때 아버지가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

         을 당해 정신병을 앓게 되어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남산학교를 거쳐

         오산학교에 다니다 폐교되어 배재고등학

         교로 편입, 졸업한다. 1923년 동경상과대

         학 전문부에 진학했으나 중퇴하고 귀국하

         였다. 오산학교 시절 조만식을 교장으로

         서춘, 이돈화, 김억을 스승으로 모셨다. 특

         히 김억은 그의 시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

         다. 귀국 후, 광산업의 실패로 구성군으로

         이사하여 동아일보지국을 개설했으나 실

         패하고 그 후, 염세증에 빠지게 된다. 1930

         년대에 문학활동이 저조해졌고, 그에 생활

         고까지 겹쳐 생에 의욕을 잃어 1934년 아

                                                                                            편을 먹고 자살하였다.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그 소리에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멀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로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 눈물 아니 흘리오리다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이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먼 후일

 

먼후일 당신이 나를 찾으시면
그때에 내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어노라"

그래도 나를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어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후일 그때에 "잊어노라"

 못잊어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나지요"

 금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 산천에 붙은 불은

가신 임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봄 가을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도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가는 길 ({개벽} 40호, 1923.10)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흐릅디다려 : '흐릅니다그려'의 준말.

  ({문명} 창간호, 1925.12)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였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定州) 곽산(郭山)
차(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 바이 : 전혀, 전연.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시집 {진달래꽃},1925)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즈런히
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손에*
새라 새로운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랴,
내 몸은 떠가나니, 볼지어다,
희망의 반짝임은, 별빛의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 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느른*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저 저 혼자… 산경(山耕)*을 김매이는.

* 벌가 : 벌판가.
* 보습 : 쟁기 끝에 달아 땅을 가는 데 쓰는 농기구.
* 저물손에 : 저물녘에.
* 가늘은 : 가느다란.
* 산경(山耕) : 산에 있는 경작지

 삭주구성(朔州龜城)(『개벽』40호,1923)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 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 리
삭주 구성(朔州龜城)은 산(山)을 넘은 육천 리요

물 맞아 함빡이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 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 리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 리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못 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으로 오며가며 아니합디까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반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텐고
삭주 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 리

 (山)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산골
영(嶺) 넘어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三水甲山)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 시메 : 깊은 산골.
* 불귀(不歸) :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뜻. 또는 죽음을 의미.

 삼수갑산(三水甲山)({신인문학}3호,1934)

-차안서삼수갑산운(次岸曙三水甲山韻)

 

삼수갑산(三水甲山)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오고나니 기험(奇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첩첩山疊疊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 멀드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 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 날 가두었네
불귀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아하하

* 촉도지난(蜀道之難):촉(蜀)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 촉도(蜀道)는 촉(蜀: 四川省)으로 통하는 험난한 길로 인정과 세로(世路)의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됨.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왕십리(往十里)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天安)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데.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산 옮아 가며 슬피 웁니다.

 서도여운(西道餘韻)
------------- 옷과 밥과 자유(自由)

 

공중(空中)에 떠 다니는
저기 저 새여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졌네

초산(楚山) 지나 적유령(狄踰嶺)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김소월 ... 산유화 [김성태곡, 조수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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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혜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가을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혜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혜 이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 하교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엄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잼, 라이네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 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렸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이름자 묻힌 언덕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 할 거외다

 

 
쉽게 씌어진 시(詩)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의 호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담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용정의 윤동주 역사전시관
글쓴이: inspace0 번호 : 136조회수 : 3512005.12.19 20:49
연길에서 버스를 타고 40분을 달리면 해란강이 흐르는 용정에 닿을 수 있다. 이 곳은 한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민족시인으로 알려진 윤동주가 중학교를 이곳에서 다녔고, 박경리의 대하소설인 토지(土地)에 나오는 배경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용정은 1백년 전에 개척되기 시작했는데, 1980년 초까지는 황량한 원시림지대로 해란강 유역에 아름다리 나무가 울창했고 갈대와 가시덤불이 그득했며 온갖 맹수가 살았다고 한다. 1883년 봄, 함경도 회령에서 넘어온 조선농민이 처음으로 해란강 유역을 개척해 마을을 일구고 옛우물자리를 찾아 우물을 만들었다.
용정의 민속관에는 한국 교포들의 풍속, 항일의사들의 사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용정중학교는 일본통치시 항일의사들을 배양한 곳으로 교정에 있는 윤동주시인의 시비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새겨져 있다. 이처럼 용정은 한국의 항일역사와 함께 하였기 때문에 곳곳마다 한국 선조의 숨결이 배어 있다.


 

 
연대 시비 (겨울배경)
글쓴이: inspace0 번호 : 129조회수 : 2672005.12.19 20:49
전면:
'서시' 1941년 연전 문과 졸업문집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있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비 뒷면의 글:


윤동주 : 연전 '38 문과

윤동주는 민족의 수난기였던 1917년
독립운동의 거점 북간도 명동에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고
1938년 봄 이 연희동산을 찾아 1941년에 문과를 마쳤다.

그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며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던 중
1945년 2월 16일
일본후꾸오까 형무소에서 모진 형벌로 목숨을 잃으니 그 나이 29세였다.

그가 이 동산을 거닐며 지은 구슬 같은 시들은
암흑기 민족문학의 마지막 등불로서 겨레의 가슴을 울리니 그 메아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더불어 길이 그치지 않는다.

여기 그를 따르고 아끼는 학생 친지 동문 동학 들이 정성을 모아
그의 체온이 깃들인 이 언덕에 그의 시한수를 새겨 이 시비를 세운다.

- 1968년 11월 3일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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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鄭芝溶) 시인과 대표시

정지용(鄭芝溶,1902~?)


충북 옥천 출생. 휘문고보 졸업. 일본 도지샤 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 졸업.

귀국후 휘문고보 영어 교사로 재직했으며 광복 후에는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50년에 한려수도를 여행중 전란을 맞아 북한군에 붙잡혀 행방 불명되었다.

동인지<요람>을 발간하면서 <향수>, <슬픈 인상화>,<풍랑몽> 등을 발표했다.
[시문학]동인이었으며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와 선명한 이미지를
구사하여, 1930년대 시이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첫 작품인 <카페프란스>,<슬픈인상화>,<파충류동물> 등을
경도(유학생잡지)인 <학조>(1926)창간호에 발표했다.
첫 작품들은 다다이즘,미래파 계열의 경향을 보였으나, 곧 선명한
객관적.즉물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이미지즘으로 전향했다.
현실인식,망국의식을 반영한 작품도 있고, 카톨릭 신앙을 나타낸
작품도 있으나, 이미지즘과 동양 고전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후기 시집인 <백록담>은 지성의 절제,토착어의 순화,선명하고 정확한 이미지
등을 바탕으로 한 이미지즘 경향의 작품집이다.
박목월,조지훈,박두진,박남수 등을 <문장>지를 통해 추천하였고,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시인이다.
시집에 <정지용시집>(1935),<백록담>(1941)등이 있다.

 

                          

 






1. -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2.<카페 프란스>

옮겨다 심은 종려(棕櫚)나무 밑에
비뚜로 선 장명등(長明燈)
카페·프란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비쩍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 흐느끼는 불빛
카페·프란스에 가자.

이놈의 머리는 비뚜른 능금
또 한 놈의 심장은 벌레 먹은 장미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어간다.
*
"오오 패롤[鸚鵡] 서방! 굳 이브닝!"

"굳 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울금향(鬱金香) 아가씨는 이 밤에도
경사(更紗) 커튼 밑에서 조시는구료!

나는 자작(子爵)의 아들도 아무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大理石)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오오, 이국종(異國種) 강아지야
내 발을 빨아다오.
내 발을 빨아다오.
-----------------------------


3. - 춘설(春雪)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송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


4.<바다 2>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었다.

이 애쓴 해도(海圖)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휘동그란히 받쳐 들었다!
지구(地球)는 연(蓮)잎인 양 오므라들고 …… 펴고 …….
-------------------------------------------


5. -유리창(琉璃窓) 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6.<비>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돋는 비ㅅ낯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


7. -인동차(忍冬茶)

노주인(老主人)의 장벽(腸壁)에
무시(無時)로 인동(忍冬) 삼긴 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 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 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山中)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


8. -별-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ㅡ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금(金)실로 잇은 듯 가깝기도 하고,

잠 살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듯, 솟아나듯
불리울 듯, 맞아들일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이는 회환에 피어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우는 손을 여미다


*

 백록담

 

 

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꽃 키가 점점 소모된다. 한 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 다시 한 마루 우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중에는 얼굴만 갸옷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뻐꾹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팔월 한철엔 흩어진 星辰처럼 난만하다. 산 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아도 뻐꾹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

암고란(巖古蘭), 환약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아 일어섰다.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가 촉루(髑髏)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휠 것이 숭없지 않다.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퉁이, 도체비꽃이 낮에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바야흐로 해발 육천 척 우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 여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여진다.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 리를 돌아 서귀포로 달아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윈 송아지는 움메 - 움메- 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구 매어 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풍란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 휘파람새 휘파람 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구르는 소리, 먼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 - 솨 - 솔소리 ,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칠넌줄 기어간 흰 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주친 아롱점말이 피하지 않는다.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삿갓나물 대풀 석용 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고산식물을 새기며 취하며 자며 한다. 백록담 조촐한 물을 그리어 산맥 우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장엄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여 붙인 채로 살이 붙는다.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온 실구름 일말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더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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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차  / 최영호

막차가 찍어 놓고 간 바퀴 자국 위로

또다시 눈이 내린다.

 

버겁게 재를 넘던 버스는

한 무데기의 취기와

몇몇의 구겨진 일상들을 토해낸 뒤

거친 숨결 고르다가

눈 부릅뜬 채 총총 멀어져 갔다.

 

드세어진 눈 발은

어둠을 꼭꼭 다지며 자꾸만 내리는데

깃 세운 외투 속에 희망을 감춘

앞서 내린 사내들이

흐느적 거리며 지나가고

막차가 그려 놓고 간 쓸쓸한 풍경 속으로

흰 눈,

켜켜이 눈이 내려 쌓이고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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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별 하나 /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 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소 포

 

                                  이 성 선

 

가을날 오후의 아름다운 햇살아래

노란 들국화 몇 송이

한지에 정성 들여싸서

비밀히 당신에게 보내 드립니다.

 

이것이 비밀인 이유는

그 향기며 꽃을 하늘이 피우셨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와서 눈을 띄우고

차가운 새벽 입술 위에 여린 이슬의

자취없이 마른 시간들이 쌓이어

산빛이 그의 가슴을 열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에게 드리는 정작의 이유는

당신만이 이 향기를

간직하기 가장 알맞은 까닭입니다.

한지같이 맑은 당신 영혼만이

꽃을 감싸고 눈물처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추워지고 세상의 꽃이 다 지면

당신 찾아가겠습니다.

 


 

 

 

 

시인 이성선님은

1941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속초중학교와 속초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농학과를 나왔다.

이후 잠시 농촌진흥청에서 근무하다가 1970년 고향의 동광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문화비평》에 《시인의 병풍》외 4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1972년 《시문학》(현대문학 간행)에 《아침》 《서랍》 등으로 재등단하였다.

1990년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96년에는 속초·양양·고성에서 환경운동연합을 결성하였고, 이후 원주 토지문화관 관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 강원도 문화상을 수상하였고, 1990년 제22회 한국시인협회상, 1994년 제6회 정지용문학상,

1996년 제1회 시와 시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2000년 마지막으로 출간한《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등을 포함해 총 12권의 시집이 있다.

평이한 수법의 시어로 동양적 달관의 세계를 깊이 있게 표현하였고,

시를 통한 자연과의 일체적 교감을 추구하였는데,

특히 설악산과의 친화적 합일을 모색하면서 '설악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2001년 5월 4일 6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나는 소설을 쓰고 있는 동생 김성숙에게서  이시인의 순수한 시정신을 얘기들어 한번 만날 기회를 기대하던 중에

성남예총과 속초예총 '자매결연'을 성사하여  1992. 7. 11.속초관광호텔에서 자매결연식을 가졌다.

이날 나는 성남예술 회장으로 인사말을 했고, 속초예술인을 대표해서 이성선 시인이 인사말을 했다.

그날 이 시인과의 만남은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강하게 남아 연민의 정을 느낀다.    -징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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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사연 / 김석규


      가을이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만났으면
      염천을 건너와 나뭇잎새 물드는 자리
      무서리 내리면 또 속절없는 사랑
      그런 사랑보다 더 슬픈 하늘 멀리에다 두고
      희미한 기억 이젠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텐데
      저무는 강변의 대숲을 흔드는 바람소리
      허물어진 성터 따라 쓸쓸히 묻힌 오솔길로
      가을이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만났으면

      .
      .





                                                                         

 
             

                         허허바다 / 정호승 시

 

                       찾아가보니 찾아온 곳 없네

                       돌아와보니 돌아온 곳 없네

                       다시 떠나가 보니 떠나온 곳 없네

                       살아도 산 것이 없고

                       죽어도 죽은 것이 없네

                       해미가 깔린 새벽녘

                       태풍이 지나간 허허바다에

                       겨자씨 한 알 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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